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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유년시절

반항의 씨앗

by 백재민 작가

20대 초반의 평범한 청년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고 하면 어떤 이들은 "젊은것들이 무슨 정치를 해"라며 비아냥대고, 어떤 이들은 "집안이 잘사나보네"하며 짐작한다. 또 어떤 이들은 "나이가 중요한가 시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야지..."하며 격려한다. 나는 그저 뭐라도해야하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 앞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 20대 초반의 평범한청년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물론 그 청년은 나다. 내가 청년정치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성장과정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반골기질이란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성격을 천성이라 부르며 타고나는 것이라 믿지만, 나의 케이스는 자라나는 과정에서 조금씩 학습된 것이라 생각한다.


나의 유년시절은 호전적이었다.


호전적이라는 단어가 좀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나는 조용히 앉아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책상에 가만히 앉아 공부하는 것보다, 밖으로 뛰쳐나가 뭐라도 하는게 직성이었다. 또래들끼리 패거리를 만들고 패거리끼리 싸우는 것도 좋아했으며 팽이치기나 딱지치기 같은 간단한 놀이에서도 경쟁했다. 당연, 승부욕이 있어서 이기는 것도 좋아했다. 지는 건 죽기보다 싫었지만, 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건 자신 있었다.

나의 단짝친구 둘과 아버지가 운영하던 컴퓨터매장에서.

우리가족이 살았던 동네는 그리 잘사는 동네가 아니라서 나를 포함한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학원을 가는 게 아니라, 동네중심에 자리 잡은 '무지개 공원'이라는 곳에 모여 팽이도 치고, 숨바꼭질같은 놀이를 하곤했다. 무지개공원은 포항시에서 설치한 공원으로, 아이들이 뛰놀 수 있게끔 미끄럼틀이나 그네, 시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규모도 꽤 큰 축에 속했다.


무지개공원은 한때 그 동네 어린이광장격이었다. 초등학생들에게 휴대전화가 없던 그 시절, 공원에 가면 동네친구들이 아름아름 모여있었다. 인원이 어느정도 모이면 놀이가 시작되곤 했다. 친구들은 약속을 하지 않아도 공원에 모였다. 시간을 정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거기 있었다. 무지개공원이 우리의 SNS였고, 단톡방인 셈이었다.


놀이는 다양했다. 숨바꼭질, 경찰과 도둑, 소꿉놀이 같은 전형적인 것들도 있었지만, 남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전투적인 놀이가 인기였다. 장난감 방패와 검을 들고 패싸움을 하거나, 단체로 BB탄총을 들고 전쟁놀이를 했다. 그중에서도 BB탄총 전쟁놀이가 열풍이었다. 이 놀이는 계속 발전했고, 어느새 성인들이 가지고 놀 만한 총들이 판치기 시작했다.


동네문구점에서 파는 총들은 권총형태의 에어건이었다. 한발씩 쏠 때마다 일일이 장전해줘야 했다. 사거리와 강도도 상대적으로 짧고 약했다. 이 총은 일명 '딱총'으로 불렸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런 총을 사용했지만, 한층 발전한 총들도 있었다. 마루이, 아카데미과학, 토이스타 등의 인터넷 키덜트업체에서 판매하는 전동건, 가스건 같은 것들이었다.


전동건은 건전지를 동력으로 삼아 BB탄을 연사하는 방식이었다. 가스건은 말 그대로 총기체에 가스캔을 삽입한 뒤 가스의 힘으로 BB탄을 연사했다. 상당히 위험한 장난감을 초딩 손에 들려놓으니 동네어른들은 표정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신나게 놀았다. 성인용 장난감총은 딱총과 다르게 무거웠지만 빠른 연사가 가능했다. 이 총들은 전쟁놀이 현장에서 실제 전투현장의 기관총 역할을 했다. 엄폐물이 있는 곳이라면? 전동건을 구조물에 거치하고 아군진영으로 돌진하는 상대진영을 저지, 제압했다. 그 덕분에 실제 전투현장을 방불케 하는 그림이 나오기도 했다.


