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기후 -상(上)

(Emotion Climate)

by 짧아진 텔로미어

감정기후 - 상(上)



서울 북부,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신경과학연구소 3동.

이곳은 사람의 감정을 분자 단위로 분석하는 국가 프로젝트의 핵심 기관이었다.

'감정의 물질화'라 불린 이 실험은 단순히 뇌 속의 전기적 신호를 측정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감정을 나타낼때 미세한 화학물질이 같이 발산된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였다.

그 화학물질을 검출해 감정을 계량화하려는 시도였다. 궁극적으로는 그 화학물질을 이용해

사람들의 감정을 통제하는것이 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했다.

연구 책임자 이서현 박사, 35세. 녀는 만 2세때 미적분을 척척 풀던 IQ 190 신동으로

학계를 떠들석하게 했다 돌연 사라 천재다.

언론 노출에 피로감을 느끼고 한동안 잠적한 동안 외국에서 여러분야에서 학위를 마쳤다.


그녀는 20대에 이미 화학, 생물, 의학 등 다수의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하였고

이후로 이곳에서 조용히 국가의 기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박사는 감정이 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로 변환된다는

가설을 세운 사람기도 하다. 사람이 감정을 느끼는 순간 뇌로부터의 전기 신호이외에

감정물질로 배출되어 공기를 미세하게 변화시키며, 그 입자는 주변의 금속, 수분, 온도에

반응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터무니 없는 가설을 아무도 믿어 주진 않았으 여러번 반복한 실험에서

이 가설을 뒷받침 할만한 결과가 나왔다.

불안을 느낀 피실험자의 주위 공기의 온도가 0.03도 떨어지고,

분노한 피실험자의 주변 금속봉이 미세하게 산화반응이 일어남을 관찰하였다.

감정은 단지 내면뿐이 아니라, 외부로 흘러나오는 물질로도 변형된다는 가설을 확인였다.

그 물질은 감정상태에 따라 구조적으로 약간의 변형이 있었고

각각의 감정에 따라 공기중의 물질과 반응했을때 결과는 달랐다.

분노의 감정으로 배출된 물질은 산화 반응을 일으켰고 슬픔의 감정은 수증기를 응결시키고

두려움의 감정은 수증기를 냉각시켰다.

쁨으로 배출된 감정은 공기 분자를 진동시켜 기온을 상승시켰다.

이러한 반응은 너무 미세하게 일어나 실제로 큰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서현 박사는 여러번의 시행착오 끝에 감정물질의 반응을 촉매할수 있는 화학물질을 합성해 냈다.

가칭 SH-10이라는 물질은 화학 반응의 촉매의 역할을 해서 감정반응 속도를 수만배 이상 높혔다.


이서현 박사는 특유의 날카로운 사고력과 천재의 직관으로 수년간 연구끝에

SH-10 이라는 물질을 대량합성하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날 밤 사고가 일어났다.

냉각실 2호기 압력 밸브가 미세하게 파손되면서, 고농도의 SH-10 이 실험실 내부로 누출됐다.

그 시간, 야간 근무 중이던 실험 보조원 두 명이 갑자기 서로 말다툼을 시작했다.

언성이 높아지자 벽면의 철제 선반에 붉은 녹이 피어올랐다.

온도센서가 갑자기 치솟았고, 조명은 폭발하듯 터졌다.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 내부는 검게 탄 흔적과 함께 기묘한 냄새로 가득했다.

그 냄새는 금속과 피, 그리고 어떤 생체 반응이 뒤섞인 듯했다.

서현은 폐쇄된 CCTV를 되돌려보다가 멈췄다.

두 사람이 싸우던 마지막 순간, 공기가 붉게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분노가 불꽃처럼 공기 자체를 태우는 것같았다.


그날 이후, 도시는 변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녹이 슬고 스파크가 일었고,

장례식장 주변엔 이슬이 과도하게 맺혀 습도가 급상승했다.

비 오는 날 교통사고 현장 근처에서는 이상하게 공기가 차가워지고,

사람들은 이유 모를 오한을 느꼈다.


기상 전문가들이 이를 "감정기후"라 부르기 시작했다.

상청은 긴급 보고서를 냈다. 공기 중의 미세입자 농도가 불안정하게 변동하며

이 변화가 감정과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 하지만 정부는 진실을 은폐했다.

사고의 근원이 국립신경화학연구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적 혼란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이서현 박사는 내부 문건에서 SH-10의 유출량을 확인했다.

0.3리터. 하지만 그것은 순수 정제 상태였다.

