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절대 사기 같은 건 당하지 않아

by 짧아진 텔로미어

난 절대 사기 같은 건 당하지 않아



나는 오래도록 이렇게 생각해 왔다.

사기라는 건 어리숙한 사람들,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당하는 거라고.

뉴스에 나오는 보이스피싱 피해자들, 지인에게 수억을 뜯겼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속으로 혀를 찼다.

"도대체 어떻게 저런 말을 믿지?'

한심한 사람들이군.. 그렇게 치부하고 나는 다르다고, 나는 절대 속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때 아이러브스쿨이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초·중·고 동창을 찾아주는 그 서비스가 한동안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졌다.

나도 물론 가입해 중학교 시절 학교와 친구들 이름들을 하나하나 검색해 봤다.

중학교 2학년 때 정말 친했지만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겼던 친구 한 명과 다시 연락이 되었고,

중3 때 늘 셋이 몰려다니던 무리 중 한 명과는 그때 연락이 닿아 지금까지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 명, 아무리 찾아도 친구를 찾을수가 없었다.

동창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고개를 저었다.

"걔? 나도 몰라." 여러 번 시도 끝에 결국 나는 그 친구를 찾는 걸 포기했다.

기억 속에서만 남겨두기로 했다. 그 친구 이름은 김ㅇㅈ이었다.


병원을 개원하고 몇 해가 흘렀을 무렵이었다.

오전 진료가 거의 끝나갈 즈음,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진료실 문을 열었다.

"원장님… 친구분이라고 하시는 분이 오셨어요."


대기실로 나가자,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OO야, 나 김ㅇㅈ이야. 기억나?"

이름을 듣는 순간, 그렇게 찾던 그 친구 이름에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야 너무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우리 학교 올라가던 길 너무 길었었는데 같이 자주 올라갔잖아"

그랬다.. 큰길에서 학교 정문까지가 꽤 길었던 기억이 있었다.

판단력은 구체적인 디테일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법이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병원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사를 시키고 그는 담임 선생님 이름과 얼굴 등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기억날 듯 안 날듯한 몇가지 얘기를 하고 식사를 마칠 무렵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근황을 꺼냈다.

"나, 미국에 살고 있어서 그래서 그동안 연락을 못 했어."


혹시 아이들 유학 계획 있으면 자기가 다리를 놓아주겠다며,

쪽지에 미국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내밀었다.

그러다 말끝을 흐리며 덧붙였다.


"근데 말이야… 내가 어제 지하철에서 여권이랑 지갑을 잃어버렸어.

재발급 신청은 해놨는데 며칠은 걸린다더라. 그동안 쓸 돈이 좀 필요해서…"

그 순간, 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학교 졸업 이후로 만나지 못한 친구를 찾아오진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진료 시간이 다되어 점심값을 계산하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닌것 같다고

말하고 병원으로 돌아왔다.

진료가 끝난 뒤, 그가 적어준 주소를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화면에 뜬 글들.

'사기꾼을 조심하세요. 동창 사칭 사기꾼"

그 사람이 적어준 같은 주소 그리고 그 사람의 사진. 그였다.

비슷한 얘기들이 몇 개 더 있었다.

각 초등학교, 중학교 동문 주소록을 구해 사람들을 타깃으로 삼고

동창을 연기하며 접근하는 수법이었다.

나는 그 명단 중 하나였고, 우연히도 그가 연기한 친구는 내가 오래전부터

찾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친구 이름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찾고 있던 친구를 만났다는 생각 하나로

모든 의심을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나는 절대 사기 같은 건 당하지 않을 거라 믿어왔는데, 우습게도 아주 쉽게 속았다.

피해랄 것도 없다면 없다. 사기꾼에게 점심 한 끼를 사준 정도니까.

그날 이후로는 뉴스 속 사기 피해자들이 더 이상 한심해 보이지 않다.

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점심값으로 배웠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