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불과 맏딸의 자리

2월 4일 ~ 2월 5일

by 푸른 잎사귀

찬가지였다.

그 이불을 덥고 잤다.

참 좋았다.

참 따뜻했다.

나는 이 이불이 참 따뜻하고 침대같이 포근했다.



오래된 일기를 읽다 보면, 글자보다 마음이 먼저 말을 건다.


그날의 나는 엄마가 만들어 준 이불을 덮고 잤다.

‘참 좋았다, 참 따뜻했다’고 적어 놓았지만,

그 짧은 문장 뒤에는 말로 다 담지 못한 포근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 이불은 단순한 잠자리 도구가 아니라, 엄마의 품처럼 부드러운 안식처였겠지.

그래서인지 지금도 문득,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솜이불을 다시 덮고 자고 싶어진다.

어쩌면 이불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엄마의 품이 그리운 것일지도 모른다.






2월 4일 금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엄마가 방학이 내일모래급해다고 방학 숙제 하랬다.

나는 원고지 한 개를 안 썼다.

제목이 혹뿌리영감이였다.

혜주도 나와 똑같이 썼다. 나는 혜주가 얄미웠다.



2월 4일, 일기에는

“엄마가 방학이 내일모래 급해다고 방학 숙제하랬다”라고 적혀 있다.


읽고 나서야 웃음이 났다.

'개학'을 '방학'으로

‘내일모레’를 ‘내일모래’로

‘글피’를 ‘급해’로 쓴 어린 나.


그때의 나에게는 원고지 숙제가 참 버거웠을 것이다.

제목은 한 줄 띄워 가운데에 쓰고,

반 번호와 이름의 칸을 맞추고,

또 한 칸 들여 써야 했던 독후감….


그 복잡한 규칙만으로도 머리가 아팠을 텐데,

많고 많던 책중에 왜 하필이면 ‘혹부리 영감’이었을까.

가장 최근에 읽은 내용이라

기억이 많이 나서였을까.

아니면 혹부리영감의 혹이 붙었다 떨어졌다했던 게 신기해서였을까.

그때의 독후감이 보고 싶다.


그런데 혜주도 나와 똑같은 내용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내 글을 슬쩍 참고했겠지.

그때 나는 얄미웠지만,

돌이켜 보니 그건 맏언니가 겪는 작은 서운함이었을 뿐이다.


언니라는 자리는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힘들다.

그래도 결국 내어주고, 참고, 함께 가야 하는 자리이니까




2월 5일 토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오늘은 혜미 혜주가 놀이터에 가자고 때를 썼다.

나는 할 수 없이 데리고 갔다.

혜미는 미끄럼틀 타느냐고 바지가 다 드러워졌다.

나는 그네도 태워졌다.

시소도 태어졌다.

오늘 혜주가 나한테 마음이 너무 고와졌다고 했다.

나는 오늘타라 혜미 혜주가 귀엽다.



다음 날, 동생들이 놀이터에 가자고 졸랐다.


솔직히 말하면 귀찮았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할 수 없이’ 데리고 나갔다.


혜미는 미끄럼틀을 타느라 바지가 다 더러워졌고,

나는 그네도 밀어주고, 시소도 함께 탔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서윤 작가의 시「엄마와 딸]과 겹쳐진다.

언니라는 존재가 자연스럽게 감당해야 했던 돌봄의 무게 말이다.


그런데 그날, 혜주가 내게 말했다.

“언니, 오늘 마음이 너무 고와졌어.”


그 말이 왜 이렇게 웃픈지 모르겠다.

아마 평소의 나는 꽤 투덜거리거나 짜증을 냈을 것이다.

그래서 동생들은 내 작은 친절에도 크게 반응했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는 동생들이 참 귀여웠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날 깨달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형제의 정은 투닥거리면서도 결국 서로를 품는 마음이라는 것을.



이 오래된 일기들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어린 내가 세상을 배우던 흔적이었다.

엄마의 이불에서 배운 따뜻함,

원고지 숙제에서 느낀 부담,

놀이터에서 경험한 언니의 자리….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끔,

그 따뜻한 솜이불을 떠올리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https://brunch.co.kr/@2f36ad5f04e44bf/242



아래는

내가 실제로 열한 살에 쓴

그날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