그 기관총을 들고 공원에 나가는 녀석 중 한 명이 나였다. 그 무렵 부친은 키덜트 장난감에 관심이 많으셨다. 내 생일에 맞춰 나에게 전동건을 선물해주었다. 선물받은 전동건의 모델명은 'G3 SAS'였다. 총을 들고 전쟁놀이 현장을 이리뛰고 저리뛰던 나는 딱총을 든 아군진영 아이들에게 영웅쯤으로 취급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하고 웃음만 나온다. 장난감총 하나 들고 영웅 취급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 느꼈던 전율은 꽤 진지했다. 내가 앞장서면 친구들이 따라왔다. 내가 장난감 총을 쏘면 상대편이 흩어졌다. 그 작은 전쟁터에서 나는 리더였고, 야전사령관이었고, 때로는 전쟁영웅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천만한 놀이다. 안전장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총 하나만 들고 노는 놀이였다. 애들 장난감이 아니기에 아이들 중 누구 하나 BB탄에 실명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다친 아이들은 없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돌이켜보면, 그 위험천만한 놀이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다. 상대와의 경쟁에서 두려움을 이기는법. 친구들을 이끄는 법. 현장에서의 효율과 전략을 세우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앞장서는 것'의 의미를 배웠다. 누군가는 뒤에서 지시만 내렸지만, 나는 항상 맨 앞에서 뛰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게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담임선생님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자습시간에 떠들면 반전체가 매 맞는다"는 규칙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 아이가 떠들면 전체가 떠든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날이후, 친구들은 자습시간마다 침묵했고 떠드는 아이를 발견하면 그자리에서 손바닥을 후려쳤다. 무엇인가 죄지은 듯 찝찝한 기분, 짜릿한 고통과 함께 훈계는 덤이었다. 처음엔 모두 조심했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자 아이들은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진학하게되면 남녀가 나뉘어 엄격한 규율 가운데 적응해야하니 미리 선행학습해보자는 취지임을 알고 있으나 고작 열세살 먹은 어린아이들에게 50분간 이어지는 침묵은 고역이다.


나는 그 규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 아이가 떠들었다고 모두가 연대책임을져야 한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느꼈다.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나의 세계관은 더 복잡해졌다. 초등학생 시기에는 그저 놀이나 의문에 불과했다면, 중학생이 되면서 진짜위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반장선거, 학생회선거, 그리고 어두운 경로를 통해 형성되는 서열과 위계가 보였던 것이다.


무지개 공원에서 BB탄총을 들고 뛰어다니던 그 아이는 이제 다른전쟁터에 던져졌다.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잘지내보려 말도 이쁘게하고 갖은 애를 썼지만, 자신감이 없어보였는지 업신여겨졌다. 그러한 업신여김이 내심 복수심을 불러 일으킬만큼 근본없었다. 플라스틱총은 내려놓았지만, 싸우려는 의지는 좀 더 강해졌다.


"정치는 왜하고 싶은거야?"라는 질문에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한점 부끄러움없이 살려구요."라 대답했다. 소심한 탓에 일상에서 생기는 마찰이나 갈등에도 모른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큰일앞에서는 거침없었다. 자칫잘못하면 먹고살길이 막힐 가능성이 농후해지는 정당활동입문에서도, 선생들에게 받을 불이익, 어쩌면 졸업이 미뤄질지도 모를 상황에서도 나름의 가치관을 지켜나갔다. 이에 사람들은 어린놈의 권력욕, 야망 쯤으로 생각했지만 나는 남들이 어림짐작하는 그런 이유에서 정당활동에 입문하진 않았다.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아가는 청년이 있는가하면, 돈 4만원 때문에 전단지를 돌리다 열사병으로 세상뜨는 청년이 있다.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고, 규율은 여전히 이상하며, 힘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목숨걸고 일한다. 그런 사회에 반드시 말해야한다. "그거 잘못된거 같은데" "왜 그래야하나요?" "바꿔야 하지 않나요?"하고 말이다.


말이 어렵다면 행동으로라도 보여야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반골이란 부정적인 함의만을 가지지 않는다. 사전적 의미로는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사람'이다. 상명하복에 순종하는 일이 미덕인 사회에서 이는 크나큰 리스크다. 하지만 내가 반골에 대해 생각하는 함의는 조금 다르다. 반골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모두가 "이길로 가야한다"고 말할 때 "왜? 그래야하는데"라고 묻는 사람이다. 모두가 침묵할 때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반골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그 반골의 이야기를 시작하려한다. 무지개공원에서 시작된 작은반항이 어떻게 정당활동이라는 더 큰 무대로 이어졌는지, 20대초반의 평범한청년이 어떻게 '평범하지않은' 선택을 하게되었는지, 나름대로의 자기대변을 이어가려한다. 우리네 삶은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위험하고, 때로는 무모한 선택들의 연속이다.


그렇다고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사회가 제시하는 정석대로만 살면 공허감과 후회에 괴로워하는 존재가 사람이다. 성인용 총을 든 채 무지개공원을 뛰어다니던 그 아이처럼, 나는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있다. 이번엔 더 큰 무대에서, 나만의 무기를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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