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아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동생들을 잘 봐서인지 엄마는 인아에게 노란 인어공주가 크게 그려진 책가방을 사주었다. 전교생 삼천 명 넘는 학생, 한 학급 70명(베이비붐 시대) 중에서 책가방을 든 사람은 인아뿐이었다. 그 당시는 전부 보자기에 책을 넣고 보자기를 둘둘 싸서 허리춤에 메고 다녔다. 친구들은 인아의 가방을 서로 한 번씩 들어 보고 싶다고 욕망했고, 인아는 책보자기 가방을 메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보자기와 책가방을 바꾸어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했다.
인아의 친구는 노란 인어 공주 가방을 바꾸어 들고 가서 며칠이 지나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 친구 집의 언니들이 다 들어 보고 준다고 하는 것이다. 인아는 그때 아무런 말을 못 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돌아온 인아의 가방은 노란색이 아닌 것 같았고 손잡이는 검은색이 막 묻어 있었고 손잡이도 한쪽이 빠져 있었는데 그날도 인아는 그 친구에게 아무런 말을 못 하였다. 사 준지 한 달도 되지 않아 가방 손잡이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인아 엄마는 인아를 나무랐다.
"물건을 소중히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은 그것을 사용할 가치가 없다." 는 것이었다.
인아는 억울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빌려 주었다는 말을 하진 않았다. 또 끝없이 펼쳐지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떨 때에는 엄마는 인아가 바쁘게 집안일을 다 했는데도 오후 무렵이면 불러 앉혀 놓고 부르는 것을 받아 적게 했다. 일명 ‘받아쓰기’였다.
“ 사람이면 다 사람이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응~”라는 것이었다.
인아는 공책에다 연필로 받아 적는 동안 인아 자신도 모르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사람이어야 하는데 뭘 잘못했는지를.....’
또 인아 엄마는 빠르게 부르는 것이었다.
“죽으면 썩어질 몸, 아껴서 무엇하랴 ” 또 이러는 것이다.
인아는 또 받아 적으면서 성찰 한다. ‘내가 몸을 아끼면서 안 한 게 있었나? 뭐지?
나에게 하는 말인가? 아닌가? '
인아는 자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지금 받아 적고 있는 것을 보니 자신인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기만 하였다.
인아는 뭘 잘못했는지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밤중이라도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어두운 골목을 지나 겁이 나는 길이어도 다녀왔고, 겁나는 구간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달리다가 발목을 사정없이 접질리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달리다가 과부하가 걸려 몸이 통제가 안 되어 전봇대에 부딪친 적도 있었다.
어떨 땐 동생이 이불에 오줌을 싸도 인아가 맞았다. '오줌은 동생이 쌌는데 왜 ? '
물었다간 말대꾸 한다고 난리가 날 것이고, 동생 잘 돌보지 않고 뭐 했냐는 식으로 나무람이 전개될 게 뻔하니까.
어쩌면 엄마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엄마가 없을 때는 인아가 동생들의 보호자이니 보호의 의무를 부실하게 한 것은 잘못인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엄마는 인아에게 무책임한 것을 탓했고 인아는 장날에 사 온 수수 빗자루로 맞은 적이 있다.
안방 모서리로 뒷걸음질 치며 맨살에 후려내리치는 맛은 모르겠으나 그 빗자루를 맞는 맛이란 아프다기보다 맞고 난 뒤에 올라오는 현상이 더 성가렸다. 산모기에 물린 듯 벌겋게 살이 부어올라 여름 맨살에 나시를 입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인아는 설움에 겨워 울면서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자고 일어나면 눈의 쌍꺼풀은 온 데 간 데 없고 퉁퉁 부어서 학교에 가기가 창피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학교 결석을 했다가는 또 난리가 날 것이니 가야 하는데, 거울을 보니 거울 속에는 인아가 아닌 낯선 아이가 서 있다.
친구들이 ‘ 너 눈이 왜 그렇냐?’ 라고 물으면 대답할 것이 없어 더 걱정이 된다. 늘 쌍꺼풀진 인아의 두 눈은 쌍꺼풀 사라진 짝짝이 눈이 되어 있는 날이 비일비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