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사랑 옛사사람들의 지혜
벽에서 나온 돈
내게는 바다 가까이 대대로 내려온 한옥이 있다. 집안에 종부로 어머님 종신을 지킨 내 몫이었다. 세월을 품은 집은 방 안이 눅눅해져 습기가 찼다. 곰팡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공사를 맡겼다. 매번 하기 어려운 일이어서 편백으로 했다. 며칠 후, 공사를 마쳤다는 전갈을 받고 집으로 갔다. 우중충했던 방이 새롭게 되었다. 방에서 뿜어져 나온 편백은 향기가 좋았다. 코끝이 감미로워 일부러 들숨을 크게 쉬었다. 특유의 향과 함께 피톤치드도 함유하고 있어 좋다고들 했다.
부엌에는 식탁 위에 만 원권 두 장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공사를 하려고 벽지를 뜯어내자 벽지에서 나왔다고 했다. 먼지에서 나온 돈을 소중하게 보관해 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도배는 오래전에 했다. 언제 도배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전의 일이었다. 벗겨진 묵은 도배지 뒷면의 누런 옛 신문의 날짜들은 새삼스레 옛 기억을 불쑥 끌어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몇십 년을 벽 속에서 잠자던 돈이었다. 누가 벽 속에 돈을 넣었을까. 당시 정황으로 도배는 어머니의 몫이었다. 살면서 그런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 지폐는 무엇이었을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지폐 속에 부모의 염원을 담았을 모정.
신접살림을 차리는 아들을 위해서였을까. 깨끗한 종이에 새 돈을 싸서 벽지를 바르기 전에 넣었으리라. 도배 일의 성격상 형님도 함께 어머님의 손을 거들었을 텐데, 아마도 같이 도배한 형님은 이 일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 시절 곤궁한 형편에는 큰돈이었다. 돈은 묶여 있으면 가치가 떨어진다.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 돈은 돌고 돈다고 해서 돈이라 이름 붙였다고 했다. 새 돈을 바꿔와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쓰지 않고 그 돈을 벽 속에 넣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탈하게 잘 살라는 염원과 사랑을 넣었으리라. 액운을 막아내는 액막이라도 되어주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도 함께 넣었으리라. 예나 지금이나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돈이면 뭐든지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배고픈 사람에게 돈이 있으면 최소한 배고픔을 면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정월 보름날 아이들이 연을 날리다 바람에 연을 날려 보내는 액막이 연도 있었다. 그 연에는 원하는 소원을 써서 날려 보내던 풍습이 있었다. 벽 속에 돈도 그런 맥락의 돈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줄 때도, 건강하게 잘 커야 한다고 넉넉하게 봉투에 넣어 쥐여주는 어른들의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 저변에 자손들을 위하는 어른들의 지혜와 사랑이 담겨 있었으리라.
방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50여 년이 지난 동전 한 닢이 책상 서랍에서 나왔다. 생전에 어머니가 가지고 있었던 동전이지 싶었다. 그것도 오 원짜리 조그마한 구리 동전 한 닢, 보물이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아, 동전이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한 탓에 동전은 녹이 슬어 파랗게 변해 있었다. 동전을 앞뒤로 씻어보았다. 그래도 깨끗해지지 않아 어릴 적 하던 대로 마당에 동전을 놓고 신발을 신고 움직여 때를 벗겼다. 녹은 지워졌지만 긁혀있는 자국이 나타났다. 동전을 제작한 해(年)는 1969년도에 만들어졌다.
1960년대, 10원짜리 동전 하나면 연필, 지우개, 연필을 깎을 수 있는 작은 칼까지 살 수가 있었다. 그렇게 돈도 귀하고 물건도 귀하던 때였다. 연필을 깎으면 나무가 제멋대로 푹푹 파여 연필을 예쁘게 깎기도 어려웠다. 몽당연필도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작은 대나무에 끼워 글씨를 쓸 수 없을 때까지 썼다.
키가 훌쩍 자랐다 싶은 즈음, 우린 고학년이 되었다. 울퉁불퉁한 찻길을 버스를 타고 광주로 수학여행을 갔다. 집을 나설 때 부엌에서 어머니가 건네주신 십 원짜리 동전 몇 개를 받았다. 그 귀한 돈을 어떻게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첫 돈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깃불도 그때 처음으로 보았다. 눈이 부시던 전등, 역하기만 했던 연탄 냄새와 수돗물의 소독 냄새는 멀미가 날 것 같았다. 호롱불의 시골 아이들 모두가 전등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던 시절이었다. 얼마나 훤했던지 눈이 부셨다. 밤에 떠들고 깔깔대다가 잠도 자지 못했다. 그날 우리는 처음 영화관에도 갔다. 영화 속에서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끊긴 다리 위로 공주가 머플러를 펼치자 튼튼한 다리가 놓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오래전 일이지만 잊히지 않는다. 첫 영화가 사극이었던 것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셨다. 신문사에도 가보았다. 기계에서 신문이 가지런히 찍혀 나오고 있었다. 공설 운동장에도 그렇게 넓은 운동장을 처음 보았다. 체육관에서도 드높은 천장을 보았다. 까마득한 높이는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아득한 거리이자 막연한 동경과 한없이 먼 그만큼의 거리였다. 공원에도 갔다. MBC 문화방송에도 견학하였다. 그때 ‘변웅전’ 아나운서를 만났다. 이름을 알려주었다. 공원 활터에서는 궁사들이 활 쏘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니면서 버스를 탄 기억은 없다. 개구리처럼 우물 속에만 있다가 세상에 나온 우리의 어지럼증과 놀라움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교실이 늘 시끄러웠다.
