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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벽한 가족 Feb 21. 2022

미세먼지처럼 살 자신 있어?

육아휴직 복직자의 N회차 승진 광탈기


 승진 심사에 재도전했다. 인사적체가 심한 곳이며 꽤 연공이 반영되는 인사라 여러모로 떨어지는게 당연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불편했다. 결과에 관계없이 도전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한 번 출사표를 던졌다.


 결과는 낙방이다.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더니 마음과 달리 반나절은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서러운 마음이 낯부끄러움으로 바뀌기까지는 일주일이 걸렸다. 아이들을 위한 사명감이 가장 필요한 곳에서 '승진'은 나에게 무슨 의미였고 무엇이 그렇게 슬펐을까?




 악성재고가 되기 싫었다

 


  악성재고가 되기 싫었다. 사람을 물건으로 표현하는 것이 듣기에 좀 그렇지만, 후배들 보기에 '능력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두려웠다. 두 번째로는 인정 욕구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 욕구가 있다. 조직에서 승진은 조직원을 동기 부여할 수 있는 확실한 도구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이곳은.     


 아니 그래서 이제 뭘 어쩔 거냐고. 계속 궁시렁대면서 앉아서 숨만 쉴 거야? 라고 물으면, 관두지 않는 이상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후배들에게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주어진 과업을 해나가야 한다. 조직의 소명과 가치에 부합하는 다양한 성취를 위해 뛰어야 할 것이다.



 마음을 일으켜준 것은 사람들의 위로였다.    

 


"네가 부족한 게 아니라 구조적 문제야. 넌 이미 충분히 잘났어"

"인생에서 맨날 100점만 받다가 고작 하나 틀렸다고 울기냐"(승진자에게 들으니 기분이 묘한데.)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평균 2.5개의 직업을 가져. 직장이 전부인 것 같아도, 멀리 보면 그렇지 않아






미세먼지처럼 살아가자


  솔직히 한동안은 '미세먼지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미세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조직 입장에서 털어내고 싶은 먼지처럼 말이다. 그것이 내가 드러낼 수 있는 최선의 방어기제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못 된다는 걸. 미세하고 가늘게 살아가는 것을 스스로 못 견뎌하는 '관종의 미(美)'를 타고났다는 사실을.



 승진 대신 나는 스스로를 더욱 칭찬하기로 했다. 개인의 부족함이든, 구조적 문제든 조직에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나는 충분히 멋진 사람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사회복지사로, 직장인으로, 작가로, 부모로 여러 포지션을 책임감 있게 잘 해내고 있다. 그것이 정신승리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본인이 가진 장점을 숨차게 읊다보면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존감을 세우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다. 우울했던 겨울을 딛고 상쾌한 봄을 맞이하자. 갈 길이 천리같은 우리네 인생, 고작 승진 따위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 지하철 1,5호선 신길역에서 두 발을 붙잡은 시 한 편. 나, 언젠가 이렇게 옹골진 열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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