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걸 하고 싶어요

원하는 것을 조각해나가는 사유 과정

by 꼬모

금요일 저녁에는 9시쯤부터 잠이 왔다. 평소와 달리 엄마의 미간에는 집중해서 옅은 주름이 잡혀있었는데, 이는 다음 날 아침에 내가 먹을 메뉴를 미리 골라서 준비해둬야 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었고.

토요일에 겨우 눈을 떠보니 식탁에는 내가 말한 양배추 찜과 너무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약간 숨이 죽은 깻잎과 양념장들이 있었다. 양념장 하나하나에 '고추장', '쌈장'이 적혀있었고, '묵은지 조림'도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틀 전에 과식을 하는 바람에 허기가 금세 찾아오지는 않았다. 식도염 약을 먼저 챙겨먹고 우선 그릭요거트에 견과류 한 봉지를 올리고, 올리브유를 몇 바퀴 둘러 몇 입 먹었다. 몇 입 먹지 않았는데 식도가 차버려서 내려두고 티백을 우려 따뜻한 차를 마셨다. 잠을 깨고 소화를 시킬 겸 집안을 걸어다니다 식후 식도염을 까먹었다는 걸 기억하고 챙겨먹었다. 잠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저번 주에 읽다 만 소설을 읽었다.


'인제 오빠 머리 안 이상함지?'

소설 속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순간 울컥했다. 고통만이 남고, 작별만이 남은 것처럼 느껴질 때, 그러니 머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그런 순간들에 작은 여동생의 말을 기억하곤 물을 묻혀왔을 오빠의 마음이. '오빠 머리가 무사 그러멘? 머리가 이상해'라고 한 말은 여동생이 평생 후회하도록 했고. 모르겠다, 왜 하필 이 장면에서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오빠'라고 불리던 존재들이 생각났는지. 심지어 전날 꿈에서는 몇 년 동안 만나지도 않은 사촌 오빠가 너무나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내 옆에 있었다. 또 다른 사촌 오빠가 생각났다. 어린 내 눈에는 모든 것을 알고, 어떤 것이든 척척 잘해내고, 어른들에게 공손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나도 훌쩍 자라 다시 만났을 때는 어렸을 적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몇 가지 빠져서 아쉬웠지만.


환상이었던 것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여동생을 먼저 챙기고, 부모님을 보살피고, 그럼에도 자기가 맡은 바 척척 해내는 그런 사람의 동생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말이다. 전에 만난 그 사람도 그런 의미에서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는 걸까? 나의 환상 속 그런 존재가 될 뻔한, 남자친구보다는 동경할 만한 선배 같았던 사람. 그래서 그의 현실을 알기 싫었고, 그보다 꿈꾸던 내가 될 수 있는 순간들이 좋았으며, 헤어졌을 때 더 힘들었던 이유는 그런 존재가 내 인생에서 사라졌음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즉, 보살핌을 받는 여동생이 더 이상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막내로 자라왔기 때문일까? 그가 건넸던 따뜻한 우유잔에서는 날 먼저 챙겨주던 순간의 언니가 떠올랐었다. 익숙한 감정이 낯선 공간에서 느껴질 때의 어색함을 아직 기억한다, 그러다 더 큰 감동에 휩싸이는 순간까지도. 때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한다. 그 사람과 처음부터 선후배로 만났더라면 좋았겠구나, 하고. 불가능할 거란 것도 알고, 그랬다면 이런 생각에 도달하지도 못했을 것이지만. 요즘 들어 그때의 생각들이 문득문득 떠오르는데 내 자존심인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이렇게 결론을 내려봤다. 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난 그런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라고. 어리광 부리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소설을 다 읽고 엄마가 분주히 준비했을 깻잎에 양배추를 올리고, 밥 조금과 쌈장 조금을 넣어 왕, 하고 크게 베어물며 생각했다. 작가가 공들인 단어들의 조합을 읽는 것이 어찌나 좋은가! 이런 글에 눈이 익다보면, 차가운 글을 읽을 때마다 같은 글임에도 이렇게 아쉬움이 남을 수가 없다. TV로 틀어둔 나민애 교수님의 강연을 밥 친구 삼아 먹다가 생각했다, 내가 느낀 것은 감동이구나! 날 스쳐간 인연들을 떠올리고, 날 다시 마주하게 하는 감동. 가장 주기 어렵지만, 받은 사람에게는 영원히 남는 감정.


감동을 주고 싶다. 얼마전 읽은 <더현대 인사이트>에서 백화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 문장도, 백화점과 놀이공원의 공통점은 비일상적인 놀라움을 준다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직접 가 본 더현대 서울에서는 일탈적 행복을 느끼기보다는 너무 많은 제품에 둘러싸여 답답했고, 빠르게 피로해지는 발에 실망했는데. 감동을 느끼기는 커녕, 필요를 주입받는 공간적 압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트렌드를 분석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가보았으나, 패션 트렌드는 지하 2층의 서너 가지 브랜드만 보아도 금세 보였고, 그것마저도 완전히 색다른 것이 아니었다. 백화점으로서는 혁신적인 도전을 한 것이었으나, 결국 백화점이 감동을 주는 공간이 될 수는 없다. 눈에 보이는 무엇이든 살 수 있는 두둑한 지갑과 그 모든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충분히 넓은 옷장이 있지 않은 이상은. 그들에게도 내부 폭포는 처음에만 감동을 줄 뿐, 이후에는 지나쳐버리는 당연한 배경에 불과하겠지.


백화점의 경쟁 상대는 자연이라고 한다. 벚꽃이 만개할 때, 산이 물들 때는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화점을 일상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데, 그렇다면 비일상적인 감동을 매일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잠깐 들릴 수 있는 여행과 같은 공간이 있나? 여행도 결국 세상 어느 곳이든 '일상'이 흘러가고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일상'에 잠시 몸을 맡겨보는 순간 아닌가? 사람들이 정말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건 무엇이고, 내가 감동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나민애 교수님의 강연은 계속 흘러나왔다. 저는 1년에 딱 한 번, 남편이 애들을 데리고 집을 비워줄 때 책 세 권을 읽어요. 그렇게 세 군데 여행을 하는 거예요.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이탈리아에서의 교환학생 생활은 결국 중요한 것이 집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고,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이 집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그러니 가족과의 시간이 내게 가장 소중하다는 걸 알려주었다. 마치 대장부가 호기롭게 집을 나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 마음이랄까. 그래서 엄마가 꺼내준 '묵은지 조림'이라고 적힌 스티커가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한국어로 적힌 소설에서의 문장 하나가 내 인생의 몇 조각들을 꺼내주었고, 결국 난 '감동을 주고 싶다'는 생각의 끝에 다다른 것이다.


영어를 좋아하고, 그 영어를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한글 단어들을 조합해서 새로 문장을 창조해나가는 번역은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일이 될까? 며칠 전, 인턴으로 일하는 회사 팀원들과 올해 4분기 매출을 초과달성하며 의아했던 질문이 떠오른다. 이렇게 돈 많이 벌어서 어디에 쓰는 거예요? 그때 안 것 같다, 나는 돈만으로 목적을 세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좇아야만 해소되는 무언가가 내 안에 있다는 걸. 그것이 없으면 나의 생명력은 서서히 숨죽어가게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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