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인간관계(10)
직장인이 정치를 한다? 아마도 순진한 사람은 머리를 흔들 것이다. 정치라면 ‘정치판의 술수’가 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정치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술수적’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정치’는 ‘술수’와 같은 의미가 된다. 그러기에 세상을 바르게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정치’에 혐오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당신이 정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사실상 ‘정치’이다.
회사 내에서의 정치란 정치인들이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사내정치를 말한다. 직장생활의 필요악이라 불리는 ‘사내정치(Office Politics)’는 세상의 어느 기업도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승진인사를 앞두고 정치를 하라고 일갈해대는 CEO는 없다. 묵묵히 자기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면 회사가 다 알아서 해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CEO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정말로 그랬을까?
캐서린 K. 리어돈은 《성공한 사람들의 정치력 101(It's All Politics)》에서 “어떤 직업이든 간에 업무 능력이 어느 수준에 오르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정치가 성공을 좌우한다. 그 지점에 이르면 실제로 모든 일이 정치로 이루어진다. 실력 있는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지원해줄 결정적인 힘을 얻지 못해 정치력이 능수능란한 동료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오늘날 직장에서 매일 벌어지는 풍경이다”라고 말했다.
반 고흐와 피카소의 결정적 차이
정치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그레고리 번스는 《상식파괴자》에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빈센트 반 고흐와 파블로 피카소를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두 사람은 현대미술의 대가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각각 아마추어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화풍을 가졌다. 그들이 남긴 그림은 1억 달러를 호가하며 미술계에서 우상시 되는 것들이다. 반 고흐에게 ‘별이 빛나는 밤’이 있다면 피카소에게는 ‘게르니카’가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불멸의 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는 살아생전에 외톨이었고 가난에 힘겨워하며 빈털터리로 세상을 떠난 반면에 피카소는 살아생전에 누릴 수 있는 모든 호강을 다 누렸다. 그가 사망했을 때 7억 5천만 달러의 유산을 남겼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바로 ‘관계’의 차이, ‘정치력’의 차이이다. 고흐는 폴 고갱과 언쟁 끝에 자신의 귀를 잘라낼 정도로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는 그림밖에 몰랐고 이질적인 세계를 거부했다. 반면에 피카소는 어떤가? 우리가 기억하듯이 피카소의 외모는 볼품없으며 키가 160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자석’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교적이었고 정치적이었기에 세상이 그의 손바닥 위에 있었고 그토록 많은 연인이 있었다.
이처럼 예술계에서 조차 인맥과 정치가 필요한데 하물며 일반 직장이라면 볼 것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인사를 한문으로 人事라고 표기한 것은 참 절묘하다. ‘인사’란 ‘사람에 관한 일’이라는 것이 본뜻이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즉, 인사란 사람이 하는 일이다. 기계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변수가 작용하고 타협과 조정이 작용하며 한 단계 고도의 계산이 작용한다. 기계적 셈법으로 통하지 않는 유도리(ゆとり ; 우리말로 ‘여유’라고 해석하지만 ‘정치’와 관련해서 ‘유도리’의 어감을 따라갈 우리말이 없는 것 같다)가 작용한다.
타협, 조정, 고도의 계산, 유도리가 뭐냐? 이것이 바로 정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은 본래 정치적 동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