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온 방법
/ 내가 살아온 방법
내 삶에는 설명서가 없었다.
사람들은 거의 모두 어릴 적 주변에 널려있는 여러 종류의 인생 설명서로부터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며 자란다. 살다가 삶이 고장 나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세상이 만만치 않을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남자라는 이름으로 서 있게 되면 어디쯤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부모, 형제, 친척, 집안 어른 등으로 표현되는 그런 종류의 설명서 말이다.
나의 주변에는 그런 흔한 설명서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늘 직접 조립해야 했다. 인생이라는 물건을 상자에서 꺼내 설명서 없이 끼워 맞추며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잘못 끼운 부품도 있고, 아예 빠뜨린 채로 오래 사용한 기능도 있었다. 그래도 고칠 사람은 나뿐이었으니, 다시 풀었다가 다시 조였다. 그렇게 나는 ‘혼자 하는 법’에 능숙해졌다.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하는 습관은 어느새 일상처럼 굳어졌다. 도움을 청하기보다는 혼자 방법을 찾고, 남에게 물어보기보다는 스스로 관찰해 터득했다. 삶은 나에게 늘 독학으로 시험을 치르게 했고, 나는 혼자서 스스로 생각해서 답안을 만들어 제출했다. 채점 기준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낙제는 면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종종 “혼자서도 잘 사네”라는 말을 들었으나, 그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는 지금도 좀 헷갈린다.
문제는 나 혼자 살아가는 물리적인 방법이 아니라 세상은 혼자 사는 데가 아니라는데 있다.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세상을 살아가는 설명서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버튼 하나만 잘못 눌러도 삐걱거리고, 침묵만 길어져도 오작동한다. 나는 관계 앞에서 늘 서투르고 신중했다. 마음을 여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어떤 때는 자동문처럼 너무 쉽게 열리고, 그렇게 쉽게 열어준 사람들에게 위로 보다는 상처를 받는 일이 더 많고, 그러다 보니 쉽게 열려야 할 마음의 문이 조금씩 닫혀 미닫이문처럼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열게 됐다. 어느 순간엔 열고 있는 건지 닫고 있는 건지 나조차 헷갈릴 때가 많았다. 오히려 항상 닫혀있는 상태로 살았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마음의 문을 연다”는 일이 무얼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잘 모른다.
누군가는 내게 차분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거리감이 있다고 말한다. 가끔은 단단해 보인다고도 하고, 많은 이들이 차갑고 냉정하다고 한다. 그러나 실은 그래서가 아니라, 기대는 법을 몰라서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더 많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는 간단한 공식은, 일찍 배워 오래 써먹은 생활 요령이다. 다만 이 공식은 인간관계에서는 썩 유용하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뿐이다.
혼자 해결하는 삶에는 참으로 웃지 못할 장면들이 많다. 아파도 참다가 병을 키우고, 힘들어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삭인다. 그러고는 “괜찮다”라는 말을 꽤 그럴듯하게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말은 상대를 안심시키기보다는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한 주문에 가까운 말이었다.
나이가 들어 늙어 가면서 조금씩 알게 된다.
모든 걸 혼자 해내는 사람이 꼭 강한 것은 아니라는 것, 때로는 도움을 받는 일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갑자기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태도는 관절처럼 쉽게 펴지지 않는다. 다만 예전보다는 덜 고집스럽게, 자신을 스스로 웃으며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달라졌다면 달라진 점이다.
내 삶에는 여전히 설명서가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꼭 완벽히 조립되지 않아도 쓸 수 있다는 것을. 약간 덜컹거려도, 소리가 좀 나도, 그 나름의 사용감이 있다는 것을. 남들처럼 설명서를 보고 거기에 기대 깨우치는 대신 나는 다른 방식으로 배웠다. 실패로부터, 침묵으로부터, 그리고 혼자 앉아 오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으로부터.
아직도 나는 혼자가 편하다.
그러나 지금은 옆자리에 누군가 앉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설명서를 들고 있지 않더라도, 서로 고개를 맞대고 한 페이지쯤은 함께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 그것만으로도, 이 설명서 없는 삶이 조금은 유쾌해지는 느낌이 든다
덧붙임 : 쓰고 보니 내가 고아인줄 오해하는이가 있을것 같아서~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어 끈끈한 정으로 엮여 같이 살았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