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 Climate
이후로 도심 곳곳에서 감정 기후로 인한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
오늘은 최악의 감정사고가 있었다.
빽빽한 빌딩 사이로 분노 반응으로 인한 붉은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곧이어 대형 쇼핑몰에서 감정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그녀는 보고서를 열람했다.
점원과의 말다툼으로 시작
사망자 32명.
감정기후 지수: 분노 9.8.
공기 온도 상승: 180도
그녀는 SH-10의 확산이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다.
감정입자는 자기복제성을 통해 이미 대기 전역에 퍼졌고
감정은 더 이상 신체의 반응이 아니라 도시의 기후 요소가 되어버렸다.
감정기후관리청은 전국을 8개의 감정구역으로 나누고 매일 아침 감정기상도를 발표했다.
"오늘 서울 전역은 낮은 분노와 고요한 공포가 확산될 예정입니다."
"오전 10시 이후 기쁨 수치 상승 가능성 있으니 마스크 착용을 권장합니다."
거리의 전광판에는 온도 대신 감정지수가 표시됐다.
분노 2.1, 슬픔 3.4, 공포 1.9, 기쁨 0.2.
사람들은 이제 그 숫자에 따라 일상의 리듬을 조절해야 했다.
"오늘은 분노지수가 높으니 회의는 취소합시다"
"기쁨지수가 0.5를 넘으니 야외활동 금지입니다."
다음 날 오후, 서울 강남외각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감정기후 관측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산화 반응을 기록했다.
기록상으로는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분노 파동'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건 또 하나의 비극적인 감정사고였다.
그리고 그 비극의 주인공은 이서현 박사의 아들이었다.
아들, 지우는 열네 살이었다.
평소 온순한 성격이었지만, 그날 학교에서 친구와 사소한 언쟁을 벌였다.
지우의 감정지수 밴드는 그날 오전까지도 안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교실 CCTV에는 당시의 장면이 찍혔다.
서로의 격앙된 소리가 높아지면서 친구가 지우의 몸을 밀쳐 책상이 넘어지고
아이들이 갑자기 뒤로 물러서는 순간
지우의 몸 주변 공기가 붉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치 온도차로 인해 기류가 일렁이듯
그의 팔과 가슴 부위에서 희미한 붉은 아지랑이 피어나는듯했다. 교사가 지우에게 다가가
감정지수 밴드를 확인하려는 순간, 곧바로 온도 경보가 울렸다.
[경고: 감정발화 반응. 주위 온도 42.9℃ 상승.]
지우의 눈이 커지고, 그의 입에서 뜨거운 짧은 숨이 튀어나왔다.
그 분노는 SH-10의 증폭효과와 결합해, 그의 내부에서 산화반응을 폭주시켰다.
그리고 몇 초 뒤, 아이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내부 발열이 스스로를 연소시키는 형태로 이어졌고, 그 어느 소화기도 막지 못했다.
이를 지켜본 아이들의 울음과 공포로 습기가 차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고야 발화를 멈췄다.
지우는 구급차가 도착하기 훨씬 전에, 이미 전신 화상으로 의식을 잃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40시간 동안 생명유지 장치로 호흡을 유지했지만
이서현 박사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순간, 심전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아들의 장례를 치른 지 사흘 뒤, 정부는 새로운 긴급조치를 발표했다.
감정기후관리청은 시민들의 감정지수 상한을 더욱 낮추었고, 모든 종교·문화·예술 활동을
'기후 위험군'으로 규정해서 규제하기 시작했다.
박수 소리는 공기 분자를 급진동시켜 온도 상승 위험이 있었고, 집단 합창은 습도 변동과
산화 반응 조건을 일으키지 않는 조건하에만 할 수 있도록 강화했다.
결혼식조차 '감정 안정식'이라는 이름 아래 조용한 의례로 변했다.
거리는 조용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누구도 울지 않았다.
사람들은 감정을 소리 없이 방부처리된 유물처럼 다루었다. 도시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엔 공포가 아닌 무감이 자라나고 있었다.
전국의 감정기후는 8개월째 비상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도시의 하늘은 늘 반투명한 막 아래에 갇힌 듯 흐렸고 사람들은 빛이 고여 있는 곳에서조차
얼굴에 깊게 패인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시간. 국립신경과학연구소 3동 지하 B2층.
이서현 박사는 슬픔을 억누르며 비인가 구역에서 홀로 새로운 화학식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연구소에 강한 압박을 넣었다.
"박사님, SH-10의 완전한 통제 기술을 국가가 소유해야 합니다.
감정은 재난입니다. 재난은 국가가 관리해야 합니다."
그들의 말은 단언처럼 들렸다.
그들의 눈에는 두려움보다 욕망이 더 짙게 깔려 있었다.
감정기후를 통제하는 힘은 곧 사람을 통제하는 힘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서현은 침묵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다른 결정을 이미 내리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아들을 잃고 난 뒤, 그녀는 은밀하게 SH-10의 반대 작용을 하는 물질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가칭 'Reverse SH-10'.
