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실업자

쉼에도 계획이 필요하다

by 채니아빠

난 주로 토요일에 쉰다. 특별한 일정이 있는 평일 하루,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한 번, 이렇게 쉬고 나면 대략 한 달에 24일 정도 운전을 한다. 공휴일은 따로 없다. 그래야 한 달에 채워야 하는 의무 매출액을 채울 수 있다.

오늘은 이도 저도 아닌 그냥 휴무일이다.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데 이번부터는 퇴사와 재입사 사이에 하루의 공백을 넣어야 한단다. 그래서 어제부로 퇴사, 내일부터 재입사. 그리고 오늘은 실업자다.


어제 저녁엔 가볍게 술 한잔 하고, 아침엔 늦잠을 자고, 고질병인 허리 때문에 한 달에 한번 정도 가는 정형외과에 다녀오고, 아직 종이 통장을 쓰시는 어머니의 통장 정리를 하고, 지난주 샀던 조끼를 교환하고, 책상에서 뭔가 끄적일 때 필요한 근거리용 안경도 장만하고, 점심으로는 가끔 생각나던 짬뽕죽을 먹고, 근처 도서관에 왔다.


쉼에도 계획이 필요하다. 비록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을 한다 하더라도.

이번 휴일에는 무엇을 할까 하는 계획 세우기는 무엇을 꼭 해야만 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즐겁다. 당일치기 속초도 다녀오고, 아님 영화 보고 외식하고, 그저 동네를 빙 돌아서 산책도 하고, 전시회도 다녀오고,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예쁜 선사에 들러 공양도 드려 보고, 쌍둥이 조카 손주 선물도 사고, 그러다 결국 그중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빈둥 빈둥 대다가 근처 시장에서 장보고 들어오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그렇게 온갖 상상을 해보는 기쁨이 있다.


그런데 오늘처럼 느닷없는 휴일은 뭔가 허전하다. 뭔가 한 건 많은 거 같은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좋았을 텐데, 뭔가 많이 하긴 했다.


오늘 온 도서관에는 사색 공간이 있다. 도서관 전체에 단 하나, 화장실 옆 구석에 작은 1인용 자리이다.

왼편 액자에 '생각하고 사유하세요'라고 쓰여 있다.

다가오는 이번 휴일에는 무엇을 할까 하는 심오하고 행복한 사색에 빠져 본다. 아마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될 것 같다.


느닷없는 휴일이라도 나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