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세 내신 분~! 두 번째 이야기

동그라미 해주세요.

by 푸른 잎사귀

다음날

남편이 한전에 전화를 했다.

내가 사는 빌라는 전기사용량이 적어서 한 달에 1,200원이나 1,300원씩 나오는 곳이란다.

어떻게 되냐고 물어봐서 그 빌라에 사는 사람이라고 답을 해주었다.

총 14개월이 밀려서 19,330원이 미납이다.

한 세대 당 1,900원씩 입금해 달라고 하면 될 것이다.

A4용지에 진행사정을 적고 미납금을 적은 후 한 세대 당 입금해야 할 금액을 적고 계좌번호와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고 호수를 적어 칸을 만들었다. 입금을 하였으면 호수 옆에 동그라미를 쳐달라고 쓰고 출력을 했다.

동그라미를 하려면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을 볼펜이 있어야 했는데 얼마 전 안 쓰는 것을 모아 센터에 갖다 놓은 게 생각이 났다.

이런 게 머피의 법칙이겠지.

꼭 찾으면 없고, 있다 해도 잘 써지지 않거나 또는 너무 좋은 볼펜만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필기감이 좋은 볼펜 2자루 중에서 볼펜심이 적게 남은 것에다 마스크 줄을 재활용하여 묶었다.

그리고 현관 유리문에 스카치테이프를 출력한 종이 위에 붙여 고정하고 현관문 손잡이에 볼펜을 매단 고무줄을 묶은 후 401호 옆에 동그라미를 해두었다.


‘과연 몇 집이나 낼까? 반은 내겠지?’

긴장된 마음으로 출근을 하였다.


------

퇴근 후

현관문에 붙어있던 종이를 쳐다보았다.

202호에 동그라미가 쳐져있다.

퇴근한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 통장으로 202호가 2천 원을 입금을 했고

경매로 낙찰받은 201호가 전화를 하더니 입금을 하였다고 했다.

낙찰받은 사람이 입금을 해준 것이 의외였다.


다음 날

101호가 지하 01호에 동그라미를 했다가 다시 고친 자국이 있고 302호가 입금을 했다.

이틀 만에 네 집이 냈고 우리 집까지 냈으니 반은 낸 셈이다.

남편 퇴근 후 잠시 전기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이 “누구세요?”하니까

“옆집이에요.” 한다.

문을 여니 옆집 막내딸이다.

다짜고짜 볼멘소리를 한다.

“전기세 여기서 내셨어요?”

“네. 저희가 불편해서요.”

옆집 막내딸이 특유의 까랑까랑하면서 빠른 발음으로 후다닥 말을 이어나간다.

“저희가 그동안 일부러 안 낸 거예요. 전기가 끊겼으면 했거든요. 여기 사람들은 정화조도 그렇고 전기도 그렇고 전혀 안 내려고 해서 우리가 작년까지는 관리하다가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올해부터는 손 떼었거든요. 여기 1,900원이요.”

남편 손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과 백 원까지 아홉 개를 올려놓으며 흥분한 목소리를 쏟아내자마자 자기 집 문을 열고 휙 들어가 버린다.

옆집에서 받은 전기세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을 보며 남편에게 말한다.

“그럼 301호와 지하와 102호만 내면 되는 거네요? 생각보다 많이 내서 놀라운데요?”

“지하랑 일층은 기대를 안 하고 있어요. 제일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은 4층이고 지하 같은 경우는 거의 쓰지 않기 때문에 본인들이 안 낸다고 하면 내라고 할 말이 없거든요.”

남편과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 정도면 대만족이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다음날 수요일에 퇴근 한 남편이 말한다.

“통장으로 지하 두 집과 102호 들어왔어요. 근데 301호는 안 내고 있네요.”

지하까지 내다니 정말 기대이상의 결과다.

“지금까지 안 내는 걸 보면, 301호는 안 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물론 동그라미가 본인 호수만 안 되어 있으면 눈치 보여서 낼 수 있겠지만. 기대는 안 하는 게 속 편할 거 같아요.”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난

목요일 아침

남편이 10세대 모두 입금이 되어서 종이 붙여 놓은 거 떼어야겠다고 말한다.

한전에 전화 후 나흘 만에 모두 완납을 하게 된 걸 보고 서로 깜짝 놀랐다.


여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정화조를 펐다는 영수증이 B02호 우체통에 붙어있었다. B02호에서 돈을 지불하고 정화조를 푼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일단 영수증 사진을 찍어 놨다.

그런데 다음날 그 영수증이 없어졌고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 말이 없어서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나 답답해하고 있을 때

옥상에 빨래 널러 올라갔다가 옆집 아주머니를 만났기에

“B02호에서 정화조를 푼 것 같던데 알고 계셨어요? 우체통에 영수증이 붙어있었는데요.” 하니까

“나는 몰라요. 본 것도 없어요.”라고 말을 하더니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는 모습을 보았다.

며칠 후 사라졌던 그 영수증과 전화번호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가 현관문에 붙어있었는데

지금처럼 동그라미를 쳐서 서로 눈치 보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기에 돈을 다 받지 못했을 거라고 예측해 본다.

여하튼

202호만 2천 원을 입금해 주고 옆집은 직접 현금 1,900원을 주었고 나머지는 모두 계좌이체 해주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모든 세대가 다 입금을 해주었다.

남편에게 일처리를 기가 막히게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더니 멋쩍은지 씩 웃는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보행자들이 건너는 횡단보도가 너무 어두워서 우회전하는 차들이 사람들을 못 볼 수 있어 위험하다며 시청에 전화를 해서 민원을 접수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한 달 안에 환한 불을 달아줬었던 적이 있었다.

또한 차도에 방치돼 있던 고무 타이어 조각이 펄럭이는 것을 보고는 다른 차량들이 운전하다가 사고 날 수 있다며 신고했더니 말끔히 치워간 적도 있었다.-


남편은 본인이 불편해서라고는 하지만 본마음이 따뜻하고 친절하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이 든다. 정말 본받고 싶은 마음이다.


자~이제~ 결산을 해볼까?

전기세 19,330원

우리가 330원 더 부담하는 걸로 하고 19,000 나누기 10세대

한 세대 당 1,900원씩 내는 걸로 결정

100원 더 보태서 2천 원 입금해 준 1세대 덕분에

우리 집 2,130원

나머지 8세대는 모두 1,900원 입금

그래서 총 19,330원으로 정산 끝!


전기가 들어온 다음 날

일층 계단 입구가 환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101호와 102호가 어떻게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대낮보다도 밝은 센서등이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의 빌라가 하루아침에 밝은 빌라가 되었다.

태양빌라 이름처럼 따스한 빛을 등에 받으며 계단을 힘껏 오른다.

매거진의 이전글전기세 2천 원, 센서등 2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