SH-10이 감정을 대기 반응으로 증폭한다면,
Reverse SH-10은 감정입자 자체를 결합·중화시켜 공기 중에서 비활성화시키는 원리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감정 자체가 신체에서 생성되지 않게 된다는 점이었다.
감정은 전기 신호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SH-10 반응의 초기 단계에서 소거되었다.
서현은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들을 잃은 순간, 인간성의 정의는 그녀에게서 무너져 있었다.
감정이 아들을 죽였고, 감정은 도시를 붉게 타오르게 했고, 감정은 이미 세계를 침식하고 있었다.
'감정은 더 이상 인간의 일부가 아니야… 질병이야."
그녀는 반응 속도를 조절하며 수백 번의 실험을 반복했고 마침내
Reverse SH-10의 안정화에 성공했다.
그 희미한 푸른빛을 띤 용액은 SH-10과 정반대의 반응성을 지니고 있었다.
서현은 연구실 내 비밀 저장고에서 reverse SH-10 시료를 꺼냈다.
이 물질은 감정이 공기와 반응하는 순간, 감정분자를 파괴한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 그 자체도 뇌에서 생성되기 어렵게 만든다.
국가는 감정 폭발을 통제하려고 했지만
서현은 이미 국가는 감정을 이용해 국민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정부가 감정지수 데이터를 이용해 ‘고위험군’을 선별한다는 문서도 보았다.
정서안정 밴드는 감정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의 기초 데이터였다.
감정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국가의 도구가 되었다.
새벽 3시 경비 시스템이 다운된 시간대를 노려
서현은 연구소 지하에서 reverse SH-10을 대기 중으로 방출했다.
첫날,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일주일 뒤, 감정기후는 뚜렷하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말다툼에서도 스파크가 더는 튀지 않았고, 장례식장의 습도도 평소와 같았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웃어도 온도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감정 밴드는 대부분 0~1 사이에서 움직였다.
그녀의 손목 밴드는 말 그대로 ‘무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분노 0.1, 슬픔 0.0, 공포 0.0, 기쁨 0.0.
감정은 위험했지만, 감정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대기 순환 시스템을 타고 전국에 퍼지기까지는 보름이 걸렸다.
실내의 습도 변동은 사라졌고 금속 산화 현상도 멈췄고
교통사고 현장에서 나타나던 냉각 반응 또한 보고되지 않았다.
감정기후 예보는 처음으로 전국 감정의 안정을 발표했다. 국가는 이를 성과라고 발표했다.
"감정기후 안정화에 성공하였다"라고 뉴스는 자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어떤 표정도, 어떤 감정도 흐르지 않았다.
도시는 평온했지만, 그것은 생명이 없는 사막의 평온이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스쳐 지나가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이 없는 학교는 건조했다.
대학 캠퍼스의 벤치들은 비어 있었고 카페에서는 커피 머신의 기계음만이 공기를 채웠다.
이서현은 도시의 풍경을 보며 깨달았다.
'나는 감정기후를 멈춘 게 아니라, 인간을 멈춘 거야.'
Reverse SH-10이 안정화된 지 석 달째 되던 날 서현은 한 병원에서 발생한
이상한 보고를 받았다. 서울 서부의 작은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신생아 한 명.
'대기 반응이 일어났다’는 보고였다.'
서현은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 앞에는 의료진이 몰려 있었지만, 누구도 아이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아기가 얼굴 근육을 실룩거렸다. 미소를 닮은 표정의 얼굴로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감정이 소거되었기 때문에 미소는 아니었다.
그 순간 병실 안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따뜻해졌다. 누군가 말하였다.
"병실이 좀 따뜻해진 것 같아요.”
아주 미세한 상승. SH-10이 퍼졌던 초기에 관찰되던 기쁨 반응이었다.
그 따뜻함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그건 미소였다.
아기가 숨을 내쉬자, 의료진의 볼에 아주 미세한 물기 같은 것이 맺혔다.
그것은 눈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눈물이 될 수도 있는 감정의 흔적기관 같았다.
이서현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서는 분명 감정이 새롭게 자라고 있었다.
그녀은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이건 분명… 감정이… 다시 태어나고 있는 거야."
아이의 주변 공기는 너무도 조용했지만 그 조용함 속에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인간의 따뜻함이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도시는 감정을 잃은 채 메마른 껍질처럼 살고 있었지만,
그 속에서 전혀 새로운 감정의 싹이 자라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인간이 스스로 다시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작은 손을 허공에 뻗었다.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누군가의 가슴으로부터 오래전 사라졌던 어떤 떨림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목 밴드가 아주 약하게 깜빡였다.
기쁨 0.1 → 0.8 → 1.4.
그 미세한 수치는 도시 전체가 잊고 있던 감정의 귀환을 알리는 첫 신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