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독한 지 일주일이 되어서야 이 글을 쓰게 됐다. 본래 책을 읽은 지 사흘 안에 '독서만필'을 쓴다는 철칙을 세웠지만, <현대수학의 여행자>를 읽고 나서는 어떤 구성으로, 무엇을 주제로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첫째로 '수학'을 다룬 책인 까닭이었다. 그리 두껍지도 않은 책이었으나 단락마다 내용들을 이해하기가 버거웠다. 그리고 수학공식은 다시 내게 생소해졌다. 모처럼 수학이랑 화해하려고 집어 든 책이 다시 불화를 조장한다.
저자는 현대수학의 주요 쟁점들이 일반인의 인식과 많이 괴리된 상태를 바로 알고는 있다. 많은 비유와 실생활에의 접목 양상을 공들여 설명하는 저자의 노력이 상상되긴 한다. 하지만 수학 전문용어와 공식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나 보다. 아니, 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나 좀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완독 후에도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았다.
저자 선생님, 제목을 보고 기행문을 기대했는데 출장 보고서를 쓰셨군요 (sections.maa.org)
사실 이해하기 쉽게 쓰려는 의도와 지루하지 않게 쓰려는 의도는 동시에 충족시킬 수 없는지도 모른다. 일견 이해하기 쉬우면 지루하게 느낄 리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많은 용어들을 자세히 풀어 설명하는 작업이 곧 양의 방대함을 불러온다는 사실이다. 양이 방대해지면 현대수학이 다루는 쟁점만을 간추려서 담을 수 없다. 이 책에서는 특히 몇 장에 걸쳐서 군론(群論)이라는 제재가 나오는데, 이 군론은 고등학교 수학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다(내가 수능을 본 게 5년 전이니 현행 교육과정은 어떤지 모르겠다). 만일 잠깐씩 등장하는 이런 개념까지 다 포착하여 풀이해 준다면, 과장일 수 있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를 썼던 만큼의 양(과 깡다구)은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현대수학의 여행자>로부터 얻어낸 감상은 어떠한가, 그리고 성취된 바는 무엇인가. 현대수학의 제쟁점들-소수(素數)의 최댓값 구하기, 4차원 도형 만들기, 프랙탈 규칙 규명하기-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수학에서의 규칙이 어떻게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지:
(위상수학이 원과 도넛과 컵은 본래 하나의 도형이라고 알려준다. 아, 동일한 존재라는 인식이 있으면 컵 안에 도넛을 넣을 수 있구나. 인간관계에서도 상대를 '등신 같은' 나와 똑같이 인식하는 순간, 내가 상대를 오히려 보듬거나 삼켜버릴 수 있구나)
하지만 이런 감상은 사전을 통해서나 각 주제들을 세부적으로 다룬 좀 더 전문적인 서적에서도 얻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학 서적을 읽기에 앞서 이러한 유의점들을 유념할 것을 가르쳐준 것, 이것이 이 책이 이룬 최대 성과가 아닐까.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가 아니던 시절, 학제 간 통합이 유연하지 않던 시절의 한계이겠거니 생각한다(잠깐 구글링 해보니 영어판 원본은 1988년에 나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