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 유정란 병아리
알 낳고 개선장군처럼
지난봄 남편이 철망을 구해와 닭장을 짓더니 병아리 일곱 마리를 사 왔다. 삐악삐악 예쁜 소리에 어린아이처럼 좋았다. 아침이면 병아리들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커서 알을 낳아줄 것을 생각하니 어느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어느 날, 삐악삐악 소리가 갑자기 변성기가 온 소년 같이 바뀌었다. 새벽에 울어 이웃에 피해 줄까 봐, 수탉 두 마리를 시골로 보냈다. 네 살 된 손자 녀석이 닭을 키우겠다고 한 마리를 데려가 암탉 네 마리만 남았다.
“꼬끼오 꼬꼬, 꼬꼬댁꼬꼬댁”
청계 네 마리는 알을 낳았다고 개선장군처럼 큰소리로 알려주었다. 닭들도 주인을 알아보는지 곁으로 가면 강아지처럼 반가워했다.
어느 날, 한 마리가 모이도 줍지 않고 비를 피해 웅크리고 있었다. 가만두면 살아나지 못할 것 같아 따듯하게 데운 우유에 청심환을 녹였다. 혼자서는 먹일 수 없어 남편이 청계를 잡아주고, 나는 작은 입을 벌려 찻숟가락으로 떠먹였다. 일주일 동안 하루에 두 번씩, 정성을 들였더니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살살 모이를 줍기 시작했다. 작은 발로 땅을 헤집기도 하고, 엉성하던 매무새가 다시 매끈해지고 나무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봄이 되어 파릇파릇 나온 새싹들, 적하수오 이파리를 따서 넣어주었더니 잘도 쪼아 먹었다. 다시 씩씩해진 닭을 보면서 생명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중병에 걸린 사람도 이렇게 정성으로 보살피면 낫겠구나!
올봄, 다시 병아리를 사 왔다. 큰 닭들이 자기 새끼였으면 날개 안에 품어 줄 텐데, 텃세를 부리는지 병아리들을 쪼아대서 분리해 놓았다. 집을 비운 사이 병아리 한 마리가 큰 닭 쪽으로 넘어가 희생되고 말았다.
큰 닭들한테 얼마나 시달렸을지…. 귀한 생명인데…. 닭장단속을 단단히 했다.
“알을 낳아주어서 고맙다. 잘 먹을게”
“나갔다. 올 게~ 집 잘 보고 있어라”
날마다 예쁜 꽃과 인사하듯 닭들과도 대화한다….
알을 낳은 지 얼마 후 닭 한 마리가 알을 품고 ‘나도 병아리를 갖고 싶어요. 나에게 알을 주세요’ 하는 듯했다. 집에는 장 닭이 없어서 알을 낳아도 유정란이 아니라 병아리를 부화시킬 수가 없었다. 암탉이 하도 졸라 유정란 일곱 개를 사다 넣어주었다. 자기가 낳은 알인 양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기온이 올라가도 닭은 오로지 알 품기에 여념이 없었다. 알을 품다 먹이를 먹으려고 나오면 다른 닭들이 시샘하는지 쫓아다니며 그 닭을 쪼았다. 어미 닭이 쫓겨 다니면서 간신히 요기만 하고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알을 품었다. 암탉을 알과 함께 이사시켰더니 세 마리 닭들이 조용해졌다. 옮겨간 곳에는 올봄에 사 온 병아리 네 마리가 중닭이 되어 있었다.
알을 품은 지 21일이 되는 날 아침,
“우와! 병아리다!”
개나리꽃처럼 가냘픈 새끼 다섯 마리가 어미 닭 날개 밑에서 총총거리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사진을 찍어 아이들과 친구들에게 휴대전화로 보냈다. 암탉에게 말했다.
“청계야 수고 많이 했다.”
병아리가 다칠세라 품에 품고 있는 모습, 병아리도 엄마 품이라고 안심하고 파고드는 모습에 얼마나 큰 평안함을 느꼈는지…. 자식을 사랑하는 모정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옆에 있는 중닭들이 행여 제 새끼 건들세라 눈을 부라리고, 날개를 더 넓게 펴 품속에 품어주는 모습이, 아기들을 품에 안고 정성을 다해 보살피던 우리네 엄마들을 닮았다. 따듯한 자장가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마음껏 아이를 품었던 내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모정
생명은 아름다운 것
하나의 생명이 이 세상에 오기까지
저절로 오는 생명이 어디 있던가?
모두가 어미의 수고와 정성으로
이 세상에 오는 것을
하느님은 위대한 사랑을
숨을 쉬는 모든 것에 내려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