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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r 11. 2024

자연이 내게 가르쳐 준 것

가르치지 않는 스승



(생태환경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 281호에 실린 글입니다.)


뜨거운 나라에서 살고 있다.

지난 몇 해 경주에서 지내다가 지금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살고 있다.  어쩌다 보니 중동에서 하루하루 지내는 중이다.

경주 살 때엔 매일 마주하던 울창한 숲과 나무, 시원한 바람을 잘 볼 수 없는 나날을 보내던 중 책장 깊숙이 꽂힌 책 ‘월든’을 다시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살던 곳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탓일까? 월든을 읽으며 눈물을 훔치는 순간이 많았다.

친구들이 들으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리웠던 것은 다름 아닌 나무와 꽃, 새소리와 바람 냄새 같은 것이었다. 감각으로 기억되는 것들이 그리웠다.

경주에서 기후 위기를 외치던 지난 몇 해.. 내 인생의 가장 뜨거운 시절을 보내고서는 더욱 뜨거운 나라로 삶터를 옮겨 왔다.

지난 몇 년은 자연을 ‘지켜내어야 할 존재’로 여기며 여러 외침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얼떨결에 날아온 이 나라는 생태, 자연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아부다비에 와서 몇 개월간은 40도를 웃도는 기온 탓에 외출이 힘든 생활을 했기에 자연과 격리 되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였을까? 월든이라는 책으로라도 다시금 자연과 연결되고 싶었다.

소로우가 월든 호수의 새와 동물의 소리,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 할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글로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을 확실히 깨어준 책. 눈으로 읽던 월든을 다시 한 번 가슴으로 읽게 되었다.

책을 읽다 어떤 날은 집 앞 바닷가에 가 앉았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를 흐르는 페르시아만. 그 해변가에 앉아 있으니 여기가 부산 앞바다인지 아부다비의 바닷가인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대자연 앞에 멈춰 있는 순간은 그저 그렇게 멍해진다. 수평선 너머 지는 해를 보며 ‘저 해를 한국 친구들도 보고 있겠지?’ 하고 미소 짓기도 했다.

가라앉는 태양의 모습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시간과 공간이 무색해지는 순간. .. ‘오늘도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구나!’ 하며 성실한 지구에게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어느 날은 월든 책을 겨드랑이에 끼고 맹그로브 숲을 찾았다,

이제는 나의 아지트가 된 맹그로브 숲.. 바닷물을 양분 삼아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수면 밖 공기를 정화 시키는 일을 한다는 맹그로브 나무들.

이글거리는 태양과 짠 바닷물도 맹그로브의 생명력을 막을 수는 없나보다. 맹그로브는 다른 식물들과는 다르게 살아남기로 마음먹고 진화했구나 싶었다.

맑은 바닷물 속 수도 없이 줄지어 있는 맹그로브 나무들...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 주변에는 게와 작은 물고기들이 뭐가 그리 바쁜지 열심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자연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 할 일을 잘도 한다.

숲의 전망대에 올라 발 아래 맹그로브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옆을 보니 조금씩 더 높아져 가는 공사 현장 건축물들이 보였다. 우리는 자연과 공존하며 끊임없이 자연을 이용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어쩌면 자연이란 건 그저 인간이 착취,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인 것처럼... 우리는 땅을 자본(돈)으로 보게 된 지 한참 오래되었다.

땅 위에 발을 딛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듯 하지만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더 높이 올라 마치 우리가 그들을 다스리는 주인처럼 살고 있구나. 발 아래에 나무들을 보며 든 생각들...

 

이곳에서 지내며 나에게 영감을 준 장소가 또 있다.

광활한 사막!

자전거를 타고 사막을 달렸던 날이 떠오른다. 달릴 수록 대기의 온도와 비슷해 지는 체온을 느끼며 뜨거운 맛을 본 날을 잊지 못한다. 겁도 없이 무작정 나갔다가 하루 꼬박 열사병 같은 증상으로 아팠던 사막 첫 경험.

반면, 시간이 흘러 시원해질 무렵에 다시 찾은 사막은 더 없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난생 처음 사막 언덕에 올라 앉았던 날. 굴곡진 사막 언덕은 해변의 파도를 생각나게 했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던 파도의 곡선, 그 일렁임을 닮은 사막 모래의 그루브...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고 했던 바르셀로나의 건축가 가우디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자연이 만들어 낸 것들은 죄다 곡선이다. 부드러운 사막 언덕의 곡선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바람이 내 머리칼을 빗겨주었다. 그 순간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깊은 호흡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직선뿐인 건물 속에서 짧디 짧은 호흡으로 매일을 살았구나... 호흡이 짧다는 건 그만큼 긴장도가 높다는 것과 같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자연스레 깊은 호흡으로 이완하고 있는 나.

몸을 일으켜 저 멀리 모래 능선으로 시선을 옮겼다. 넓은 사막 한가운데 내가 점처럼 찍혀있었다.

대자연 속에서 그 광활함과 벅참의 순간에 느끼는 감동은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다. 말과 글의 한계에 부딪힐 때는 자연 속에 머물러 보자. 감각으로 느끼는 자연은 깊은 숨과 함께 고달프고 뜨거운 삶의 입김을 내뱉게 해준다. 내가 한참 생각에 빠져 있을 때에도 모래 언덕은 바람의 손길을 타고 파도처럼 흘러 내리고 있었다.

새삼 ‘자연스러움’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바람이 만들어 낸 곡선들.. 이것이 자연스러움이 아니면 그 무엇을 자연스럽다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저 바람의 손길에 맡겨둔 모래는 자연스럽다 못해 예술적이기 까지 하다. 매일 다른 모습을 하는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지난 몇 개월간 월든 속 소로우는 내게 자연과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책으로 자연을 만나야지 하다 슬며시 찾아간 바다와 사막, 맹그로브 숲은 내 맘의 호숫가에 여러 질문을 던졌다. ‘내 삶은 어떤 모양의 곡선을 그리고 있을까? 또 내 마음속 월든 호수는 어떠한 모습일까?’ 바람이 만진 사막 곡선처럼 부드러운 성품을 갖고 싶다. 넓고 깊고 깨끗한 마음 호수를 만들고 싶다.

‘나는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닌 자연의 일부일뿐... 한 부분으로 살아야지. 주인 행세하며 살지 말아야지.’하고 되뇌어본다.

매 순간 자연에서 배우고 있다.

뜨겁고 메마른 이 땅에서도 자연에게 배운다. 삶, 내 주위을 둘러싼 관계, 그리고 존재의 의미를...

아마도 자연은 가르친 적이 없다고 하겠지만 그 속에 머물다 보면 늘 깊은 성찰을 갖게 된다.

참 스승은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저 삶으로 보여주는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 아닐까? 보여주되 가르치지 않는 참스승. 그 자연에게 우리는 늘 배운다는 사실. 배움이란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사실.

이 한 가지 사실을 늘 잊지 않고 살아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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