화폐가치가 해마다 변해가는 세상에서, 오 원짜리 동전을 어디에 쓸 곳이 없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어머니의 옛 모습이 생각나서이다. 가난했던 어머니는 아끼다가 쓰지도 못했을 돈이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동전, 어머니의 아끼던 살림살이를 느끼게 해 주는 동전이다. 자고 일어나면 억, 억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바쁜 세상이다. 상대적인 가난을 느끼며 조바심만 나는 세상이다. 돈이 아니어도 우리는 좋은 것, 가치 있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느낄 수가 있는데,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헛헛해진 마음을 놓을 곳을 찾지 못한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바쁘게 움직이는 걸음들이 한없이 애처롭다.
하루가 멀다 않고 고급 아파트들이 보란 듯이, 하늘을 향해 우뚝우뚝 솟아오른다. 고급 자동차들과 각종 차의 홍수 속에, 거리는 매연으로 가득하다. 덕분에 미세먼지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모두 걱정들이 끊이지 않는다. 산업화의 열풍으로 중국발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위협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탄소를 줄이는 일에 쓰레기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깨끗해져야 사람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달하고 살기가 편안해진 지금, 세상살이는 더 어려워지고 있다. 무엇 때문일까. 나무로 밥 지어 먹을 때는 산에서 손수 땔감을 마련하였다. 무서운 멧돼지들도 없었다. 산속 떼 밭에 고구마를 심어 가꾸어도 그대로 있었다.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었다. 지금은 편리한 생활 도구들이 많다. 가스와 전기로 하고 싶은 요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숲이 우거져 사람이 산속에 들어갈 수 없다. 마음대로 번식한 멧돼지들이 마을 안까지, 무서운 주둥이를 들이밀며 출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옷도 손빨래했다. 빨래터에서 두드리던 방방이 소리도, 옷감에 풀 먹인 다듬이 소리도 지나간 옛 추억이 되었다. 시집살이에 지친 아낙네들은 방망이를 두드리며 옷에 낀 때와 함께, 속에 쌓인 응어리도 풀어냈으리라.
늦가을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는 장독대 커다란 항아리에 동치미를 가득 담았다. 떼 밭에서 키운 고구마와 동치미는 찰떡궁합이었다. 단물이 줄줄 흐르던 고구마와 동치미, 이웃들과 나누었던 그 맛을 지금은 찾을 수 없다. 장독대에 살얼음이 살살 얼었던 동치미를 어디에서 찾아볼까. 지난한 삶을 살아낸 옛사람들은 노을 속으로 사라져갔다. 더불어 짐을 나르던 지게도 사라졌다. 학교는 폐교되어 풀밭이 되었고, 왁자하게 뛰어놀던 아이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유년 시절, 어른들이 하던 말이 나중에는 물도 사서 마신다고 했다. 전화도 사람마다 손에 들고 다니며 한다고 했다. 그런 말들이 현실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 손에 휴대용 전화기가 들려 있다. 내 손에도, 심지어 어린 학생들 손에도. 세상은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동전 한 닢으로도 행복했던 어린 날이 있었는데, 이 시대에는 어림없는 일이다.
빛바랜 동전을 들여다보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동전 속에 비치는 모습, 평소에 어머니는 하얀 고무신을 신었다. 하얀 수건 머리에 쓰고 호미 들고 밭둑에 잡초를 매었다. 논둑에 콩을 심던 모습은 멀리 콩처럼 작게만 보였다. 낙지를 잡기 위해 쭈그러진 양은 주전자를 들고, 물 빠진 바다에서 갯것을 잡아 오셨다. 생전에 어머니는 갯것들을 지푸라기로 똬리 틀어 머리에 이고, 장터로 달려갔다. 평생 일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던 어머니였다. 쪽 찐 머리에는 동백기름으로 잔머리를 잡아 은비녀를 꼽았다. 단아하고 고운 모습이었다. 장에 나갈 때도 한복을 입고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감아 허리띠를 묶어 단정히 했다.
세월은 흘러가도 해마다 꽃들은 피고 진다. 어머니의 호미 끝에서 피어나던 수많은 꽃, 사람은 가고 없어도 꽃은 여전히 아름답다. 산천은 가만히 있고 계절은 그대로인데, 바뀌는 것은 흔적만 남기고 가버린 사람들이다. 벽에서 나온 지폐와 오원짜리 동전은 어머니의 손끝이 뭉그러진 갯것 판돈이 아니었을까. 지금 이 시대에 큰돈은 아니지만 반갑다. 오 원짜리 동전. 그리고 일만 원권 지폐 두 장.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 물씬 묻어나는 지폐를 쓸 수가 없다. 벽에서 나온 돈은 우리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자식 사랑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서야 그 사랑을 새롭게 느끼며 헤아려본다. 궁핍했던 생활 속에서도 액막이 돈을 벽 속에 넣어둔 깊은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