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 11일
에 나갔을주게 한참이였다.
엄마께서 후라시를 켜주셨다.
그런데 비친대만 조금 보이고 비추지 않은 쪽은 안보였다.
한참 있자 불이 켜졌다.
역시 그래도 밝은 게 좋다.
밤이 깊어 정전이 되었던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엄마가 켜 주신 후라시 불빛은 비춘 곳만 환했고, 그 밖의 세상은 까맣게 지워져 있었다.
문득 어릴 적 집에 있던 벽돌처럼 커다란 후라시가 떠올랐다.
‘딸깍’ 누르면 불이 들어오던 둔탁한 스위치, 큼직한 건전지, 손에 쥐면 무게가 느껴지던 그 감각까지 함께 소환된다.
빛이 닿는 자리와 그렇지 않은 자리.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림자.
열한 살인 나는 그 경계를 뚜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비친 곳은 보이고 비치지 않는 곳은 보이지 않는다는 단순하고도 정확한 관찰.
그 또렷한 시선이 남겨 준 기억 덕분에, 정전의 밤 풍경이 지금도 조용히 되살아난다.
돌아보면 어둠은 단순히 사라져야 할 것이 아니라, 빛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 주는 자리였던 것 같다.
우리는 대개 밝음만을 원하지만, 어둠이 있었기에 빛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었기에 보이는 세계가 더 소중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삶도 닮아 있다.
환한 날들만이 아니라 캄캄했던 순간들까지 모두가 나를 만든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여전히 빛을 찾아 조용히 걸어가고 있다.
2월 10일 목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내일 모래급해면 설날이다.
나는 설날이 참 기다려진다.
왜야면 꽃과 같이 예쁜 한복을 입기 때문이다.
한복은 참 불편하다.
그래도 예쁜 내 한복이 좋다.
몸을 씯고 잤다.
설날만 기다렸다.
설날을 기다리던 열한 살의 마음이 새삼스럽다.
그때의 나는 한복이 불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꽃처럼 예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히 기뻐했다. 몸이 조금 조여도, 움직임이 어색해도, 거울 속에 비친 화려한 빛깔이 모든 불편을 덮어 주었다. ‘예쁘면 괜찮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다르다.
여전히 예쁜 것은 좋다. 색이 곱고, 선이 아름답고,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눈이 간다.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불편까지 기꺼이 감당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예뻐도 몸이 힘들고 마음이 거북하면, 나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열한 살의 나는 ‘아름다움’만 보고 달려갔다면, 지금의 나는 그 아름다움이 내 삶과 얼마나 편안하게 어울리는지를 먼저 재게 된다. 설렘과 실용 사이에서 조용히 균형을 찾으려는 마음.
그래도 가끔은 그 어린 마음이 그립다.
불편함조차 설렘으로 바꾸던 시절, 세상이 온통 빛나 보이던 시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두 마음이 모두 나라는 생각이 든다.
예쁜 것을 사랑하던 아이와, 편안함을 지키고 싶은 어른이 한 몸 안에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2월 11일 금요일 날씨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오늘 내가 혜주에게 예쁜.............. (끝)
일기는 2월 11일에서 갑자기 멈췄다.
마치 문장이 허공에 걸린 채로 남아 있는 느낌.
그 뒤 이야기가 궁금해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아마 봄방학이 시작되며 자연스럽게 펜을 내려놓았겠지, 짐작해 본다.
4학년이 되어서야 다시 일기를 썼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나는 잠시 그 시간 사이에 서 본다.
이 매거진도 여기까지다.
그동안 함께 읽어 주시고, 마음을 나눠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다가오는 설,
모두의 집에 따뜻한 불빛이 오래 머물길.
건강과 사랑이 넉넉한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여기서 조용히 인사드린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열한 살에 쓴
그날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