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잖아도 아까 출근하며 뭔가 붙어있는 걸 보긴 했는데 지하철 시간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계단을 내려갔었다. 남편 입에서 메모 봤냐는 말이 나오자 무슨 내용인지 너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그 내용 보고 황당했어요.”
남편의 말투와 표정이 심상치 않다. 정말 어이없어하는 표정이다.
“무슨 내용이기에 그래요?”
궁금하여 남편 곁에 바짝 붙어 앉는다.
“당신이 이거 한 번 보고 뭘 느끼게 되는지 얘기 좀 해봐요.”
옆집인데요.
계단 요금을 안 내어서
전기 끊을 수 있다 해서
조만간 계단 전기 못 쓴 데서
고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전기도 안 되는데 미안해요.
센서등 나중에 고쳐요.
남편이 내민 핸드폰 속 사진을 확대해 보니 비뚤비뚤 거리는 필체에 맞춤법과 문맥이 맞지 않아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적혀있었다. 내용을 집중해보려고 하는데, 도통 앞뒤 문맥이 이해가 안 되고 두 집이 서로 어떤 내용들을 주고받았던 것 같은데 글쓴이의 의도가 잘 파악이 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나에게 남편이 해석을 해준다.
“내가 보니 일층 센서등 고치는데 몇 만 원을 쓸 생각을 하던 사람들이 전기 끊긴다고 하니까 없던 얘기로 하자는 내용이잖아요. 근데 고작 전기세 2천 원 내기 아까워서 없던 일로 하자는 내용이 정말 어이가 없더라고요.”
남편의 해석을 들은 후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101호와 102호는 합의하에 센서등을 고치기로 했는데 전기 끊긴다는 말에 마음이 돌변한 102호의 일방적인 결정 통보의 내용이었다
전에 정화조 건도 그렇고 -다음에 쓸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남편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수준에 대해 열띤 토론과 같은 얘기를 하며 빨리 이사 갔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럴 때마다 둘이 척척 마음이 맞는다는 건 예전부터 이사 가고 싶은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로부터 일주일 후
퇴근 후 계단을 올라가는데 원래 일층은 전등이 고장 나서 불이 안 들어오는 건 알고 있었는데 2층을 올라가도 3층을 올라가도 4층에 올라와도 불이 켜지지 않았다.
‘아, 전기가 끊긴다는 고지서를 본 적 있는데 그날이 오늘이었구나.’
1층부터 켜고 온 핸드폰의 플래시를 4층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연 후에야 끄며 사고 없이 올라왔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휴~~ 겨울이라 많이 어둡네 ~. 계단 조심해야겠는걸.’
오래된 빌라라 유독 가파르고 컴컴한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 올 남편 생각에 문자를 찍는다.
여보, 공용전기가 오늘 나갔어요.
계단 올라올 때 핸드폰 플래시 켜고 조심히 올라오세요.
내가 사는 빌라는 총 10세대가 산다.
7집이 집주인들이고 3세대만 세입자이다.
그중에 나는 세입자인데 집주인들이 많은 이 빌라의 공용전기세가 13개월이나 미납이 되어 18,170이 되었고, 한전에서 계속 독촉장을 보내왔지만 집주인 누구 하나 나서서 전기세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퇴근하여 집에 들어온 남편이 하는 말이
“내일 한전에 전화해서 얼마가 미납됐는지 물어보고 우리가 일단 미납금을 내려고 해요.”
“아니, 집주인들도 가만히 있는데 세입자인 우리가 나서서 왜 미납금을 내요? 내더라도 며칠 더 불편하게 한 후 내는 게 낫지 않아요.”
“전기가 나갔을 때 제일 불편한 건 4층에 사는 우리잖아요. 이러다가 계단에서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하면 병원비가 더 들어요.”
남편의 얘기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고 제일 불편한 건 4층에 사는 우리가 맞았다.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지하나 일층에 사는 사람들은 공용 전기를 별로 쓰기 않는다고 하면 우리도 할 말이 없지만, 옆집 같은 경우는 집주인이고 우리보다 더 많은 가족들로 인해 자주 계단을 이용하여 전기를 많이 사용함에도 계속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짜증 나는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제일 불편한 건 우리가 맞았다.
“그래요. 당신이 생각을 잘한 거 같아요. 생각해 볼수록 그렇게 하는 게 좋겠어요. 2만 원 정도 되는 돈 잃어버렸다고 생각해도 되고,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요금이라고 생각하면 되니까요.”
“그래요. 여보. 이런 걸로 스트레스받지 맙시다. 우리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맘 편할 거예요. 일단 먼저 미납금을 내고 현관문에 내용을 적어 놓아서 한 세대 당 돈을 내면 내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그래요. 여보. 당신 말대로 일단 내일 한전에 전화해 보고 그다음 상황을 정하도록 해요."
세입자가 집주인들을 컨트롤하는 상황이 이런 걸까?
순간 피식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방법을 몰라서인지, 귀찮아서인지, 신경 쓰기 싫어서인지, 남의 일이라 생각하는 건지, 별별 생각이 다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