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회고록-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이유

21년 11월 6일

by 오순영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을 보지 않을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글을 또 쓰게 되었습니다. 마스크 이제 벗어야 합니다. 벗어야 하는 이유까지 써야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첫째는 마스크 효과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마스크가 매우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국민이 전부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데도 끼지 않는 국가들보다 코로나 감염률이 현저히 낮지 않습니다. 마스크 효과에 관한 논문을 숱하게 찾아보아도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효과가 있다는 논문만큼이나 없다는 논문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스크의 효과 측정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왜냐면 실험군과 대조군에게 똑같은 양의 바이러스를 노출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고, 사람들마다 생활 습관이 다르고, 개인의 면역력이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논문마다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효과가 불분명한 것으로 의무화하는 부당합니다.


의무화가 정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효과가 분명하게 있다고 입증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당한 것에 사람들이 복종하게 되면 반드시 생기게 되는 것이 의심입니다. 여러분은 이 불편한 것을 모든 국민이 착용하고 다니는데 대체 왜 감염자는 줄지 않는 거냐고 의심하고 있을 겁니다. 더구나 백신까지 국민 70%가 접종했는데도 말입니다. 백신이나 마스크가 효과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런 의심은 마음에 부담을 주고, 부담은 고통스럽기에 의심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으려고 하게 됩니다. 그렇게 마음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의심을 자꾸 무시하고 당국의 명령에 복종하게 되면 점차 비굴한 인간이 되어 갑니다. 국민 전체가 비굴해지면 민족이 나약해지고, 나약해지면 타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개인적 이익, 당장의 이익을 탐하게 되고, 국가 전체의 불이익을 외면하게 되며, 먼 미래의 더 큰 이익을 잃게 돼 버립니다.



두 번째는 마스크가 건강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장기적으로 마스크를 쓰면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는 밀폐된 공간에서 매일, 그리고 종일 일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여러분은 코와 입을 막고 눈만 내놓고 살고 있습니다. 밀폐된 공간을 얼굴에 부착하고 사는 것입니다. 특히 심장, 폐가 허약하신 분은 장시간에 걸쳐 서서히 산소 공급을 감소시켜서 몸에 이산화탄소를 축적시켜서, 만성적인 피로, 집중력 저하, 짜증, 스트레스, 예민함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심폐질환을 악화시켜 심근경색증,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특히 발육이 아직 덜된 어린아이에게는 장기적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니 마스크를 장시간 쓰지 않도록 잘 교육시켜야 합니다.



세 번째는 얼굴은 의사소통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왜 동물의 얼굴에는 털이 있는데 인간만 없는 줄 아십니까? 물론 수염이 있긴 하지만 얼굴 표정을 볼 수 있는 곳에만 털이 나지 않도록 진화했습니다. 얼굴을 보면서 표정을 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얼굴은 사람을 구분하는 첫 단계고, 상대의 기분, 감정, 성격, 인품, 학식, 건강, 과거와 미래의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얼굴은 만남에서 시작해서, 우정, 사랑이 이루어지는 최초의 시각적 대상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는 부모를 비롯해 여러 사람의 표정을 읽으면서 뇌가 성장해 갑니다. 그런 얼굴을 가리고 다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네 번째는 선택의 자유를 박탈하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자유는 가장 중요한 자유입니다. 이 자유가 박탈되면 자유민주주의는 사라지고 맙니다. 전염병이 창궐해도, 혹은 그보다 더한 전쟁이 터져도 선택의 자유는 최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선택의 자유를 잃게 되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경제적 자유도, 말할 자유도, 모일 자유도, 정치적 발언을 할 자유도, 시위를 할 자유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선택의 자유는 그 밖의 모든 자유를 잃게 만드는 도화선입니다. 선택의 자유를 잃으면 의지마저 생겨나지 않게 만듭니다. 여러분이 근 2년 동안이나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쓰고 있는 것은 마스크가 여러분에게서 저항할 의지마저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마스크 쓰는 것도 선택할 자유라고 항변하는 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분도 마찬가지로 선택할 자유로 쓰지 않은 것이니 존중해 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섯째는 다른 나라에서는 벗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와 우리나라는 다르다, 혹은 다른 나라가 벗는다고 따라 하면 되겠냐고 반문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다른 나라가 벗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태도입니다. 마스크 벗고 자유롭게 다니는 국가를 한국과 차원이 다른 별개의 세계로 인식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TV 스포츠 중계에서 거리 두기도 마스크 착용도 하지 않고 코로나 이전과 똑같이 수만 명이 운집해 열광하는 장면을 보아도 한국인은 무감각합니다. 왜 서양의 나라는 되고, 한국은 안 되는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고의 부재도 문제지만, 우리나라를 마스크를 써야 하는 팔자라고 단정하는 운명론적, 혹은 결정론적 사고를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독재자가 출현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는 코로나가 그리 위험한 병이 아니고, 잘 걸리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문정권의 공포조장에 속고 있습니다. 매일 확진자가 수천 명 나왔다는 뉴스에 겁을 먹고 있습니다. 저는 반평생을 의사로 환자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환자로부터 병이 옮아 본 적이 없습니다. 병에 걸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에 여유를 갖기 바랍니다.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셔야 합니다. 그 강박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코로나는 건강한 사람은 99% 걸려도 치유가 잘되는 병이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걱정과, 여러분의 강박이 코로나보다 더 나라를 병들게 하고 있음을 알기 바랍니다.



