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원을 만드는 군상들, 조금 늦게 자라는 것들
기억은 오래된 지도와 닮았다.
어떤 길은 흐려지고
어떤 골목은
또렷하게 남아있다.
어려서
몇 갈래 길이 만나는 곳,
마당 너른 집에서
자전거를 배웠다,
어머니는
뒤에서 안장에 손을 대고
나를 밀어주었다.
앞으로 가고 있었지만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길은 대부분
내가 스스로 간 길이 아닌,
어머니의 손길이 보내준
그런 길이다.
어느 날
다른 아이의 자전거 뒤에서
그 아이의 세상을 밀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그날 바로
자전거 한 대를 데려왔다.
어머니는
내가 넘어지는 것보다도
남의 세상을
뒤에서 밀고 서 있는 모습을
더 못 견뎌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나에게
세상이라는 길은
바퀴 두개만으로는
균형 잡기 쉬운 곳이 아니다.
다른 아이들 길에는
아버지라는 손잡이가 있고
삼촌이라는 바람막이도 있고
사촌이라는 동행도 있지만
나의 길에는
오직 바퀴 두개와
두 사람의 그림자만 있다.
그런 나도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속도를 내는 법도,
세상을 밀어붙이는 법도,
끝내 능숙해지지는 못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것도
내 인생의 한 예고였을 것이다.
어느 날
길에,
군상들이 둥글게 서 있는
작은 풍경을 보았다.
그 시절의 군상들은 가끔,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원을 만든다.
그리고 그 원의 중심에는
대개
누군가의 무거운 하루가 놓여 있다.
나는 그 원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그 안의 일을 미리 알고 있다.
그 안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세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은 사람처럼
땅 가까이에 앉아 있고
쏟아내는 말들은
갈 길을 잃은 새들처럼
공기 속에서 천천히 흩어지고 있다.
군상들은 지껄이며
그 주위를 서성거린다.
군상들은 늘
잠시 갈 길을 잃은 사람을 가운데 두고
원을 만든다.
그 원 안에서
어머니는
오랫동안 세상과 씨름하다가
잠깐 쉬며
숨을 고르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직
그런 어머니를 번쩍 업어
그 군상들 밖으로 데려갈 만큼
크지 않았다.
어머니의 팔을 붙잡고
천천히, 힘들게
그 둥근 경계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날 밤 기도했다.
부디
빨리 커서
어른이 되게 해 달라고.
조금만 더 크면
어머니를 업고서라도
그 원 밖으로
걸어 나올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사람은
마음보다 천천히 자란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또 다른 사실을 안다.
어른이 되어서도
온전히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그저
서로의 옆에서
쉬 넘어지지 않게
잠깐씩 붙잡아 줄 뿐이다.
어머니는
이미 세월이라는 길을 따라 떠났고,
나는 아직 그 길 뒤에서,
가끔
어릴 적 자전거를 떠올린다.
인생이라는 것도
자전거와 닮아 있다.
누군가가 한동안
뒤에서 밀어주다가
어느 순간
그 손이 조용히 사라진다.
그때 그는
자기가 혼자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또 하나를 깨닫는다.
그가 평생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쓴 이유는
앞으로 가기 위해서라기보다
언젠가 뒤에서
자전거를 밀어주던 사람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인생은
멀리 달려온 길이 아니라
어머니가 한때
잠시
자전거를 밀어주던
그 짧은 순간에서
아직도 조금씩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이제 늙었지만,
어쩌면
아직도
어머니가 뒤에서
자전거를 밀어주던,
그 길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어머니는
세상의 그 무엇 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