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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혜숙 Feb 09. 2022

2차 트라우마

 나로심리상담센터



"상담하면서 힘들지 않으세요? 안 좋은 이야기만 듣다 보면 힘들 것 같아요"


내담자 혹은 상담에 관심을 보이는 지인들에게 듣곤 하는 말이다.


"힘든 부분도 있지만,, 그래서 저도 상담을 받아요. 소진되지 않도록,,"

질문자의 궁금증을 이렇게 풀어주곤 하지만, 마음속에선 더 강렬한 대답으로 나와 마주한다.

'때론 너무 힘들다고'

지난날, 수많은 상담 장면에서 내담자들의 상처와 고통을 함께 마주했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것은 폭력과 학대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은 고통이다. 

가정 내 학대나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그로 인해 우울감, 무망감으로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단절된 삶을 선택하는 내담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보곤 했다. 

때로는 오히려 덤덤하게 말하는 내담자 앞에서 울기도 했다. 

(내담자 앞에서 울고 있는) 이런 나 자신을 보게 되면 나의 멘털을 탓했다. 나 스스로 아직 수련이 덜 되었고 혹은 어릴 적 내면의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던 이유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수련받아야 하는 이유를 찾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더 많은 개인상담과 슈퍼비전을 받아도 이런 상황과 문제는 크게 해결되지 않았다. 



2차 트라우마


상담자는 내담자의 트라우마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때 상담자도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을 '2차 트라우마'라고 한다. 내담자가 경험하는 트라우마보다는 그 강도가 약하겠지만, 여러 명의 내담자를 만나는 상담자인 경우 2차 트라우마는 누적될 수밖에 없다. 

2차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상담자는 심리적 소진뿐 아니라, 자신감을 잃고, 만사가 귀찮을 만큼 피곤하고, 절망감, 무능감을 갖게 되며 회의감, 짜증과 과민 등을 경험하게 된다. 

이를 치료하는 방법은 딱히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지속적으로 슈퍼바이저나 동료들에게 심리적 지지를 받으며 자신을 잘 관리하는 지혜를 배우는 것이 최선이다.



작년 여름은 양성종양 제거 수술과 치료를 하며 비로소 내 신체적 건강을 제대로 체크하게 되었던 시기였다.

그동안 쉴 새 없이 나 자신보다는 내담자, 혹은 가족, 혹은 일을 더 우선시하고 중시했던, 균형을 잃은 내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신체건강상의 결과라 여겨졌다. 슬프고 우울했다. 

자신을 살피고 자신이 우선시되는 삶을 내담자와 함께 공유했던 나였기에 더욱더 혼란스러웠다.


이후 상담시간을 의도적으로 줄이며 상담 자체를 피했다. 수년간 근무했던 학교도 중단하였다. 

대신 다른 영역의 책을 보며 지냈다. 

상담에 대한 회의감은 인간관계도 회피하는 등의 심리적 소진 상태를 가져왔다.

나를 기다리는 내담자가 안타까워서, 내 상태를 점검하지 않은 채 그들을 만나겠다는 마음만으로 무리하게 

상담에 임했던 지난 시간들의 피해는 어쩌면 오롯이 내담자들에게 떠넘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누적된 소진은 나의 삶 자체를 되돌아보는 지난 몇 개월의 시간 덕분에 차츰 회복되어 갔다. 

새해를 맞이한 현재까지 차츰 제자리를 찾기 위한 준비는 마련된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상담사, 전문가들도 2차 트라우마의 피해로 고통받지 않도록 평소 자신의 심리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동료들끼리 서로 돕든 것도 필요해 보인다. 

상담사 자신뿐만 아니라 상담사를 만나러 애써 찾아오는 내담자를 위한 최소한의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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