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가면을 쓴 정치폭력

(왕과 사는 남자)

by 오순영



조선왕가의 여러 비극 중에서 단종과 사도세자의 죽음이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그들이 어린 나이에 죽은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연민은 어린 나이에 죽었을수록, 죽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가 클수록 커지는데, 이것은 비극을 통해 치유받고자 하는 대중의 심리를 가장 크게 자극한다. 하여 지금까지 여러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되어 인기를 끌었다. 필자가 대학 다닐 때 MBC TV의 “설중매”가 대단히 인기가 있었다. 당시 칠삭둥이 한명회 역할을 한 정진 배우는 왜소한 외모로 세조의 책사 한명회 역할을 너무나 잘해서 인기가 많았다.


단종, 사도세자 죽음의 서사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나 리처드 3세만큼 비극적이고, 대학 시절 본 드라마의 추억도 떠오르고, 관객 수도 천만을 돌파했다고 해서 ‘왕과 사는 남자’를 보기 위해 한동안 가지 않았던 극장에 가게 되었다. ‘왕과 사는 남자’라는 제목이 ‘왕의 남자’를 분명 표절한 것이라, 제목부터 표절이니 가치 없는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이 그런 생각을 덮어버렸다.

극장에 도착해 보니 예상과 다르게 한산했다. 천만 영화라면 사람들이 가득해야 정상인데, 코로나 시기와 별 차이가 없었다. 최근 뉴스에 관객이 천육백만을 돌파했다고 하는데 이는 잠실야구장이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만석이어야 가능한 수치다. ‘이렇게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천만이 넘었는지 이상하네.’라고 아내가 한 마디 하였는데 ‘그러게’라는 말이 필자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왔다. 선동과 조작이 많은 시기에는 ‘의심’이 자연스럽다.


영화는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판타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이야기, 시공을 뛰어넘어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디테일한 세트와 소품, 의상과 분장이 있어야 한다. 천만 영화고, 조선왕조 최고의 비극을 그린 영화이기에 기대와 흥분으로 막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는 막이 오르자마자 바로 무너졌다. 세트는 엉성했고 소품과 의상은 조잡했으며, 대사는 저질스러웠고, 촬영기법과 스토리의 전개는 60년대 영화를 보는 듯 상투적이고 구태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세계적 수준에서 한참 떨어지는 조잡한 호랑이 CG을 관객에 보여준 뻔뻔함이었다. 일회용으로 급조된 티가 역력한 싸구려 소품과 세트는 급하게 만들어 개봉해야 하는 어떤 사정이 있는 것만 같았다.


엄홍도가 단종의 목에 줄을 걸어 문 밖에서 잡아당기는 마지막 장면과 목이 졸릴 때 나는 기분 나쁜 효과음에서 불쾌감은 최고조가 되었다. 그것은 자살과 살인을 미화한 범죄의 장면이었다. 단종은 세조가 보낸 사약을 받거나 교살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이를 왜곡하여 마을 사람을 위한 숭고한 자살로 만들고, 엄홍도를 자살을 결심한 권력 잃은 왕을 도운 의인으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자살방조를 넘어선 촉탁승낙 살인의 범죄였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중에 저질러졌으므로 공개처형이었다. 그제야 영화가 왜 그렇게 조잡하고 급조된 티가 역력했는지 알게 되었다.


메시지만을 전달하면 되는 모든 프로파간다 영화는 예술성과 완성도가 결여되어있다. 예술성과 영화적 완성도는 오히려 메시지 전달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예술성과 영화적 완성도를 생략해 버렸다.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단종 복귀를 도모한 사육신을 모두 죽이고 단종을 유배지에 보내 사약을 내려 죽인 숙부 세조는 가해자고 조카 단종은 피해자다. 그러나 단종이 마을사람을 위해 자살한 것으로 왜곡하였으니 이는 권력을 무도하게 차지한 패륜의 가해자 세조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문 밖에서 줄을 당기는 끔찍한 살인 행위가 의롭고 충성스러운 행위로 포장되었으니 이는 권력을 잃은 사람은 ‘살인’을 해도 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게 만드는 동시에 살인에 대한 거부감을 약화시킬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선동이다.


단종이 남겨진 사람을 위해 자살의 결단을 내리는 것을 명예롭고 유일한 해결책으로 묘사하는 것은 현재 권력을 잃고 감옥에 갇힌 전직 대통령에게 자살을 종용하는 무언의 압박이자 암시가 될 수 있다. 자살을 돕는 엄홍도라는 캐릭터를 충성심 강하고 순박한 주인공으로 만들어 포장하는 것은 실제 그런 일이 현실에 발생했을 경우 대중이 느낄 충격과 분노를 미리 차단하는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자살을 돕거나 방조하는 비겁한 정치인들은 배신자, 살인자가 아닌 의인 엄홍도가 되어 죄책감과 대중의 질타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왕과 사는 남자는 25년 3월에 촬영을 시작해서 3개월 만에 마쳤는데 상업 영화 제작 기간이 평균 2-3년인 것에 비하면 급조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26년 2월 윤대통령 내란 재판이 한창이던 때에 개봉되었다. 윤대통령은 2월 19일 내란우두머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국민의 무의식 속에 암시를 삽입하는 프로파간다 영화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관객수 조작이다. 대표적인 조작수법은 관객수를 과장하여 발표하여 더 많은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이다. 이를 ‘밴드웨건 효과’라고 한다. 경제학자 하비 라이벤스타인은 1950년 자신의 논문에서 '밴드웨건 효과'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특정 상품을 많이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로 영향을 주어 사람들이 너도나도 그 물건을 구매하게 되는 현상, 다른 사람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할 것 같다는 소외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여 구매를 자극하는 것을 말한다. 그 밖에 학교나 공공기관의 단체 관람, 한 사람이 많은 표를 구매하는 것과, 전산 조작. 전국 상영관 스크린을 독점하는 방법이 있다. 둘째는 감정의 과잉을 유발하는 것이다. 논리적인 설명보다. 분노 슬픔 민족주의를 극단적으로 자극한다. 셋째는 예술성의 결여다. 빨리 정치적으로 원하는 메시지를 대중 무의식에 삽입해야 하기 때문에 디테일이 부족하고 조잡하다. 넷째는 흑백 논리다. 상대편 악, 우리 편은 선으로 규정하는데, 이것을 위해서는 역사를 왜곡하여 특정인을 미화하거나 비하한다.


프로파간다 영화는 관객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격정, 슬픔, 분노 등 감정을 자극한다. 대중을 비이성의 상태로 만들어 무의식 속에 암시를 삽입한다. 그것은 일종의 선행 학습의 역할을 하는데 앞으로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무의식에 삽입된 암시대로 행동하게 만든다.


관객, 영화인은 정신 차려야 한다. 관객은 감정의 자극에서 이성을 보호해야 하고 이면에 있는 의도를 꿰뚫어 볼 줄 알아야 한다. 영화인은 인기와 돈의 유혹, 정치적 압력과 강제에 따르는 것이 자신의 타고난 예술적 재능을 스스로 없애 예술가로서의 삶을 조기에 마감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몇 세대에 걸쳐 높이 평가받는 위대한 작품들은 모두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성을 추구한 작품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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