일곱 번째는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면 사람이 옹졸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분명 마스크 쓰는 것을 귀찮고 불편하게 생각할 겁니다. 빨리 벗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의 시선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대범하지 못하고 옹졸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고 오랫동안 살다 보니 배짱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신의 선택과 주관으로 살아오지 못하고 남의 평판과 판단에 의존하여 살아왔습니다. 남의 시선과 판단에서 자신을 해방시켜 보십시오. 여러분은 세월호의 학생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판단대로 살아야 할 존엄한 존재입니다.



여덟 번째는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 경직되어 살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유머, 관용, 이해, 친절, 사생활과 개성의 존중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국민은 지금 사회를 부드럽게 하고 계층 간의 갈등을 풀어주고 화해를 하게 만드는 이 중요한 윤활제들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마스크 벗은 사람을 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윤활제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위로부터의 통제가 별로 필요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통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홉 번째는 획일화되면 나라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국가가 발전하는 원천은 국민 각자의 독창성과 개성, 그리고 다양성입니다. 이것이 사라지면 발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왜 서양이 세계의 문명을 지배하게 됐는지 아십니까? 왜 그들에게서 독창적인 발상, 철학, 발명, 예술, 위대한 발견이 생겼는지 아십니까? 사회가 획일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받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처럼 이렇게 마스크로 얼굴을 없는 세상이 되어 천편일률적으로 획일화가 된다면 어떻게 인류 문명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위대한 발상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남과 다른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마스크 벗어 획일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열 번째, 자유주의자로서 전체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개인을 전체의 부속으로 보는 것이 전체주의입니다. 전체주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이 있었고, 대학살을 초래했습니다. 전체주의는 가장 사악한 자가 최고의 권력을 잡습니다. 개인의 개성, 특성, 권리, 자유, 재산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전체주의가 지향하는 목적에 따라 생각하도록 세뇌하고 교육하므로 생각의 자유까지 빼앗습니다. 국민은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국가의 감시와 통제에 따르고, 명령에 동의하게 됩니다.


집단면역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전체주의 악령이 부활한 듯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습니다. 집단면역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살육이 떠올랐습니다. 전염병이 생긴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집단을 강제로 이주시키기도 했고, 낙태 거세 불임수술까지 저질렀습니다. 우생학, 사회다윈주의를 신봉하던 히틀러,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인간을 얼마든지 개조할 수 있다는 공산주의도 떠올랐습니다. 구제역에 걸린 돼지를 살처분하다가 죽지 않은 돼지까지 산채로 파묻던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무엇이든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일은 인류에 해가 되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주의 같은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자들이 그런 말을 할 때는 정말로 조심해야 합니다.






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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