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도 약이된다 까마중 건강 쇠무릎
잡초의 꿈
텃밭에서 풀을 뽑았다. 텃밭에는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다. 풀을 뽑으면서 잡초를 생각했다. 섞일 잡(雜), 풀 초(草), 어디서나 제멋대로 자라는 풀한 테 사람들이 잡초라고 이름 지었다. 풀마다 지어진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 콩밭에서도, 깨밭에서도 잡초다. 어디에서도 풀들은 이름을 찾을 길이 없다. 호박밭에 가면 괜찮을까. 그곳에서는 더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굵은 줄기가 숨도 못 쉬게 덮어버렸다. 그래도 남은 씨앗은 수도 없이 많다. 이곳에서 힘들면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사람들은 풀을 제거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을 했다. 처음에는 작은 싹을 크지 못하게 호미로 긁어서 잡초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그래도 계속 싹을 틔우자 제초제를 뿌렸다. 잡초는 당분간 땅속에서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불편한 사람들의 아픔처럼, 잡초들의 아픔도 그리 보였다. 내가 세상에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가슴 먹먹하게 했던 일들이 있었다. 끝이 어디일지 가늠하지도 못했던 막막하기만 했던 날들은 나에게 큰 아픔이었다. 평생을 잡초처럼 산다 하여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무게에 늘 눌려 살았다. 마음은 앞서는데 할 수 없었던 일들, 엉거주춤 제자리에서 얼마나 눈시울이 뜨거웠던가. 그러나 세상은 따뜻했다.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 사람들 덕분에 세상은 아름다워지고, 잡초도 고운 꽃을 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잡초들은 기다림에 천재들이다. 일 년이든 이 년이든 십 년도 더 기다릴 수 있다. 사람들은 비닐을 덮기 시작했다. 투명 비닐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잡초가 빨리 자라게 했다. 사람들은 다시 검정 비닐을 만들었다. 잡초는 다시 비닐 속에서 숨 쉴 날을 기다렸다. 아주 작은 구멍으로도 햇빛도 들어오고 산소도 들어왔다. 그걸 들이마시며 연한 새순을 내밀었다. 다시 무지무지한 호미 끝이 잡초를 겨누었다. 처절하게 뽑혀 나갔다. 여름이면 뜨거운 비닐 속에 묻혀야 했고, 겨울에도 비닐 속에서 마늘과 양파의 길동무가 되었다. 비닐이 없던 무난했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봄날에는 비닐 속에서 감자들의 언어를 들었다. 언젠가는 파헤쳐져 사람들의 식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한 뿌리의 가족들이 크기별로 뿔뿔이 흩어져 서로 소식도 모른다는 것을. 가을이면 붉은 고구마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비닐 속에서 커가는 고구마들도 같은 말을 했다. 감자들과 똑같은 신세라고 했다.
잡초들의 씨앗들은 세상 이치를 다 알고 있는 듯했다. 흙 속에 있을 때면 숨죽이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을, 언젠가 숨 쉬며 활보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꽃을 피워 종자 번식하는 것도 잡초들의 유전자적 몫이었다. 어쩌다 터를 잘못 잡아 우뢰와 소낙비에 갈기갈기 찢어져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집념이 있었다.
사람들이 키우는 작물이 수도 없이 많아졌다. 여름이면 비닐을 덮지 않고 밭에 기장을 심었다. 잡초를 가만히 두었다. 잡초는 기장과 함께 쑥쑥 커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날벼락을 맞았다. 햇볕 좋은 날 빗물처럼 시원하게 소낙비가 내렸다. 굵은 빗줄기가 잡초들의 숨통을 끊어 놓을 줄이야. 하나하나 시들어갔다. 머리가 아프고 허리 다리가 아팠다. 더 이상 기장과 함께 클 수가 없었다. 기장은 더 튼튼해지고 잡초들만 시들어갔다. 처음부터 땅속에 있으라 하지, 마음 놓고 크게 해놓고선…….
사람들은 참으로 영리했다. 필요한 것은 잘도 알아차렸다. 좋은 것이라 하면 무엇이든지 심었다. 그렇게 잡초들 관리를 하다가 사람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프면 치료받으며 살면 그만이라 생각했을까. 한 사람씩 몹쓸 병에 쓰러지기도 했다. 잡초가 약이라고 뽑아다 설탕에 버무려 효소를 담기 시작했다. 약이 된다는 잡초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밭에서 재배도 했다. 깨밭에 콩밭에 퉁퉁 살찐 쇠무릎이 약이 되었다. 그것도 제초제를 치지 않는 밭의 것들만 거두어 갔다.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제초제를 치지 않고 호미 끝으로 농사를 지었다. 그곳에서 난 것들만 좋다고 뽑아갔다. 까마중도 깨밭에 잡초였다가 어느 날 약초로 변신했다. 따로 밭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까마중 꽃
건강한 땅에서 나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농사를 지을 때면, 내가 먹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작물을 키워내야 한다.
