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붙일 수 있는 불씨
만약에 우리는 꿈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서히 꺼져가는 불씨의 시간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대학 시절 게임개발자를 꿈꾸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리던 은호(구교환)는
현실의 벽 앞에서 조금씩 방향을 틀기 시작한다.
‘평범한 직장에 다니면 평범한 삶은 살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선택한 길은
거창한 실패도, 드라마틱한 비극도 아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끝에서 은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반지하 단칸방의 삶과,
한강뷰 아파트에 살며 성공한 동기들의 소식, 그리고 점점 작아지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꿈을 접었다는 사실보다 그 과정에서 은호가 서서히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는 점이다.
무력감은 예민함으로 변하고, 초라함은 날 선 말이 되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향한다.
곁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정원(문가영) 역시 그를 붙잡고 싶지만 결국 함께 무너져간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서로를 구하지는 못하는 관계.
이 영화는 그렇게, 꿈이 사라지는 순간보다 더 아픈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시간’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영화 속 은호의 모습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저런 순간이 찾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 꺼져가는 순간,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가는 순간,
그리고 스스로가 점점 작아지는 순간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있었을까.
아니면 언젠가 찾아오게 될까.
만약 그런 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나의 일상도 은호처럼 거창한 무언가가 있는 삶은 아니다.
다만 하루를 보내는 방식 속에 몇 가지 반복되는 작은 루틴들이 있을 뿐이다.
어떤 날은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도 있지만
그래도 짐을 챙겨 체육관에 가고,
책을 조금 읽고, 그날 할 일을 조금씩 해내며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나면 대단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제와 완전히 같은 하루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나는 아직 불씨가 꺼진 사람이 아니라,
혹시 꺼질 날이 오더라도 다시 붙일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반복하고 있는 이 작은 루틴들이 언젠가 삶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줄 무언가가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루틴의 중심에는 운동이 있다.
누군가에게 배워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지하 1층에 있는 체육관에 가서 매일 조금씩 몸을 움직였을 뿐이다.
그렇게 시작한 시간이 어느새 7년이 되었다.
처음 1~2년 동안은 그저 따라 하는 수준에 가까웠다.
무엇이 맞는지, 무엇이 틀린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 3년쯤 지나자 조금씩 몸의 감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게를 드는 방법보다 내 몸의 소리를 듣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남들이 하는 방식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루틴을 조금씩 찾아가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이것이었다.
이 일에는 특별한 보상이 없다.
어제 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해서 오늘 더 쉽게 되는 것도 아니다.
어제의 기회는 어제였고, 오늘은 또 오늘의 몫이다.
그래서 그저 그날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수밖에 없다.
1kg을 더 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어떤 날은 어제보다 단 1cm라도 더 들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쌓아왔다.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많지 않다.
일도, 사람도, 상황도 대부분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한 시간의 운동만큼은 내 의지로 시작하고 끝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이 루틴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변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식습관이 조금씩 바뀌고, 몸의 모습도 서서히 달라졌다.
다만 그 변화는 생각보다 아주 느리고 미세하게 찾아온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독하다거나 미쳤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까지 특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
지금의 운동은 어느새 일이라기보다는 숨을 쉬는 것처럼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 한 시간 동안은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나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생각해보면 내가 운동을 통해 얻은 것은 단순히 몸의 변화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느끼게 된 것은 루틴이 사람에게 주는 묘한 힘이었다.
세상에는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거의 없다.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도 늘 생긴다.
하지만 하루 중 아주 작은 시간만큼은 스스로 선택해서 반복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운동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책을 읽는 시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 시간이 특별한 성과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그 시간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하루가 조금 덜 흔들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삶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날에도,
적어도 나는 오늘 해야 할 작은 약속 하나는 지켰다는 감각이 남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루틴을 이야기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은호의 모습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꿈이 사라지는 순간보다 더 아픈 것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 수 있을까.
만약 그런 시간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아직 그 답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금의 나는 하루를 보내는 방식 속에서 작은 루틴들을 지켜가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대단한 해답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하루하루 쌓아온 이 작은 반복들이
언젠가 삶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를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오늘도 특별한 이유 없이 같은 루틴을 반복한다.
무너지지 않는 삶을 기대하기보다는,
혹시 무너지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만의 방식 하나쯤은 만들어 두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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