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 2월 3일
또다시 햇빛이 나서 우리는 높이 높이 쌓았다.
나는 요줌 겨울이 따뜻해서 좋다.
바람이 안 불었으면 좋겠다는 열한 살의 마음이 통했을까.
햇빛이 났다고 한다.
바람 때문에 무너진 나무성은
햇빛이 나는 바람에 다시 높이 높이 쌓아 올려졌다.
인생 한가운데서도
바람은 불고
햇빛은 난다.
그 모든 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다가온다.
그 앞에서 우리는 참 작다.
그래서일까.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는 삶을
조금은 뛰어넘고 싶어진다.
2월 1일 화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마당에서 솝꼽놀이를 하였다.
내가 엄마 혜주가 애들 혜미는 애기였다.
나는 밥을 지어서 혜주 혜미한테 주었다.
나는 혜미를 안고 우유를 우유통에 주었다.
혜미는 자는 척하였다.
자는 혜미 모습이 혜주 어렸을 때 하고 똑같았다.
역할은 분명히 나누어졌다.
나는 엄마,
혜주는 아이,
혜미는 아기였다.
엄마 역할을 맡은 나는
밥을 지어 주고
아기를 안고
우유를 타 준다.
2월의 추위에 마당에서 소꿉놀이를 했다는 점도 마음에 남지만
이 문장은 유독 오래 머문다.
“자는 혜미 모습이 혜주 어렸을 때 하고 똑같았다.”
네 살짜리 막내는
자기에게 맡겨진 역할을 아는 아이처럼
자는 척을 한다.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열한 살의 눈에는
막내의 얼굴 속에서
둘째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첫째의 기억 속에는
시간이 겹쳐지고
사람이 포개진다.
이것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일까.
같은 유전자를 가진 형제의 얼굴을 보며
열한 살의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2월 2일 수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오늘은 11시에 제사를 지냈다.
다 지낸 다음 고기와 사탕 과자 등 여러 가지 음식을 많이 먹었다.
배가 불렀다.
나는 더 먹고 싶었는데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못 먹겠다.
혜미는 내 배 터지라고 깔고 문댔다.
열한 시에 제사를 지내고
고기와 사탕, 과자를 잔뜩 먹었다고 적혀 있다.
배가 불렀지만
더 먹고 싶은 마음도 여전히 존재했다.
어린아이들에게 제사는
의식이 아니라
기다림이었을 것이다.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던 시간.
그래야 맛있는 것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기록 속에서 가장 또렷한 장면은
막내가
배부른 큰언니의 배 위에 올라타는 순간이다.
배가 터지면 안 되기에
그 배를 지키려 애썼을
열한 살의 모습이
괜히 웃기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2월 3일 목요일 날씨 : 맑음
(열한 살의 내가 쓴 일기)
엄마가 저녁에 이불과 베개를 만들어졌다.
이불은 참 예뼜다.
베개도 마..................(다음에 계속)
엄마는 바느질 솜씨가 좋았다.
엄마의 손을 거치면
무엇이든 멋있게 만들어졌다.
털실로 옷을 짜 주고
아이의 키가 자라면
그 옷을 풀어 다시 다른 옷을 만들던 엄마.
그런데 나는
그 엄마를 닮지 못했다.
뜨개질도
바느질도
끝까지 해낸 기억이 거의 없다.
유행처럼 목도리를 뜨던 시절에도
나는 끝을 보지 못했고,
십자수가 유행했을 때
전화번호를 수놓은 작은 쿠션 하나와 열쇠고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나는 차분한 사람 같다가도
가만히 앉아 반복해야 하는 일에는
금세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다.
특히 마늘꼭지 다듬기나
쪽파 다듬기 같은 단순한 노동을
나는 유난히 어려워한다.
엄마는 손이 빠르고
이런 일을 참 잘한다.
엄마를 닮지 못한 부분들이
이렇게 오래된 일기 속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점이 재미있다.
아래는
내가 실제로 열한 살에 쓴
그날의 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