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의 공화주의로 보는 한국우익
현대 공화주의의 재발견
민주주의는 익숙하지만 ‘공화주의’는 다소 생소하게 들린다. 하지만 헌법은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명명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는 우리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두 축인 것이다. 그렇다면 ‘공화주의’란 무엇일까?
공화는 함께 다스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고대 로마의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 즉 ‘공공의 것’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국가와 공동체의 운영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사적 이익이 아닌, 모든 시민의 공동이익을 위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마치 가족구성원 모두가 집안일을 함께 논의하는 것처럼, 국가의 중요한 일 역시 모든 시민이 함께 참여하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 공화주의 이론가 필립 페티트(Philip Pettit)가 주창한 '비지배(non-domination)로서의 자유'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란 단순히 간섭받지 않는 상태를 넘어, 누군가의 자의적인 의지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주인이 노예에게 "오늘은 때리지 않겠다"고 해서 노예가 자유로운 것이 아니듯, 권력자가 선의를 베푼다 하여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제도적으로 권력자의 자의적 지배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화주의의 핵심이다.
공화주의는 고대 로마공화정에서 기원하여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오늘날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공화주의는 자유, 평등, 공동선, 시민적 덕성 등 다양한 가치를 포괄하는 정치사상으로 자리 잡았다.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보수와 진보의 구분
공화주의는 공동선의 실현, 권력의 분산, 그리고 시민의 정치참여를 강조하며, 이를 바탕으로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 되곤한다. 진보정당은 공화주의적 원칙을 사회경제적 평등, 노동권 보호 등의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보수정당은 기존의 권력구조를 유지하거나, 최소한의 개혁으로 체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우경화된 정치지형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진보정당으로 취급되지만, 실제정책과 행보를 보면 보수정당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 근거는 정의당, 사회민주당, 진보당, 기본소득당과 같은 진보정당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설명 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제정책은 시장주의와 성장중심의 기조를 유지하며, 대기업과 재벌 중심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없다. 예컨데, 탄력근로제확대나 중대재해처벌법의 후퇴가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이에 반해, 정의당과 사회민주당은 노동중심의 경제구조개혁과 과감한 재분배정책을 일관되게 고수해왔다. 또한, 진보당과 기본소득당은 포괄적복지체계와 기본소득도입을 통해 불평등해소를 외친다. 이렇듯, 더불어민주당과 여러 진보정당의 정책적 차이는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적인 경제질서의 틀 안에 머무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공화주의는 다당제를 통한 정치적 다양성과 협치를 강조한다. 여러 군소진보정당들이 선거법개정을 통한 다당제를 적극 추진해왔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양당제 구조를 견지하고,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보수적 정치질서를 고수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방향은 현 6공화국 체제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태도로 귀결됐다. 이에 비해 정의당, 사회민주당, 진보당, 기본소득당과 같은 진보정당들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적 원칙을 보다 구체적이고도 적극적인 모습으로 실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제 7공화국으로의 진일보를 주창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과 역대 보수정권의 본질
공화주의자는 권력의 남용을 가장 경계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은 이를 '선출된 전제정(Elective Despotism)'이라는 개념으로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우리가 싸운 것은 단지 선거를 치르기 위함이 아니라, 권력을 나누고 견제하여 누구도 독재할 수 없는 정부를 만들기 위함이었다"고 역설했다. 선거로 뽑혔다는 사실만으로 통치자의 모든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으며, 견제받지 않는 행정권력은 그 자체로 폭정이라는 것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국민이 권력을 통제하지 않으면 권력이 국민을 억압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권력이 공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명제를 중심에 둔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정치는 이 대원칙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나.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인치의 지배(Rule of man)'가 부활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공화국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 3일에 선포된 대통령의 계엄은 공화국의 근본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태는 현 정부의 독단을 넘어서, 한국의 보수정권이 반복해온 권력남용의 계보에서 기인한다.
박정희 시대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유신체제는 국가를 앞세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권력을 사유화했다. 이는 공화주의가 가장 혐오하는 '부패(Corruption)'의 전형이다. 여기서 부패란 단순한 뇌물 수수가 아니라, 공적 자산과 권력을 사적 이익이나 특정 파벌의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체제의 타락을 의미한다. 전두환 정권 역시 폭력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고 국민을 계엄령이라는 족쇄로 옭아맸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은 6공화국이라는 헌정질서 아래에서도 정보기관을 동원해 국민을 사찰하는 데 주력하며 국정을 사유화했다. 이렇듯 역사는 보수정권의 과두제적 지배가 독재자개인의 야욕에서 기인했다기 보다는, 한국보수세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채택하고 체화한 행태임을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의 계엄도 이러한 맥락의 범주아래 있다.
