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함과 책임감 사이에서

by 푸른 잎사귀

지인을 통해 들은 이야기 하나.
지인의 지인은, 꽤 용감한 도전을 했다.


개인 과외를 시작하며 사업자 등록까지 하고,
야심 차게 “회원 모집 중”이라는 문을 열었다.


사실 개인 과외는
학생이 5명 이하일 경우
굳이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은 달랐다.
처음부터 정직하게,
사업자 등록까지 하고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이들이 모이지 않아서 방학 동안 무료특강을 하였고

2명이 들어왔는데

쌍둥이였다.

이들을 다음 달로 이어가게 하려고

정식 수업비를 받지 않고 형제할인 오십 프로라는

파격세일을 하였고 지금은 계속 수업을 받고 있지만
5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이는 둘.


정성은 넘치는데 통장은 비어 가고,
사실상 수입은 거의 없는 상태.


결국 현실과 협상을 시작하게 된다.
“공공근로라도 알아봐야 하나…”


공고문을 살펴보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서
일자리센터에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사업자 등록이 되어 있으면 제외 대상이라는 조항 때문이었다.


"사업자등록이 되어있긴 한데 거의 수입이 없는 상태이긴 하거든요.

이런 경우도 공공근로 접수가 가능한가요?"


담당자는 서류는 접수할 수 있다고 했다.


“근데… 사업자 등록자는 제외된다고 8번 조항에 되어있던데 아닌가요?”


잠시 정적.


그리고 들려온 아주 솔직한 고백.
“제가 신입이라 잘 몰랐습니다. 이 업무를 처음 맡게 되었고,
선임에게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 보니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솔직한 신입’ 이야기다.


그런데 통화를 끊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조금 흥미로운 점이 보였다고 한다.


사실 이 신입은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선에서 판단을 해버린 것이다.


보통 같으면
“확인 후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라고 하거나,
조금 시간을 벌었을 텐데,
이 신입은
일단 결론부터 내렸다.


“서류는 접수 가능합니다. 그 후 서류 심사에서 제외될 수는 있지만
안 된다고 단정해서 말씀드리기가 그래서요…”
라는, 변명 아닌 변명도 덧붙였다고 한다.


모르지만 멈추지 않고,
일단 해보려는 태도.
그리고 틀리면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


지인은 그 지점에서
요즘 젊은 신입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했다.


완벽하게 알고 말하기보다,
일단 자기 선에서 움직여 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방식.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요즘은 예전에 비해
자기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조금은 옅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리고 그 안에는
아주 미묘한 ‘책임감의 결’도 함께.


왜냐하면
그 전화를 건 사람은
그저 문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꽤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 안내에 따라
서류를 준비하고,
시간을 쓰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그 과정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꽤 긴 ‘기다림’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날의 통화에서는
그 기다림에 대한 배려가
조금은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지인은 다시 물었다.
“그럼… 어차피 안 되는 거면 서류 낼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제가 잘 몰라서… 죄송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지인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아, 이 사람…
아직 ‘공무원의 세계’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구나.


지인이 아는 공무원은 말실수나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고

허점 잡히지 않는 말만을 애매하게 하던데 이 신입은
정직했고,
솔직했고,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시간과 마음의 무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까지는
아직 닿지 않은 듯했다.


목소리는 아들뻘.
혼내기도 뭐 하고,
그저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처음부터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상담해 주어야 담당자 아닐까?
공무원 사회에서 서툴지만 솔직하게 사과하는 점은 좋았지만


그 사이에서
우리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전문성과 정직함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그 위에
조금 더 깊은 책임감과 배려가 얹혀야 하는 걸까.


그날의 통화는
그 질문을 조용히 남기고
끝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