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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송 Oct 30. 2022

아이 이름은 집안의 어른이 지어주는 게 법도다

우리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우리에게로 와서 화를 내었다.

내가 지금까지 시아버지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던 이유는  가시 박힌 말들을 내뱉은  시어머니였고 시아버지와는 직접적으로 부딪힌 일이 없었다. 시댁에서 받은 스트레스의 99% 시어머니 때문이라고   있다. 그러나 사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 편이었고 말씀만  하셨을  시어머니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셨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발언들이 오갈 때에도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나무라신 적이 없었고 딱히 나를 위한 발언을 해주신 적도 없었다. 그러나 아버님을  때면  나를 웃으며 반겨주셨고 나에게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말들을 하신 적이 없었기에 그나마   불편한 존재였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그런 아버님과 가장 크게 갈등이 있던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아이 이름을 지을 때였다.  


 남편과 나는 결혼하고 둘만의 시간을  오래 가졌다. 둘이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싶고, 신혼의 재미를 오래오래 누리고 싶었다. 아이를  가지겠다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격렬히 아이를 바라지도 않았기에 아이 가지는  최대한 미루고  미루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종종 아이 이야기를 꺼내셨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나와 남편이 결정할 일이고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씀만   드리말았다. 그렇게 (부모님이) 기다리던 아이가 생기고 아이를 직접 마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가 왔다. 남편과 나는 아이 이름을 무얼로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각자 짓고 싶은 이름 목록을 만들어 공유했다. 남편은 이름 지어주는 어플까지 다운로드하여서  알지도 못하는 한자 공부를 했다. 사주를 본다면서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조합해보지 않은 이름과 한자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우리 둘이 서로 마음이 가는 이름이 일치하여  이름으로 하자는 의견이 좁혀졌다.


아이가 태어나고 조리원에서도 남편과 나는 매일 밤 누워 이름 짓기에 공을 들였다. 그중 두 개의 이름을 두고 고민하였는데 나는 친정부모님께도 우리가 고른 이름을 알려드리면서 어떤 게 더 좋으냐고 묻기도 했다. 엄마는 “너희 좋은 걸 해야지. 엄마는 둘 다 좋은데?”라고 우리에게 이름 짓는 걸 맡기셨고 나도 내 아이 이름인데 남편과 내가 짓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남편이 부모님께 어떤 조언을 구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그 사달이 난 걸 보면 남편은 부모님께 고민하는 것조차 말씀드리지 않은 듯하다.


 최종적으로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고른  남편은 출생 신고를 하러 갔다. 우리  외에 우리 가족이 되는 소중한 아이의 이름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께도 우리 아이의 이름을 알려드렸다. 우리 부모님은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며 통화를  때마다 아이 이름을 자주 불러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 이름을 들으신 시부모님의 반응이었다. 시아버지께서는 정말 극대 노하시는 게 아닌가.


“이름을 감히 마음대로 정해서 신고를 하다니! 아이 이름은 집안의 어른이 지어주는 게 법도인 것도 모르니?”


우리가 정말 고심하며 신중하게 고른 이름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시고 그저 우리 마음대로 정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계신 듯했다.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 가슴이 쿵쾅거리며 손발이 떨렸다. 내 아이 이름을 내 마음대로 지은 것이 그렇게 큰 죄를 지은 일인가 싶었다. 이름이야 사실 다시 바꿀 수 있겠지만 이미 출생신고를 마친 상황이고 화가 나신 시부모님을 달래 드리기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내가 무슨 왕족도 아니고, 그냥 내 자식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을 짓는 게 나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집안의 어른께 한 번쯤 여쭈어볼 필요는 있었다고 본다. ‘감히 마음대로’ 지어버리는 건 어리석고 미숙한 태도였을 수도 있다. 마치 내가 우리 부모님께 “이거 저거 중에 뭐가 나아?”하고 가볍게 묻듯이 남편도 자신의 부모님께 여쭈어보았다면 조금 상황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이름을 짓는 중요한 일에 당신들이 빠져서 서운하신 마음도 백번 이해한다. 그러나 아이 부모인 우리에게 이름 짓는 걸 믿고 맡겨주시면 더 좋았으리라… 부모님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지 못한 우리의 잘못도 크지만 그때 그렇게 다그치며 화를 내신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시부모님이 지어주시는 이름이 법도에 가장 순행하는 이름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우리가 지은 아이 이름이  좋다. 오랜 시간 남편과 고민하며 지은 이름이고  어떤 이름보다 우리 아이와  어울린다. 지금도 매일 부르는  이름이  아이만큼이나 가장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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