기획하는 일을 좋아하던 나는 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입사했다. 입사 첫 주간은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크게 불편할 것은 없었다. 식사는 가격 대비 훌륭했고, 주차도 편리했다. 학교 주변은 산이라 벌레가 많았지만 그만큼 그늘도 많아 좋았다. 다만 내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언어’였다.
나는 여러 직장을 거치며 언어의 힘을 깊이 느껴왔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일이 많아 예민했지만 서로를 깎아내리는 말은 없었다. 노인복지시설에서는 대표의 뒷담화와 비난이 공동체를 무겁게 했고, 공장은 삭막하여 언어 대신 무표정만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의 대학교에서는 욕설이 일상이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터져 나오는 거친 말과 한숨 속에서, 언어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는지 깨닫게 된다.
그때 마음에 떠오른 말씀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잠언 18:21)와 “너희 입에서 더러운 말은 하나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선한 말을 하라” (에베소서 4:29)였다. 언어는 단순히 기분을 드러내는 수단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는 도구였다.
돌아보니,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언어는 달랐다. 믿는 사람은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긍정과 감사의 언어를 조금이나마 내뱉었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안에 사로잡혀 자신을 방어하듯 부정적인 언어로 살아갔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뒷담화를 하던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그조차 믿음이 있었기에 그 정도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면 훨씬 더 깊은 어둠 속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나는 아직 긍정의 언어를 자유롭게 흘려보낼 만큼 강하지 않다. 오히려 무대응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누군가의 거친 말에 맞서거나 억지로 좋은 말을 하려 하기보다, 차라리 반응하지 않음으로써 내 마음을 지키려 한다. 무대응은 때로는 회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지금의 나에겐 부정적인 언어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울타리와도 같다.
하지만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싶다. 언젠가는 무대응을 넘어서, 은혜의 언어로 응답하며 하나님을 드러내는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나는 기도한다.
“주님, 제 입술과 마음을 지켜주소서. 제가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뱉는 말 하나하나가 주님의 뜻에 맞게,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언어가 되게 하소서.
상처 주는 말에 화가 치밀 때에도, 반응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마음을 지킬 힘을 주소서.
말로 사람을 깎아내리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가 제 마음을 지배하게 하시고, 제 눈으로는 판단하지 않고 사랑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하소서.
또한, 언젠가는 무대응을 넘어서, 제 입술에서 나오는 말마다 감사와 격려, 긍정과 용서가 흘러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빛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께서 제 안에서 말씀하시고 다스리셔서, 말 한마디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고, 제가 살리는 언어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