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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덕현 Oct 29. 2024

TV키드와 TV의 작은 역사

프롤로그 : 바보상자에서 똑똑한 TV까지

상자 속의 바보상자, 그저 물건의 하나였던 TV

엉뚱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TV에 대한 가장 강렬한 첫 기억으로 무엇이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물쇠'라고 말할 것이다. 70년대 내가 아이였을 때, 큰맘 먹고 아버지가 모셔온(?) TV는 방 한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도무지 접근 불가의 물건이었다.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가구 속에 꼭꼭 숨겨져 있는 TV라니! 지금으로서는 아마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당시 그 TV는 가구와 일체형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TV를 보려면 먼저 가구에 달린 커다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양옆으로 연 후에야 비로소 그 속에 놓인 TV를 볼 수 있었다. 이른바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이 공공연했던 시절, 교육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당시 어른들은 아이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바보상자에 상자를 또 하나 덧씌웠던 것이다. 지금은 우스워 보이는 이 풍경은 그러나 당시엔 당연해 보이는 어떤 것이었다.

 

흑백 TV의 화질은 마치 심한 스크래치를 입은 것처럼 조악했고, 그것마저도 TV 안테나의 상태에 좌우되었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거나, 비라도 올라치면 화면은 끊임없이 눈꺼풀을 깜박거렸고, 때론 일그러진 얼굴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 아버지가 옥상 지붕에 올라가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이제 잘 나오니!"하고 묻는 모습이 연출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도 결국은 아버지가 그 자물쇠를 풀어주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내밀한 공간 속에 들어있어서였을까. TV는 어린 내게 어떤 신비한 물건으로 보였던 것 같다. 마치 보물창고 속에 숨겨진 만화경 같은.

 

이때의 TV는 아직까지는 우리의 생활과는 유리된 어떤 물건이었다. 그것은 늘 저편에 있었고, 그것을 보기 위해서는 늘 우리의 손길이 일일이 닿아야 하는 구체적인 물건의 형상을 지니고 있었다. 드드득 소리를 내는 다이얼을 손으로 잡고 돌려야 화면이 바뀌었고, 채널 중간을 차지하는 모래알 같은 지직대는 영상은 TV 저편 세계의 이물감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계였다. "거 신기하네. 요 조그만 상자에 난쟁이들이 저렇게 많이 있다니." 할머니의 말은 아직 TV가 인간의 시각의 확장이라는(텔레비전 Tele-vision은 멀리 있는 것을 가까운 곳으로 끌어들여 본다는 '원격현전'의 의미가 담긴 용어였다) 인식이 생겨나기 전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어른들은 당시 TV가 지금처럼 스마트폰 속으로 쏙 들어와 우리 생활의 일부, 아니 몸의 일부(감각을 확장시켰다는 의미에서)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그때 TV는 그저 우리 몸의 감각과는 유리된 재미난 바보상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바보로 만들지 않으려면 서랍장 속에 숨겨야 할 어떤 존재일 뿐이었다.

흑백TV 시청하는 가족(출처:국가기록원)

새로운 감각에 눈뜨다, TV가 해방시킨 감각

하지만 못 보게 한다고 안 볼 우리들(나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 전부가 그랬으니)이 아니었다. 저녁 시간마다 TV를 볼 수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간 우리들은 탁 소리와 함께 브라운관의 작은 점이 한참이 지나야 영상으로 바뀌는 그 시간을 못 기다려 발을 종종 대곤 했다. 그렇게 켜진 TV 화면 속에 등장한 '황금박쥐'나 '요괴인간', '달려라 번개호' 같은 일본에서 들어온 만화들은 지금과 비교해 보면 꽤 조악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TV 앞으로 끌어들였다. 결국 집 서랍장 속에 고이 모셔둔 TV 때문에 밖을 전전하는 내게 백기를 든 아버지는 저녁 한 시간 동안 감금된 TV를 해방시켜 주셨다. 


