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만이 내 세상

경험이 많다고 지혜로워지는 건 아니겠지

by 채니아빠

난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고 생각했다. 긴 세월의 경험으로 세상과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되어 현명한 판단력을 지닐 수 있을 거라고.

어린 시절 어른들은 항상 옳았고 당당했으며 위대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읽었던 모든 동화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그리고 나이 들어가면서 많은 실패도 겪고, 성공도 이루게 된다. 특히 그들의 성공 경험은 자신을 지키는 보루이자 자존심의 근원이 된다. 이러한 경험과 기억으로 인해 그들만의 판단 기준을 세우게 되고 그 안에서 안전함과 평안함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쌓여진 가치관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작은 성을 쌓고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된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세상 밖에도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에 있어서도.


택시에 손님을 태우고 운행하는 중 간혹 "어, 여기서 좌회전해야 하는데. 길을 몰라요?"라는 분들이 계신다. 자신만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다.

이때 '이쪽 길이 좀 덜 막혀서요.'라고 답을 하면 참사가 시작된다.

"아 그래요? 내비가 이쪽으로 가라고 해서요." 라며 공격 대상을 내비로 살짝 틀어버린다. 그러면 내비는 온갖 비난의 화살을 맞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참담한 발명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쯤에서 멈추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한 단계 더 나아간다.

"택시 하면서 길도 모르고 다닙니까?"

"죄송합니다, 시작한지 얼마 안돼서 내비만 믿고 다니네요. 길 안내를 해주시면 그쪽으로 갈께요."라며 한발 물러서고 공을 손님께 넘겨 버리는 게 내 방법이다. 싸움은 피해야 한다. 그가 알고 있는 길을 내가 알 수는 없다. 내비 역시 그가 다니던 방향을 알지 못한다. 그러고 나면 그만의 꿍시렁이 시작되는 게 다반사다.


아주 드물지만 그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는 경우가 있다.

"길도 모르면서 무슨 택시를 한다고.?"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난 최후의 방패를 들고 화살을 다른 곳으로 튕겨낸다.

"이 나이 되니까 받아 주는 데가 없네요. 이거라도 해야 먹고 사니까요."

공격 대상을 세상으로 돌려 버리면, 그의 철학 강의가 시작된다.

세상의 부조리, 정치적 편견, 가족과의 불화, 자녀의 문제, 자신의 젊은 시절 등 그들만의 편견에 싸인 견해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닌 한 그저 '아, 네, 그렇죠.' 하며 에둘러 대답하고 만다. 내 의견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그와 다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으니까.


이런 경우가 단지 택시 손님들 뿐만은 아니다. 내 주변에도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만이 옳다고 믿으며, 이를 남에게 강요하고, 타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넘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 중 하나는 나와는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견해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 위해서이다. 내가 나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듯이 그들도 그들만의 색깔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


세상은 옳고 그름의 잣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색깔과 시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나는 글을 읽고 쓰며 조금씩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