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력만능주의도,
노력허무주의도 경계한다

열심히 사는 좌파에게

by 백재민 작가

노력만능주의는 대개 이런 문법으로 작동한다. "나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공부했고, 아르바이트 세 개를 병행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네가 못하는 건 네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단순하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땀이 같은 양만큼 흘려도 다른 결과를 낳는 시스템을 애초에 언급하지않는다는 데 있다.


반대편에는 노력허무주의가 있다. 흥미로운 건 이 허무주의를 가장 열심히 유통시키는 사람들이 누구냐는 것이다. 정작 바닥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이 담론을 즐겨소비하지 않는다. 상위중산층가정에서 자라 명문대에 진학했으나 그 이상의 야심이 좌절된 청년들이 이 담론을 좋아한다. "어차피 뭘 해도 안 돼. 금수저 아니면 끝이야."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런데 좌절을 담론으로 포장하는 데는 학력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학력이 있다.


그 말이 유통되는 경로도 따져볼 만하다. 유튜브 썸네일보다는 칼럼이고, 커뮤니티 댓글보다는 북클럽 토론이다. "구조적 불평등"이라는 말을 굴릴 수 있는 사람들이 그 말로 자신의 좌절을 설명한다. 그 말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 말은 아래로 가는 길을 아직 찾지 못했다. 죽도시장 어르신한테 "금수저 사회"라고 말해봐야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눈빛이 돌아온다. 시스템을 짚는 말이 그 시스템 안에서 가장 불리한 사람들에게 닿지 못한다면, 그 말은 결국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는 둘 다 불편하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회시스템을 말하는 사람이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편견이다.


어떤 장면을 상상해보자. 새벽 네 시 반, 복사기 앞에 서 있는 사람. 유인물 오백 장을 뽑고, 출근 전 지하철역 앞에서 한 장씩 나눠준다. 월급은 없다. 교통비는 자비다. 저녁에는 당무를 처리하고, 주말에는 현장에 나간다. 군소진보정당에서 오래 버틴 사람치고 게으른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버티는 데만도 체력이 든다. 고 노회찬 의원 그 이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겠다고 각오한 사람들이다. 성공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뻔히 알면서 뛰어든 사람들이다. 무모함과 게으름은 애초에 다른 자리에 있다. 그리고 그 무모함이야말로, 노력을 자기 한 몸에 쓰지 않겠다는 선택이기도 하다.


새벽 다섯 시에 자기계발서를 읽는 사람과, 새벽 다섯 시에 유인물을 인쇄하는 사람은 같은 시간을 다른 방향으로 쓴다. 전자는 자기 몸값을 올리려는 것이고, 후자는 남의 권리까지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는 전자만 "노력"이라 부른다. 후자에게 붙는 이름은 따로 있다. "사회 탓", "남 탓", "현실감각 없는 이상주의".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을 지적했을 뿐인데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노력의 정의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이다.


보수 지지층의 논리를 몇 겹 벗겨내면 이런 삼단논법이 나온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없는 사람은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이다." 삼단논법처럼 보이지만 대전제가 검증되지 않았다. "열심히 사는 모든 사람은 보상받는다"는 명제다. 이 전제가 보편적으로 성립했던 시절은 확인하기 어렵다. 운 좋은 일부에게 적용됐을 뿐이다. 그 어긋남을 보지 않으려면 조건이 따른다. 실패한 사람은 반드시 게으른 사람이어야 하고, 시스템을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핑계를 대는 사람이어야 한다. 만약 사회문제를 말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더 열심히 산다면? 그 서사가 무너진다. 그래서 못 본다. 자기 삶의 정당성이 걸려 있으니까.

20211008502680.png 손발노동자들은 위험에 내몰려도, 자신을 지탱하거나 피할 곳이 없다. 지난달 29일 국회 앞에서 산재사망 건설노동자 458인 합동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다. 출처 : 한겨레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백재민 작가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25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59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