그 순간,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저 바깥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가던 우리들의 눈과 귀도 해방되었다. 그것은 바보상자이기는커녕 온갖 진기한 세상 일들을 바로 눈앞에 가져다주는 놀라운 알라딘의 마술램프였다. 프로레슬러 김 일 선수가 일본선수에게 연실 박치기를 해댈 때마다 온 마을이 들썩거렸고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양정모 선수가 메달을 땄을 때는 집집마다 동시에 터져 나온 그 환호성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바보 영구를 흉내 내던 우리들을 조용하라고 하시며 슬그머니 눈가를 훔치게 만들었던 드라마 '여로', 그리고 '짜자자잔짜잔 -'하는 특유의 시그널송이 울리면 당연히 그 앞에 앉아 봐야만 했던 '수사반장'에 대한 국민적인 열광은 이 작은 TV의 위력을 어린 나이에도 실감하게 만들었다.

 

서랍장 속에서 TV가 밖으로 나오고, 그 TV를 자주 접하면서 우리 몸은 TV가 전해주는 매개된 감각에 점점 익숙해졌다. TV가 제공하는 시각과 청각에의 몰입은 여러 다른 감각들을 매개하기 시작했고, 때론 현실적인 감각을 지워버리기도 했다. 어떤 사건에 공분하고 어떤 국가적인 쾌거(주로 스포츠에 이런 표현들이 많았다)는 TV를 통해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했던 집단적인 도취감을 맛보게 했다. 개발시대의 한복판, 애국, 민족, 국가라는 단어는 TV가 애용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단지 머릿속에만 빙빙 도는 그런 단어가 아니라 TV를 통해 우리네 감각과 인식까지도 바꿔놓는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반공이 국시가 되면서 TV는 여전히 흑백이었지만 '배달의 기수'에 등장하는 이른바 빨갱이라 이름 붙여진 자들을 빨간색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감각은 TV에 상당 부분 포섭되어 있었다.

컬러 TV와 리모컨, 안방극장 시대

80년대 서울로 전학 왔을 때, 나는 그 서울이 주는 속도감을 좀체 적응할 수가 없었다. 차만 타면 멀미를 하던 나는 늘 비닐봉지를 준비해 갖고 다녔고, 차들이 쌩쌩 달리고 인파가 물결처럼 파도치는 거리를 다닐 때면, 땅바닥만 쳐다보고 다니기 일쑤였다. 그 속도감의 어지러움은 아마도 처음 내가 TV를 보았을 때 느꼈던 피로감과 비슷한 어떤 것이었다. 여러 개의 프레임들에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영상의 속도감은, 도시에서는 이미 생활이었다. 그것도 총천연색의 생활.


80년대 컬러 TV시대가 열리자 그때까지 TV 속으로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세상은 색을 입기 시작했다. TV를 처음 대했을 때부터 줄곧 가지고 있던 그 신비감이 깨져버린 것은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다. 명암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흑백 TV만의 독특한 아우라는 컬러영상 속에서 적나라한 속살을 드러냄으로써 조금씩 휘발되었다. 컬러시대와 함께 광고들은 더 현란해졌고, 영상은 점점 대중화되었다. 우리의 눈은 점점 피곤해졌지만, 그것은 또한 속도의 시대로 진입하는 우리의 몸을 훈련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더 이상 멀미로 울렁증을 앓는 시골소년이 더 이상 아니었다.


때마침 등장한 리모컨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광고들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 프로그램 전에 방영되던 수십 개에 달하는 광고를 피하기 위해 더 이상 TV 앞으로 가서 드륵드륵 채널을 돌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리모컨의 등장과 함께 TV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그만큼 줄어들었고, 그것은 TV라는 물건에 대한 인식보다는 그 물건 속의 영상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TV는 꺼져있을 때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거기 존재하지 않는 물건처럼 있다가, 비로소 켜짐으로써 존재하는 (물건이 아닌) 그런 영상이 되어갔다. 컬러 영상은 TV의 영상으로서의 존재감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주었다.

6백만불의 사나이

그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채널을 바꿔주는 리모컨은 멀찌감치 놓인 소파와 한 세트를 이루면서, TV 시청을 새로운 여가문화의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에서부터 '게리슨 유격대', '맥가이버'에 이르는 미국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은 그 한참 후에 벌어졌던 미드 열풍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거나 비디오를 빌려야 볼 수 있었던 당대에 '주말의 명화'는 안방극장이란 말을 탄생케 했다. 가족들은 이제 대부분의 여가생활을 집에서 TV를 통해 하기 시작했다. 리모컨을 누가 쥐는가는 그 가족의 헤게모니를 누가 잡고 있느냐를 대변했고, 그것에 따라 가족들은 멜로드라마를 보며 울거나, 스포츠를 보며 열광하거나,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웃곤 했다. 오랜 시간 가족의 중심에 서있던 TV는 이제 더 이상 타인이 아니었고, 심지어 핵가족화되고 개인화된 공간으로 사라진 가족을 대리해 주는 존재가 되었다. 이른바 '또 하나의 가족'이 된 것이다. 


