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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살이 1700 여일 중입니다.

by 챠오벨라

AM 6:30

휴대폰에 알람이 울린다. 아이폰의 가장 기본 알람음, 레이저만큼 적당히 거슬리면서 효과적인 알람음은 없는 것 같다.

암막커튼을 쳐두어 어둑한 침실에서 내 베개까지 머리를 침범한 8년째 동침자인 딸아이의 말랑말랑한 뱃살을 어루만지며 잠을 깨워본다.

얼추 딸의 의식이 들어오는 게 느껴지면 머리 맡을 더듬어보는데, 이제 식구가 된 지 두 달째가 되어가는 고양이의 발이 느껴진다.

내가 만지는 손길에 금세 고로롱 고로롱 골골 송을 들려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리고 또 더듬어보면 알람이 울리던 아이폰과 다른 큰 그립톡의 또 다른 아이폰 한 대가 만져진다.

손에 두 대의 휴대폰을 들고 알림 창을 확인하니 간 밤에 있던 일들이 쭉 뜬다.


휴대폰을 두 대나 갖고 있는 30대의 아이를 둔 여자라니, 꽤 잘 나가는 사람인가 보다 싶지만 나는 이미 5년 전에 사회생활을 그만두었다.

남편의 회사 일 때문에 해외생활을 한지가 5년째..

어쩌다 보니 나는 한국의 뉴스를 짧게는 6시간 길게는 8시간도 늦게 확인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어서, 나는 해외에서 지내는 지난 5년 동안 다른 사람들에 비해 비교적 적응을 잘하는 편이다.

체류하는 국가들이 영어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이 학교도 그렇고 병원 진료가 필요하거나 중요한 일을 볼 때는 기본적으로 쓰는 언어가 영어다 보니,

남편 없이도 내가 다 일을 진행할 수 있어서 남편은 회사일에만 집중을 잘 할 수가 있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 나는 꽤나 해외생활에 적합한 팀워크를 가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라가 아니다 보니, 때로는 현지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순간도 있고 오역이 있어

늘 구글 번역기 앱을 휴대폰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두고 말없이 내 의사를 문자로 쳐서 번역기를 돌려 의사전달을 해야 하는

누가 보면 저 여자가 마치 청각과 언어 장애가 있는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타인이 오해하기 좋은 순간들도 종종 있다.


결혼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중에 몇 년은 해외살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내 아이가 한국어가 아닌 영어를 모국어처럼 생각하고 쓰게 될 줄도 몰랐고

그로 인해 세대차이 그 이상 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화적 차이를 남편과 내가 아이랑 겪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해외에 살면서 내 집에 갇혀 몇 달을 신발을 신고 나갈 일이 없을 줄도 몰랐고,

전세기를 타게 될 줄도 몰랐으며 그로 인해 나와 아이가 모자이크 처리가 된 채 뉴스와 인터넷 기사로 박제가 되어 돌게 될 줄도 몰랐다.

하지만 이건 지금까지 그냥 약간 매운맛 수준이고…

전쟁 국가에 살게 될 줄도 몰랐으며, 그로 인해 내가 당연하게 소비하고 사용하는 물건들을 구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해외 살이 5년 중에 외교부의 단계별 여행경보 안내를 2.5단계 이하로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던 그런 파란만장한 날들이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