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과 눈과 촛불의 겨울

2월 6일 ~ 2월 9일

by 푸른 잎사귀

2월 6일 날씨 : 흐림 일요일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아빠가 귤을 사 오셨다.

혜주는 좋아서 뛰어갔다.

혜미도 웃으면서 뛰어갔다.

그리고 조금 전에 삼촌도 이사를 우리 집으로 왔다.

삼촌이 콜라를 사 와서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잘 적에 쌍화차를 타 먹었다.

나는 과식하는 게 아니나 하고 생각했다.


- 열심히 잘 썼구나.

계속 열심히 해요.




아빠가 사 온 귤 봉지를 본 순간,

둘째는 좋아서 뛰어가고 막내는 웃으며 뒤따라갔다.

그 정다운 풍경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조금 전에는 삼촌이 이사를 와 우리 집에 머물게 되었다.

삼촌은 콜라를 사 왔고, 우리는 깔깔 웃으며 그것을 나눠 마셨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쌍화차를 타 먹었다.


열한 살의 나는 그날 스스로를 진단했다.

오늘은 과식을 했다.”


어릴 적 병에 든 코카콜라는 왜 그렇게 맛있었을까.

어른이 되어 마시는 콜라는 아무리 애써도 그때 그 맛이 아니다.

일부러 병콜라를 사 마셔 보아도, 그 맛은 돌아오지 않는다.


입맛이 변한 걸까,

아니면 세월이 맛을 바꿔 놓은 걸까.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맛을 되살리려면 추억을 다시 넣어야 한다는 것을.


그 시절의 맛이 문득 그리워진 날이었다.





2월 8일 화요일 날씨 : 눈 온 후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아침에 눈이 펑펑 쏟아졌다.

아침에 아빠께서 눈을 쓸고 있었다.

눈이 참 많이 왔다.

학교에 갈주게 뽀드륵 소리가 났다.

나는 혜주와 같이 갔다.

길이 미끄러워서 넘어질뻔했다.

혜주는 웃어서 미끄러졌다.

나는 혜주 한태 나한태 흉을 봐서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눈이 펑펑 쏟아졌다.

아빠는 부지런히 눈을 쓸고 계셨다.


학교에 가는 길, 눈을 밟을 때마다 나는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너무 좋아서 마음이 들떴다.


혜주와 나란히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한눈을 팔다가 미끄러질 뻔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혜주가 웃었고, 웃던 혜주는 결국 미끄러졌다.


열한 살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를 흉봤으니 벌을 받았구나.”


지금 돌아보면 그 마음이 참 웃기고도 사랑스럽다.

경쟁이라기보다, 자매 사이에 흐르던 묘한 장난기와 친밀함이 느껴진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날,

조심조심 발자국을 남기며 학교로 향하던 그 풍경이 그저 정답고 그립다.






2월 8일 수요일 날씨 : 눈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저녁이 댈때쯤 5시 30분에 텔레비전을 보았다.

자꾸 전기가 나갔다.

2번쯤 나가고 3번째....................(다음에 계속)




저녁 5시 반쯤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전기가 자꾸 나갔다.

두 번, 세 번…. 그리고 일기는 거기서 멈춘다.


어릴 적에는 전기가 자주 나갔다.

촛불을 켜고 밥을 먹고, 창밖 어둠을 바라보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곤 했다.


지금 아이들은 그런 경험이 드물 것이다.

전기는 늘 당연히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것 하나로 우리의 삶이 얼마나 편해졌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기 없는 세상은 불편하다.

기계 문명에 길들여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열한 살에 쓴

그날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