디지털과의 결합, 똑똑하고 움직이는 TV의 시대

80년대 후반부터 점점 보급되면서 거의 1년 주기로 업그레이드된 컴퓨터는 디지털 시대를 예고하면서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컴퓨터 모니터는 점점 TV를 향해 진화했고 결국 이 두 지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IPTV가 등장했다. TV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 즉 TV 하면 입을 반쯤 벌리고 머리는 텅 비운 채 수동적으로 앉아서 거기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상을 보고 있는 바보를 떠올리는, 그런 생각은 수정되어야 했다. 이제 자신이 보고 싶은 영상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본적으로 몰입하게 하기 위해 투명한 창처럼 구성되던 화면은 이제 선택해야 할 아이콘들이 둥둥 떠다니는 마치 모니터 창과 같은 불투명한 창으로 바뀌었다. 이 '정신분산'의 메커니즘이 그래픽으로 구현된 창에서는 TV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할 수 있었고, 보다가 무언가 해야 할 다른 일이 생기면 화면을 멈춰놓을 수도 있었다. 물론 지나간 장면을 되돌려보면서 좀 더 분석적으로 TV를 바라볼 수도 있었다. 이 시대에 TV 방송이 드디어 비평의 대상이 된 데는 그 막강한 영향력에 대한 어떤 균형이 요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디지털과의 결합에서 비롯된 바가 더 크다. 분석적인 시선들은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나누어지고 그 힘이 여론으로 모아져 TV가 독주하는 것을 견제했다. 디지털 시대의 TV란 이제 늘 대상으로서 시청자를 세워놓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시청자의 참여를 통해 집중되는 존재로 변모했다. 이른바 똑똑한 TV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태블릿PC로 OTT 즐기기

그리고 드디어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를 지워버린 OTT라는 TV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전 세계가 동시에 콘텐츠를 바라보는 지구촌 개념이 실현되는 이 공간은 우리에게 '글로벌 감각'을 훈련시킨다. 북미와 남미, 유럽,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콘텐츠들이 이 공간에는 한 자리에 위계 없이 채워져 있다. 물론 그 화면에도 우선순위는 존재하지만 그건 국가나 언어, 민족 같은 아날로그 시대의 구분에 따른 순위가 아니라,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수용자의 취향에 따른 순위다. 언제든 국적 불문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내 앞으로 끌어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이 공간을 통해 우리는 지난 20세기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21세기 개인적 취향의 시대를 감각적으로 벼리고 있는 중이다. 물론 디지털을 기반으로 하는 이러한 문화의 공유지대는 아직은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전 세계의 정세들을 바꿔놓을 만큼의 물리적 힘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이 문화 공유의 경험들이 축적되면 언젠가 저 바깥세상의 풍경들도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갖지 않을까. 


동네에 한 대 있는 TV를 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그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보면 지금은 실로 수없이 많은 TV들(화면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벽걸이 TV와 작업을 하다가도 TV로 변신하는(?) 모니터, 언제 어디든 들고 다니며 간편하게 TV가 되는 태블릿 PC,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언제든 꺼내 TV를 볼 수 있는 스마트폰까지, 이제 생활한다는 것은 바로 이 영상과 마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 똑똑한 TV의 시대에 이제 바보상자는 저 과거의 서랍 속에 넣고 자물쇠를 채워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상을 선택하고 읽어내고 의미를 분석하는 일은 앞으로 생활이 될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TV의 진화는 좀 더 그것을 효과적으로 해줄 것이 분명하다. 그 진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TV의 눈을 우리의 눈으로 만드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채워진 자물쇠를 풀어 갇혀있던 TV와 눈을 해방시켰던 그 행위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TV를 좀 더 스마트하게 보고 그 의미를 읽어내고 그 안에 담긴 모종의 의도들을 찾아내는 눈이 필요해졌다. 

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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