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비꽃이 피면

두 어머니

by 민들레



시어머니가 쓰러지셨다. 같이 살자 해도 굳이 ‘내 집이 편하다’라며 오시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병들지 않고 살다가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동짓달 눈발이 외투 속을 헤집고 들어온 날,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중풍이라는 병이 어머니를 덮쳤다. 멀쩡하던 분이 한쪽 수족이 마비되어 자리에 눕다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려운 살림살이가 하루아침에 더 세차게 뒤흔들렸다.

집에는 3년째 치매를 앓고 계시는 큰어머니가 누워계셨다. 나는 병원과 집을 오가며 두 분의 병간호에 매달렸다. 나 또한 다리가 성치 않아 손가방 하나 들기도 힘겨워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퉁퉁 부은 다리를 끌고 하루에 몇 번씩 병원과 집을 오가며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건강한 사람도 쉽지 않을 일이었다. 가끔 나는 병원의 복도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무거운 아이를 등에 업고 가파르고 높은 곳을 어렵게 올라가고 있었다. 어쩌면 꿈에서도 힘겨운 일상을 재현하는 것 같았다.

한 달 남짓, 병원에서는 더는 치료할 것이 없다면서 퇴원하길 권했다. 그때는 딱히 요양 보호가 법적으로 시행되지 않았다. 결국, 두 분 시어머니를 집에서 돌볼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어머니는 의료기 판매점에서 임대해온 침대에 누워 코로 미음을 드셨다. 소변 줄을 끼우고 있어서 많은 신경을 써야만 할 상황이었다. 잘못 움직여 소변 줄이 빠지면 응급차를 불러 대학병원에서 다시 소변 줄을 끼어왔다. 갑갑하여 미음 줄을 빼어버리면 다시 응급차를 불렀다. 누워만 있으니 욕창을 예방하려고 수시로 몸을 움직여 통풍이 잘되도록 했다.

어머니는 정신도 오락가락했다. 그러다가 가끔은 실실 웃었다. 퇴원한 지 석 달이 지났을 무렵에 그 증세가 심해졌다. 내가 방에만 들어가면 작은 이가 서 있다고 구석을 가리켰다. 나는 일부러 큰소리로 “거기 있는 사람 누구요 빨리 나가시오.” 하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그러면 안심한 듯 곤하게 잠이 들었다. 그런 일들이 여러 날 반복이 되었다. 어머니는 또 뜬금없이 “사돈하고 기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데, 사돈만 내려놓고 나는 내려주지 않고 기차가 계속 가고 있다.”라고 했다. 어머니가 달리는 기차에서 내리지 못할까 봐 걱정도 되었지만, 어머니의 꿈속에 들어가 말릴 수도 없고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낮이나 밤이나 기차만 탄다고 했던 어머니가 미음조차 못 먹게 되었다. 주사기로 미음을 드시면 계속 드실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음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드시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코에 넣은 미음 줄이 없어지자 시원하다고 하셨다. “아, 기차가 다 왔다”라고 했다. 이제는 기차에서 내렸다고 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가 윗옷을 올리며 등을 내밀고 긁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등을 두 손으로 긁어드렸다. 시원하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침대 발끝으로 가서 수술받은 내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일어나지도 못하신 분이’ 깜짝 놀라 일어났다. 꿈이었다. 내 꿈에 홀연히 오신 어머니. 3일 후, 나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보게 되었다. 곱게 한복을 입혀드리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는 눈가에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은 곱고 평온해 보였다. 돌아가신 분이 그렇게 고운 모습이라니…. 그 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 것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어느 소설에서 읽었다. 몸을 떠난 영혼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자손들이 해야 한다고 했다. 숨결을 멈춘 어머니가 편안히 안식할 수 있도록 주변 정리를 해 드렸다. 생을 마친 어머니는 마치 가을 산길에 피어있는 새하얀 구절초꽃처럼 단아했다. 눈을 감은 모습이 한 겹 바람에 하늘거렸던 언덕의 그 흰 꽃을 닮았다.

어머니는 인생의 기차에서 얼마나 많은 기차의 량을 달고 다니다가 하나둘 떼어내고, 어떤 역에서 홀연히 내리셨을까. 큰아들을 먼저 보냈으니 어머니는 아마도 아들이 내린 역 앞에 기차를 멈추게 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저기 작은 이가 서 있다.”라고 한 것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전 남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이제 다 왔다.”라고 했던 말은 인생의 종착역에 다 왔다는 암시였을까. 어머니의 마지막 흘린 눈물의 의미를 미처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지난한 삶을 살았던 당신의 그 눈물은 마지막 세상을 하직하는 어머니의 한 서린 응어리였다.

어머니를 묻고 돌아섰던 날, 장지에는 평소에 어머니가 좋아했던 그 꽃이 하얗게 흔들리고 있었다. 얼핏 보면 흰 물결이 일제히 누웠다가 다시 가만히 고개를 드는 가녀린 꽃대의 몸피가 어머니의 핏기없는 표정을 닮은 듯. 겨울도 아닌데 흰 눈처럼 포슬포슬하게도 보였다. 장례를 마친 집안은 절간처럼 고요했다. 곳곳에 어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큰어머니한테 꾸중을 듣고 서럽게 울던 나를 달래주셨던 어머니. 유독 내게 살뜰했던 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비록 종가에 씨받이로 오셨다지만 내겐 둘도 없이 소중한 시어머니였다. 평생을 큰어머니 눈치를 살피며 가슴 졸이며 살다 가셨다.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았던 당신의 그늘 진 삶, 그런 와중에도 늘 나를 챙겨주셨던 어머니. 돌아가신 그날까지 치매 환자였던 큰어머니 등쌀을 그대로 안고 사셨던 어머니였다.

지금도 나는 어머니가 내 곁을 맴도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힘들 때 언제 오셨는지 내 등을 가만히 쓰다듬는 손길로 오신다. 눈에 확 드러나진 않지만 은은하게 수놓은 삐비꽃처럼. 그렇게 고요히 있는 듯 없는 듯 살다 가셨다. 누가 뭐래도 내겐 가장 소중한 둘도 없는 시어머니셨다. 삐비꽃이 언덕에 흔들리는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왠지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어쩜 바람에 가만히 몸을 맡기고 어떤 저항도 없이 흔들리며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그리도 닮았을까. 올해엔 삐비꽃이 참 흐드러지게도 피었다.


누구, 세월 잡을 비결 있소?



가지 않을 비결 있소?

어차피 가는 길 가족의 품이라면

무예 그리 슬퍼할 일이오

어차피 한 번은 가야 할 길인걸요

나 잘살았어, 말하고 싶은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차마 말 못 하오


무지개를 타고 싶던 유년의 기억 찾아

나비처럼 나풀나풀 무지개를 타고 싶소

넓은 들판 홀로선 나무처럼

세상 떠날 때도 혼자서 간다오


요양병원 요양원 지켜 줄이 없어

외로이 세상 하직 눈물 한줄기

방 안에서 아슴아슴 솜 인형 보듬고

꿈속에서 허수아비 젖은 옷 움켜쥐며

모래알 같은 밭이랑에 쌓인 세월 돌아보네


세월이 쌓여가며 이팔청춘 늙어가고

괄약근이 늘어져 똥을 참을 수 없고

새 옷이 헌 옷처럼 구김살 깊어지고

세월 따라 사람도 얇아져 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