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남들은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것 같은데 내 삶은 왜 이럴까하는 생각.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알게 된다. 겉보기엔 조용히 제자리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 사람들도 사실은 삶을 지키기 위해 매 순간 기를 쓰고
버티고 있다는 것을. 평범함을 살아본 사람이라면 안다.
그 평범함이야말로 사실은 숨이 차도록 어렵고, 손끝이 닳도록 버거운 일이라는 것을.
나는 때때로 힘든 일로 좌절감을 느낄 때 문득 떠올리는 환자들이 있다.
그들의 삶에 비하면 내가 느끼는 고단함이 한낮 투정인것은 아닌지 되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기구하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
의사가 된 이후 나는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을 만났다.
그중에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삼켜야 했던 안타까운 순간도 있었고
애써 담담한 얼굴을 유지해야 했던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나는 '힘듦에 대한 역치'가 비교적 높다고 생각하는데
그 역치를 훌쩍 넘어서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고 나면 내가 힘들다 말하는 것이
오히려 사치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 중에는 기구한 삶이라는 말이 너무 쉽게 떠오르는 환자들도 있었다.
오늘 이야기 할 사람도 그 중 한 명으로 내가 연로하신 인턴선생님으로 불리던 시절에
비뇨기과 스케줄을 돌며 만났던 환자였다.
이십대 중후반 나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래전 기억이라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하진 않지만, 한 순간만은 선명하다.
다음 날 예정된 수술을 앞둔 환자였고 채혈을 위해 병실에 들어선 그 순간이었다.
여자 병실이었는데, 그 환자가 있어야 할 가운데 자리 침대에 남자처럼 보이는 짧은 머리를
한 사람이 환자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OO씨 이름을 불렀더니 그 환자가 말했다.
"네 제가 OO 에요."
짧은 머리, 약간 허스키한 걸걸한 목소리.
하지만 내가 채혈한 그 환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분명 여성의 이름을 가진 분명 20대 여성 환자가 맞았다.
채혈을 마치고 나서, 나는 그 환자의 병에 대해 궁금해졌다.
내일 무슨 수술을 앞두고 있는지, 그 동안 살아온 삶은 어떠했는지.
그 환자는 선천성 부신과다형성증 환자였다.
이 병은 부신이라는 콩팥 위쪽의 조그만 장기에서 하나의 호르몬을 만드는 효소가
선천적으로 결핍되어 발생하는 유전 질환이다.
이 질환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수가 없다.
부족한 효소 때문에 필요한 호르몬이 만들어지지 않아 뇌하수체라는 곳에서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라는 것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그로 인해 부신이 비대해지고
그 결과 필요한 호르몬은 만들어지지 않은 채 남성호르몬인 안드로겐이 과다하게 생성되게 된다.
그 환자는 염색체 46XX로 분명 여아로 태어났으나 외부 생식기는 모호했을것이고
자라면서 남성화가 서서히 진행되었을 것이다.
자궁과 난소등 내부 생식기는 정상이었겠지만, 신생아 선별검사를 받지 못해 조기 진단도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그 환자는 바로 그 단 하나의 효소의 결핍 때문에 '여성'으로 발달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정상적인 유전자 하나만 부모 중 누구에게서라도 물려받았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평범한 여성으로의 삶이 펼쳐졌을 것이다.
그 환자는 여고를 졸업했고, 스스로도 여성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진행되는 남성화로 인해 결국 환자는 남성 외부생식기로 교정하는 수술을 받았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의 언니 또한 같은 질환을 겪었고 이미 몇 해 전 같은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자매로 태어나 같은 교복을 입고 여고를 다녔지만 이제는 형제로 살아가야 하는 삶.
평범한 여성으로도 그렇다고 평범한 남성으로도 살아갈 수 없는 삶
이런 삶을 두고 '기구한 삶'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삶을 기구하다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늘 인간이 진화의 최정점에 서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믿음 뒤에는 허술하고 취약한 몸의 구조가 숨어 있다.
사람의 몸은 남녀모두 같은 원판을 쓰기 때문에 아주 작은 효소 하나, 호르몬 하나로 인해
생물학적 성조차 불분명해질 수 있다.
이 위태로운 구조 위에 우리는 평범하다고 말하는 삶을 겨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간혹 생각한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보장된 일이었던가
그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들 몸안에서 한치의 오차없이
조용히 할일을 다 하고 있었던가.
남들보다 더 잘살고 싶다는 가당치 않은 욕심이 스물 스물 올라올때면
평범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얼마나 큰 기적같은 일인지를 다시 상기시켜주는
그 환자의 삶을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