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P 그림검사라는 것이 있다. 집(House), 나무(Tree), 사람(Person) 그림으로 아이의 내면을 알아보는 심리 검사 방법이다. 그림으로 아이의 내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투사검사라고도 한다. HTP 그림검사는 아이가 보이는 행동의 원인을 찾을 때, 유용하다. 학기 초, 아이들과 만나면 일정 기간 적응기를 가진다. 이 기간 동안 교사는 아이들을 관찰하고, 대화를 나누면서 개인적 성향을 파악한다. 이때 아이들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HTP 그림검사를 병행하면 효과적이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자신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 가정생활이 드러나고 현재의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그림 자체가 아이들의 내면을 비춰주기도 하지만, 그림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면 깊숙이 감춰져 있던 아이의 마음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
준수는 다소 부정적인 성향을 가진 아이다. 친구와의 사소한 갈등에도 자기만 피해를 입었다며 억울함을 표출한다. 너무 억울하여 쉽게 풀리지 않을 정도다. 마치 세상에 자기편은 아무도 없는 듯한 우울한 표정이 된다. 책상에 엎드려 눈물을 훌쩍일 때도 있다. 눈물을 닦으면서 처량한 눈빛으로 흘깃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마치 빨리 와서 달래 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준수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면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나는 준수의 내면이 궁금했다. HTP 그림 검사를 이용했다. 그중에서 준수가 그린 집을 두고 대화를 나눠 보았다.
“준수가 그림을 잘 그렸네. 여기에 누가 살고 있어?”
“엄마, 아빠, 형, 그리고 나요. 우리 집이에요.”
“그렇구나. 혹시, 집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지?”
“음...... 엄마, 아빠 싸우는 소리요.”
“아, 그렇구나. 혹시, 엄마가 아빠한테 뭐라고 말씀하셔?”
“아빠가 없어졌으면 좋겠대요.”
아이는 부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의 부모 양육 방식과 태도는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아이는 부모의 어휘, 말투, 행동, 사고방식 등과 같은 것을 모방하고 학습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은 아이의 1차적 사회화 공간이 된다. 아이는 가정에서 습득한 말과 행동을 가지고 공식적 교육 기관인 학교에 간다. 학교는 각 가정의 이질적 문화를 가진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다. 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아이들의 이질적 문화가 섞여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낸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독특한 현상을 만드는 데 작용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말과 행동은 가정생활을 투사해 준다.
앞서 등장한 준수의 말 속에서도 가정생활이 드러난다. 그리고 준수의 말속에 등장한 부부싸움과 엄마와 아빠에 대한 감정 상태를 통해 가정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준수와 함께 나눈 대화에는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이 자주 등장하곤 했다. 아침부터 우울한 준수의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면 엄마, 아빠의 다툼이 원인이었음을 알게 된 경우가 있다. 그런데 준수 기분은 특별한 화학 변화를 일으키는 기체 같았다. 넓은 범위로 확산하여 다른 친구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원만하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도 대결 구도로 만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친구 동호와의 일화가 있다. 그 날도 준수는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동호는 준수가 앉아 있는 의자를 실수로 발로 차며 지나갔다. 준수는 동호의 실수를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왜 발로 차고 가냐며 신경이 예민해져 날을 세웠다. 동호가 자신의 실수임을 알고 사과를 해도 준수는 쉽게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새다. “네가 일부러 차고 갔잖아!”라는 말을 덧붙이며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갔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까지 한 동호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동호의 얼굴에도 미안한 표정은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싸움의 원인이 되었다.
인간의 감정은 전이된다.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동의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속성을 고려할 때, 한 사람의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유기적 사회 관계망 속에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때로는 타인에게 영향을 주고 때로는 타인의 영향을 받는다. 이런 맥락에서 준수가 동호와 싸우게 된 원인도 유기적 관계의 거시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동호의 실수를 허용할 수 있는 마음을 만들지 못한 준수 행동의 원인은 준수 엄마 아빠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부정적 부부관계는 아이의 정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확률이 높다. 아이는 가정에서 부모의 갈등 해결 방법을 자연스럽게 학습한다. 엄마와 아빠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와 타협의 방법으로 접근했다면 아이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보고 배운 경험의 효과 때문이다. 그런데 갈등의 원인을 서로의 탓으로만 돌린 채 험악한 분위기로 몰아간다면 아이도 유사한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동일한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어쩌면 준수는 자신이 배운 갈등 해결 방법을 동호에게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가정에서의 부부싸움은 아이의 정서적 불안을 유발한다. 감정이 격해지고 갈등이 심화되는 분위기에서 아이의 심리는 불안해진다. 심리 상태가 불안하면 인간 유기체는 안정을 추구한다. 그런데 부부싸움으로 심리가 불안한 아이는 안정을 찾는 방법에서 문제가 생긴다.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 똑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려 든다. 결국, 해결 방법으로 공격성을 취한다. 공격성의 유형도 학습한 대로 구분된다. 거친 말로 상처를 주는 유형이 있는가 하면 주변의 물건을 집어 던지며 자신의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유형이 있다. 심한 경우 신체 폭력이 수반되기도 한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보면 가정생활이 보인다. 그렇기에 아이는 부모의 거울과 같다.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명심할 것이 있다. 아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가정의 정서 온도를 따뜻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부부싸움도 아이 앞에서는 피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감정만 앞세운 격한 부부싸움은 아이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더불어, 학교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서가 불안한 아이들을 가정교육 탓으로만 돌렸던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아이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문제 행동의 이면에 숨어 있는 원인을 파악한 후 교육적으로 치유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가정과 학교가 협력하면 더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