공기 중에서 반응하며 자기 복제형 화합물로 변할 가능성이 있었다.

밤새 연구소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서현은, 이상한 현상을 목격했다.

하늘의 한 구역이 미세하게 붉은 기운을 띠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건 단순한 오염이 아니었다. 감정이 공기를 물들인 것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우리가 건드린 건, 공기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었어.

사고 이후, 3개월. 서울의 하늘은 더 이상 투명하지 않았다.

낮에도 미세한 안개층이 도심을 감쌌고, 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무표정해졌다.

사람들이 말했다.

"요즘은 날씨가 아니라, 사람 기분 보고 출근해야 해."


7월 중순, 강남역 근처에서 발생한 '집단 분노 폭발 사건'은 모든 걸 바꿨다.

한 남성이 교통 체증 중 차를 세우고 고성을 지르자, 주변 운전자들이 연쇄적으로 격앙되기 시작했다.

불과 몇 초 만에 공기가 붉게 변했고, 주변 차량 48대가 동시 발화했다.

영상에는 붉은빛 연기가 하늘로 솟으며 금속이 녹아내리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기상청은 "기상현상이 아니라, 심리적 요인에 따른 대기 화학 반응"이라고 발표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두려움을 느꼈다.


정부는 긴급히 감정기후관리청을 신설했다.

감정기후관리청는 감정 데이터의 수집과 감정 예보를 담당했다.

이후로 모든 국민은 '정서안정 밴드'를 손목에 착용해야 했고 실시간으로

분노, 슬픔, 공포, 기쁨의 지수가 측정되었다. 수치가 급상승하면 곧바로 경보가 울렸다.


"사용자 감정지수 7.3 — 분노 위험 단계입니다. 진정제를 복용하십시오."

길거리에서 갑자기 누군가 울면, 주변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눈물이 응결되어 대기 중 수분을 끌어당기면, 소규모 안개가 발생했다.

지하철 안에서 두 명이 말다툼을 하면, 철제 손잡이에서 녹이 슬고 금속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감정이 더 이상 개인의 내면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기의 질병이었다.

서현 박사는 연구소의 감시망 속에서 조용히 데이터를 모았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물질이 전 지구적 규모로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감정기후를 '국가적 통제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었다.

대통령 담화문이 전국에 중계되었다.


"우리는 감정이 만든 재난과 싸워야 합니다.

감정기후관리청은 국민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모든 감정 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것입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감정을 맘대로 나타낼 수 없게 되었다.

공공장소에서 웃는 것조차 위험했다.

웃음은 대기 중 분자의 진동을 가속시켜 공기 온도를 상승시켰다.

지나치게 웃는 사람은 '기후 교란자'로 분류되었다.


장례식장은 냉각시설이 강화되었다.

울음은 수증기 응결을 일으켜 실내 습도를 높였고, 전자장비가 쉽게 손상되었다.

정부는 슬픔을 표현하는 대체 행위를 권장했다.

"눈물 대신 10초간 침묵하십시오."

사람들은 울지 못했고, 대신 무표정 예절을 배웠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새로운 과목이 생겼다.

'감정위생' 학생들은 매일 아침 감정지수를 보고하며, 감정 억제 훈련을 받았다.

교사는 말한다.

"기쁨은 온도를 높입니다. 웃음을 참아보세요. 숨을 내쉴 때, 감정을 날리지 말아요."


연구소에서는 'SH-10중화제' 개발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서현은 매일 새벽, 냉각실 앞에서 혼잣말을 했다.

"처음엔 인간을 더 잘 이해하려던 거였는데…" 그녀의 손목에는 붉은 밴드가 있었다.

분노 지수 2.7. 불안 6.3. 그녀는 그 수치를 보며 스스로를 억눌렀다.


하지만 감정은 단순히 억제된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억눌린 감정이 일정 농도를 넘어서면, 대기는 새로운 반응을 일으켰다.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지하철을 타던 어느 날, 한 아이가 갑자기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천장 조명에서 물방울이 맺혔다.

사람들은 고개를 들었고, 5초 뒤 지하철 내부는 습기로 축축해졌다.


아이를 안은 어머니는 공포에 질려 입을 막았다.

그녀의 팔에 착용된 밴드가 푸른색으로 바뀌며 차가운 공기가 번졌다.

공포의 냉각 반응이었다.

몇 초 뒤, 주변 공기가 급격히 냉각되며 천장의 금속관이 얼어붙었다.

기온은 영하 4도. 도시는 점점, 감정에 의해 스스로 파괴되어갔다.



하편으로 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