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14)

사라지는 존재들

by 정현

아빠.

엄마가 경주에 왔어요. 매달 엄마는 나에게 와서 일주일정도씩 머물다 가세요. 겨우내 기운 없던 엄마께 어떻게 힘을 실어 드릴 수 있을까.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엄마와 똘이를 태워 경주로 왔어요. 함안으로 가는 길이 정겹고 좋아요. 언젠가 함안 구석구석을 다녀보고 싶어요. 경주도 좋지만 함안도 좋아요. 나와는 반대로 엄마는 경주가 더 좋데요.


어제는 엄마와 불국사에 갔어요. 김밥을 사들고 가자는 엄마의 요청에 김밥가게에도 들렀어요. 아직은 쌀쌀한 겨울날이에요. 불국사를 걷고 약수를 마시고 또 걷다 둘이서 사진도 찍고요.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다원에서 대추차를 마셨어요. 불국사에 핀 매화가 너무 예뻐 사진을 찍었는데, 문득 어렸을 적에 엄마가 그림 그려주던 때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매화를 그려달라고 했어요. 그림을 못 그린다 하면서도 엄마는 매화 두 송이를 그려주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엄마를 한참 바라보았어요. ’엄마는 언제까지 내 곁에 계실까?‘하면서요...




오늘 아침엔 엄마와 석굴암 산책을 했어요. 어제보다 더 추운 날. 털모자를 쓰고 석굴암 산책로를 걸었어요. 우리 집 앞 토함산 중턱에 있는 석굴암. 마음만 먹으면 매일도 갈 수 있지만 엄마와 몇 번 더 오게 될까를 떠올렸어요.


저녁에는 은유와 엄마와 목욕을 갔어요. 엄마와 은유는 언젠가부터 목욕탕 콤비예요. 앉아서 때를 밀다가 냉탕에서 웃어대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어요. 엄마가 기둥에 가려졌다가 다시 은유 앞으로 나타났다가 또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어요.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그 순간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는 거예요. 언젠가 저렇게 엄마가 사라지겠지. 아빠처럼 내 눈앞에서 사라질 테지하는 생각에 너무나 슬펐어요.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겠지요. 죽지 않을 것처럼 살지만,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살기도 하고, 서로를 등지고 살기도 하지만 모두 다 언젠가는 사라져 없어진다는 사실... 죽음은 슬프기만 한 걸까요? 언제 죽어도 괜찮은 마음으로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아빠. 엄마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목소리 톤을 조금 더 높여요. 그러면 엄마가 더 힘을 낼 것 같아서요. 요 며칠 엄마와 있으며 조금은 울적한 생각들을 했지만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 좀 가볍고 밝게 생각해 보려고 해요.

나는 내 곁의 존재들에게 더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우리 모두 사라질 테지만 영원을 꿈꾸는 현재를 살면 좋겠어요. 현재를 영원처럼 살면 좋겠어요.





엄마에게 토마토모양 노트를 사드렸어요. 엄마가 다시 일기를 쓰면 좋겠어요. 오늘 석굴암에서 타종을 하던 엄마는 매일 기쁘고 즐겁게 살고 싶다하셨어요. 현존의 기쁨. 그 속에서 엄마가 다시 꽃 피우길 나는 기도해요.

꽃처럼 피어나는 엄마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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