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현장, 그리고 시작
새 차를 사면 이것저것 받는 것들이 있다. 요즘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영업사원의 재량으로 블랙박스를 무료로 달아 주기도 하고, 회사 차원에서 다양한 사은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골프공, 의류, 우산, 화장품 등 그 품목도 다양하다. 또, 사업소에서 엔진오일을 교체해 주거나 냉각수와 와셔액을 보충해 주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제품들은 '액세서리 품목'으로 구분된다.
액세서리 품목에는 일반 양산 부품은 아니지만 차량에 장착되는 제품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차를 좀 더 커 보이게 하고 편의성을 높여주는 사이드 스텝, 음료를 시원하게 보관할 수 있는 빌트인 냉장고, 캠프 장비를 실을 때 유용한 루프 박스 등이 있다.
이번 여름부터 나는 이러한 액세서리 부품들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전에 담당하던 ADAS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배터리 같은 전장 부품과 비교하면 생활 제품에 가까운 품목이다. 거래하는 협력사의 규모도 큰 차이가 난다. 이전에는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대기업이나 연 매출 1조 원 규모의 중견기업이 대부분이었지만, 액세서리 품목은 연 매출 10억, 30억, 100억 정도의 중소기업이 주로 다룬다. 이로 인해 협력사와의 회의 분위기도 확연히 다르다.
대기업과의 회의가 '직원'들과의 협의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오너들, 그리고 현장에서 닳고 닳은 직원들과의 치열한 협상이 된다. 예전에는 수억, 수십억 원의 금액을 조정하던 회의였다면, 이제는 백만 원조차 쉽게 양보할 수 없다. 분위기는 더욱 절박하고 협상은 그만큼 신중해진다.
액세서리 제품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소싱될까?
디자인 컨셉이 정해진 후 마일스톤(Milestone)에 맞추어 소싱되는 양산 제품과 달리, 액세서리 제품은 마케팅 부서의 요청으로 소싱이 시작된다. 시장과 고객의 요구를 분석하여 구매 부서에 제품 소싱을 요청하고, 이에 따라 구매 부서에서 소싱을 진행한다. 혹은 대리점이나 직영 사업소에서 필요한 물품을 요청하여 소싱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공구 같은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액세서리 제품들은 이미 시중에 판매 중인 제품을 구매해 대리점과 직영 사업소에 판매하는 경우도 꽤 있다. 차량 수리 시 필요한 소모품이나 블랙박스처럼 추가 작업이 필요한 품목을 회사 차원에서 대량으로 확보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다. 대신, 네이버나 쿠팡 등에서 판매되는 제품과의 차별성을 위해 제품 포장에 회사 로고를 새기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제품이므로 고객이 인터넷에서 더 저렴한 가격을 찾아 직접 구매하고 일반 정비 센터에서 장착하는 경우도 있다.
완성차 회사의 서비스 센터는 모두 그 회사에서 운영할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블루핸즈(현대), 엔젤센터(르노코리아), KG모빌리티 서비스 센터는 모두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곳이다. 개인 정비센터와 유사하지만, 특정 브랜드의 부품만을 공급받아 해당 브랜드 차량만 수리하는 차이점이 있다. 반면, 직영 사업소는 회사가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며, 이곳에서는 회사 소속 직원들이 근무한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 작업을 멈추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의 직영 사업소는 오후 5시가 지나면 접수만 하고 수리는 다음날 진행한다. 예외적으로 일부는 별도의 법인이 운영하기도 한다.
액세서리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 중에는 직접 생산 시설 없이 중국 업체에서 제품을 수입해 완성차 회사가 요구하는 조건 (포장 사양, 납기 기한, 납품 수량 등)을 맞춰 납품하는 대행업체들도 많다.
이들 업체의 대표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회사 생활을 하며 안정적인 수입을 누리다가 창업에 도전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회사에서 쌓은 인맥이나 비즈니스 관계를 발판으로 삼아서 말이다. 이러한 관계가 창업 초기부터 거래 고객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제는 백세 시대다. 60세에 퇴직하더라도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금전적 문제를 떠나서라도 오랜 기간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너무 긴 시간이기에, 미리부터 나만의 무언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하고 싶었던 일이나 꿈꾸었던 일을 천천히 준비해 본다면 언젠가 기회가 맞아떨어져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