공화주의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누가 뭐라해도 권력은 국민의 것이며 국가란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도구다. 그러나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한국보수는 국가를 들먹이며 권력아래 국민을 둔다. 이들은 헌정사 내내 '안보'를 내세워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했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했다.
국민의힘의 극우화와 제 7공화국의 필요성
공화주의적 원칙이 크게 흔들린 주요원인은 뭐니뭐니해도 위기때마다 준동했던 극우세력이다. 1987년 이후 확립된 제 6공화국 헌정사에서 우익을 자처해온 국민의힘은 줄곧 군사독재정권의 유산을 끌어안은 채 그 후예처럼 행동해왔다. 이는 마키아벨리가 [로마사 논고]에서 강조한 '시민적 덕성(Civic Virtue)'의 결여로 설명된다. 공동체의 운명보다 자신의 기득권 수호를 우선시하는 세력은 공화국의 구성원이 아닌, 공화국을 위협하는 내부의 적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계엄에도 국민의힘은 정상적인 보수정당의 범주에서 벗어나 특권층과 냉전시기에 머물러 있는 지지층의 비호아래 준동하며,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박근혜정부 시절 벌어진 국정농단사건은 그네들의 모순이 봇물터지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다.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을 담보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특정인물과 특정집단의 사익을 보장했던 것은 공화주의의 핵심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사건이기도 했다. 이는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한국우익의 정치적 유전자가 권력의 독점과 과두적 지배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권력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원인 역시 존재한다. 양당제 기반의 과두적 권력구조는 어느 한쪽의 독주와 대립으로 귀결되곤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유럽의 사례를 톺아볼 필요가 있다. 독일은 사민당(SPD), 기민련(CDU), 녹색당, 자유민주당(FDP) 등 다양한 정당들이 협력과 견제를 통해 공화주의적 원칙을 지켜왔다. 이들의 체제는 특정정당이 권력을 독점하거나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막는 동시에, 다양한 목소리를 현실정치에 반영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일각에서 논의되고 있는 제 7공화국으로의 전환은 유럽의 선례에서 볼 수 있는 다당제의 장점을 끌어다 쓰고, 극단으로 치우치는 정치구조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공화국은 다양한 세력이 의회 내에서 갈등하고 타협하며 균형을 이룰 때 완성된다. 나는 이번 개헌논의가 다당제확립을 바탕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보수정당으로 자리잡고, 군소진보정당이 원내에 진입해 역할하는 구도로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헌정질서와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세력이 보수를 참칭하는 정치지형에선, 그 어떤 세력도 질곡과 왜곡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윤석열 정부의 반역행위와 한국우익의 극우화가 잠시잠깐의 일시적인 실수가 아니라, 그네들의 본질임을 인식해야한다. 그들의 본질이 드러날 때마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로 대표되는 헌정질서가 흔들려왔음을 각인하고, 그들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제 7공화국의 필연성을 받아들여야한다. 협치와 공동선을 지향하는 민주공화국의 재건은 그와 같은 인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이는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혼란한 정국 속에서
촛불혁명 이후 8년, 우리는 다시 현실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광장과 촛불의 기억은 희미해졌고, 정치권은 여전히 낡은 궤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 중이다. 특정세력의 전유물처럼 변질된 ‘보수’라는 장막 뒤에서는 시대착오적인 독재와 과두제의 망령들이 춤을 춘다. 이 글은 작금의 정국을 직시하며 현재의 한계를 인식하고, 새로운 헌정질서의 시작을 갈망하는 이들의 바램을 담고자 했다.
대통령 체포와 탄핵, 그리고 개헌과정에서 극우세력의 거센저항에 부딪힐 것이고, 익숙한 시스템과의 결별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성취와 혁신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의 몫이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 나섰던 선구자들의 용기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았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시밭길을 피하지않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다.
이 글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원칙을 되살리는 불씨가 되기를 희망한다. 낡은질서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상상력을 불어넣으며,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논의를 촉발하는 불씨 말이다. 앞선 민주화세대가 그랬듯 이제 우리 차례가 왔다. 폐허 위에서 새로운질서를 창립할 주역은 바로 우리가 될 것이다.
* 참고자료
-김경희, [공화주의]. 책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