사람들이 재배하는 작물을 제외한 모든 풀은 약초라 하더라도 잡초가 되었다. 날카로운 호미 끝에 파여 내리쬐는 햇볕에 바짝바짝 목이 말라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끝내는 물을 빨아올리지도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사라져갔다. 잡초라고 해도 때에 따라서 약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잡초와 꽃이 뭐가 다를까. 사람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하잘것없는 잡초라도 예쁜 꽃이 되기도 한다. 곱다, 예쁘다, 말하는데 곱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곱고 고운 꽃이라도 관심을 주지 않으면 잡초가 되는 것 아닐까.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각자 다른 이름이 있다. 다른 얼굴로 다른 세상을 살아내는 인생이다. 어디에 있든 그곳에 필요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지키며 일을 한다.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세상을 빛내고 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밤잠도 설쳐가며 배워야 한다.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수가 음반을 내기 위해서는 목이 쉬도록 노래연습을 해야 한다.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들, 그 저변에는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오케이가 떨어질 때까지 피나는 노력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는 내가 밑 거름이 되어주는 열정이 필요하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며 사는 사람들, 봉사하며 기쁨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봉사활동을 해 보면 느낀다. 얼마나 값진 일인가를. 이 세상은 독불장군은 없다. 혼자서는 살아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렇지만 여럿이 더불어 풍년 두부가 되려는 따뜻한 마음들이 이 세상을 빛내고 있다.
몇 년 전, 나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때 나는 많은 것을 깨닫고 배웠다. 내가 그 친구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고작 코바늘로 무공해 수세미를 만들 수 있는 뜨개질이었다. 그렇지만 불편한 몸으로도 그 친구들은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 실도 바늘도 잡지 못했던 친구들이 배우다 힘들어 포기할 만도 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따라와 주었다. 나중에는 혼자서도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끈기만 있으면 어떠한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보였다. 그렇게 힘들게 배운 것을 서로 공유 하기도 했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서 따뜻한 마음을 배웠다. 흔한 잡초와도 같은 인생이라 해도, 언젠가는 꼭 필요한 인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려움에 힘들 때에도 나는 그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었다.
다음은 내가 느낀 잡초에 대한 생각들을 시로 써 본 「잡초」라는 작품이다. 강인한 잡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했다. 잡초와 같은 근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잡초
밟히면 밟힐수록 더 단단해지는 잡초
죽었는가 싶으면 새순을 내미는 부활의 신화
큰물에 휩쓸려도 땅에 찰싹 붙어있는,
근력이 단단해져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는 너!
네가 지닌 강인한 생명의 경이로움
밟히고 파이면서도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뿌리 깊은 인내와 근성
비록 힘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그 뿌리에는 단단한 버팀목이 숨어 있으니
잡초는 영원히 함께 가는 동반자가 아닐까,
나는 회전문을 돌아 들어갈 때나 나올 때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들어가는 곳은 한정된 장소이지만, 나올 때는 높고 넓은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열려있다. 잡초들은 씨앗을 바람에 날려 어디서든 자리 잡을 수 있다. 우리들도 세상을 향해 더 먼 곳으로 날아가, 우리가 필요한 곳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문은 셀 수 없이 많기에.
산야에 자생하는 풀들은 더이상 잡초가 아니다. 그냥 자연의 일부다. 잡초라고 뽑아버린 풀들이 길가에서 고운 꽃을 피웠다. 들에서는 들꽃으로, 산에서는 산 꽃으로 세상을 알록달록 물들였다. 한낱 잡초도 고운 꽃이 되어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준다. 하여 사람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고운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뽑아내도 사라지지 않는 잡초처럼, 사랑하는 마음 하나면 온 세상이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다. 온실에 피어나는 꽃에게도, 향기로운 들 꽃에게도 시간을 활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잡초의 씨앗들은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을 슬기롭게 활용했다. 제초제를 뿌려 땅속에 가만히 있어라 하면 그대로 따랐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있는지도 모른다. 좋은 것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좋은 일만 생긴다고 한다. 나쁜 마음이 우리를 노린다 해도, 좋은 생각으로 그것을 이기면 언젠가는 생각처럼 좋은 일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름다운 궁대를 올리며 영혼의 꽃을 피울 때까지.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에는 복지관에 미용실에서 봉사를 나온 미용사들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몇 사람씩 조를 짜서 나온 젊은 친구들이었다. 그 친구들에게 머리를 맡기면 마음이 편안했다. 이용 기술이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진정으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웃음 지으며 머리를 맡겨놓아도 믿을 수 있는 포근한 손길이었다. 사랑스럽고 진정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삶이 고해(苦海)라고 누가 말했던가, 마음먹기 따라서 밝은 날이 되기도 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되기도 한다.
언젠가 읽었던 『어린 왕자』가 생각난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비행사였던 생텍쥐페리의 동화 같은 소설이다. 어린 왕자는 한 송이 장미꽃을 사랑으로 가꾸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란 글이 마음에 와닿았다. 자원봉사를 하는 미용사들에게 이름을 붙인다면 그들은 ‘날개 없는 천사’들이었다.
코로나19 텐데믹시대에도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복지관 물리치료실에 매달 한 번씩 무료 봉사 나오는 한방병원 원장님들이다. 그 원장님들은 삶에서 상처받은 마음 까지 보살펴주었다. 나는 가끔 복지관 물리치료실을 이용한다. 세상이 작은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면, 모두가 평안한 어울림의 장이 될 것이다. 장애 때문에 힘들어도,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경적을 울리며 달려가는 앞차의 뒤끝을 힘들게 따라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은연중 매무새를 고쳐가며 가만가만 가도 되는 세상이기를 바라본다. 계절은 초록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이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내 비록 잡초처럼 척박한 힘든 세상을 살았지만, 오늘은 어쭙잖은 색깔일지라도 언젠가는 고운 빛 가득한 단풍으로 물들어갈 것이다. 발에 밟혀도 죽지 않는 잡초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저력으로, 유유자적 세상을 유영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