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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리우다 Jul 04. 2024

행복, 그거 별거 아니다

“내가 혼자 다 할게. 누워 있어.”

남편이 유부초밥에 넣을 쇠고기를 볶는다. 밥솥에선 김이 오르고 있다. 창문을 여니, 끊임없이 비가 내리듯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삐리리~ 하고 맑은 울림으로 새소리가 아침을 깨우고 있다. 소나무 숲속의 공기가 부드럽게 내 피부를 적신다. 가깝게 내다보이는 높은 산등성이에서 햇살은 힘차게 뻗어 나오고 있다. 갑자기 감사함으로 마음이 차올랐다. 이런 게 행복이라는 건가?



나는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묵고 있는 호실은 산까치, 4인실이다. 5평 정도 되는 산장 안에는 방이 한 칸, 화장실 하나, 찬장과 주방 그릇들과 냉장고가 보인다. 문 앞에는 신발장이 있고 옆에 TV가 있고, 그리고 식탁과 이불장이 있다. 삶의 모든 것이 이 공간 안에서 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왜 방이 여러 개인 집이 필요하지? 옷장이 없구나. 대신 옷걸이가 있다. 아, 얼마나 많은 옷을 가지고 있어야 안심이 되는 걸까? 그저 내가 가진 것들을 쑤셔 넣느라 방이 몇 개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걸 정리해버리면 되지 않나? 이렇게 별 것 없어도 좋은걸!


산림욕장에 오기 전에 나는 앞으로 전세를 계속 살아야 할지? 아니면 이참에 집을 사야 할지? 아니면 계속 청약할 주택을 기다려야 할지를 생각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집을 사기 위하여 꼬박꼬박 저축하며 불어나는 돈을 보는 기쁨도 잠시, 코로나를 거치면서 갑자기 집값이 너무 올라버렸다. 내 집 없이 이곳저곳으로 이사 다닌 지가 벌써 15년이 되어 간다. 이제는 정착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된다.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프고 가슴은 답답했었는데 산림욕장으로 온 지 하루 만에 이렇게 기분이 바뀔 수 있다니......

아침 8:30분, 가리왕산 등산을 시작했다. 휴양림에서 정상까지는 6km. 이날만큼은 성공적으로 등산을 완수해야 했다. 그래야 내가 노래하던 설악산 대청봉을 오를 수 있다. 그 시험대에 서니 살짝 떨렸다. 산이 가팔랐다. 45° 넘는 경사면에 돌들이 많아서 주춤거리며 올라갔다.


“스적스적 걸어”


남편은 내게 그 말만 건네고 앞장서서 산을 오른다. ‘나를 따르라’는 듯이, 늘 앞서서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지 공간이 생겨도 함께 걸을 생각이 없다. 나는 전날 기타 연습하며 불렀던 아리랑이 생각나서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산을 올랐다.


천일굴

젊은 여인이 3년 동안 수도(修道)했다는 천일굴을 보며 저 안에서 어떻게 생활했을까? 생각하다 ‘단출하게 살아가는 게, 도 닦는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어은골 임도를 지나고 가리왕산 1.7km 부근에 이르니 무덤이 나타났다. 이 높은 산중까지 어떻게 관을 매고 왔을까? 그랬던 만큼 자손들은 잘 번성했을까? 장례 행렬이 상상이 안 가건만 웃자라는 풀 속에서 비석은 늠름하게 잘 버티고 있었다. 마항치 삼거리를 지나고 드디어 오른 정상에는 노란 민들레가 주인처럼 여럿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내려다보니 그저 산 아래 산이다.


가리왕산 무덤.                                  정상에서 본 모습.   


하산길, 정상에서 조금 내려와 바위에 앉아 유부초밥을 먹었다.

“당신이 준비해서 더 맛있네.”


내 말에 남편이 빙긋이 웃는다. 남편이 처음으로 설악산을 올랐던 날을 떠올렸다. 백담사에서 수렴동 계곡을 거쳐 봉정암을 지나 대청봉을 올랐단다.


“그 옛날에는 쌀과 감자, 김치 같은 부식재료에다 철심으로 된 텐트, 기타까지 둘러매고 등산을 했더랬어.”

얼마나 짐이 많았을까? 거기에다 카세트까지 챙겨 들고 노래를 들으며 등산했다니 흥얼대는 젊은이들이 눈앞에 떠올라 나도 따라 빙그레 웃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하산길이 더 힘들다. 참나무 군락이 여기저기 우거져있고 얼마나 낙엽이 쌓였던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푹 먼지가 올라오고 매끄러워서 잘 걸을 수가 없다. 겸손하게 마음을 모으고 발을 떼는 대도 자꾸 흔들거린다. 낙엽길을 지나고 나니 다음은 돌길이다. 경사가 너무 심해서 쉽게 발을 내디딜 수 없는 곳이 너무 많다. 언제면 이 길이 끝날까? 내 인생도 이제는 하산길인데 그 길도 이렇게 힘들 것인가? 아직은 아니지만 그럴 때가 오면 어쩌지? 할 수 없지, 그저 지금처럼 엉거주춤 한 발짝씩 내딛는 도리 밖에. 겨우 어렵사리 다 내려왔나? 싶게 도달한 곳은 산속의 임도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다시 1.5km 더 아래로 하산을 해야 한단다.



“우리 그냥 임도로 걷다가 지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가면 안 될까?”


내가 볼멘소리를 했더니 남편은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그런 소릴 한다며 한 마디로 잘랐다.

“그런 사람이 무슨 대청봉을 올라? 조금만 가면 되니까, 따라와.”


할 수 없이 다시 아리랑을 부르며 남편을 따라가는데 경사가 어마하다. 아이고 내가 왜 대청봉 얘길 꺼냈을꼬? 벌써 오후 4:30분이 되는데 이러다 산속에서 밤이 오는 건 아닐까? 어떤 곳은 길이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다리가 뻣뻣해졌다. 드디어 울음이 나왔다. 그래도 소리가 작아선지 남편은 앞서가기만 했다. 그 절벽같이 경사진 곳을 어떻게 다 내려왔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마을이 보이자, 남편은 차를 끌고 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라며 먼저 내려갔다. 동네 어귀에서 발을 뻗어 앉아 남편을 기다렸다. 오래지 않아 차가 도착했다. 함께 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산림욕장은 가까웠다. 걸어갔으면 무척 힘들었겠지만.


삼겹살을 굽고 맥주 한 캔과 소주 반병을 놓고 식탁에 앉았다. 밖은 어둠이 내렸고 주변에 있는 산장마다 불빛이 환하다. 단출한 방 안이 아늑하고 정겹게 다가왔다.


“수고했어. 이제 대청봉에 올라도 되겠네”


와, 드디어 설악산을 오르게 되는구나. 봉정암 근처에 있다는 그 대피소에서 자는 경험도 해보고. 흐흐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남편의 배려를 받으며 같이 산을 오르고 도시락과 더불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꿈꿀 수 있어서 참 행복했다. 행복 그거 별거 아니구나.     


그런데, 가리왕산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던진 말 한마디가 압권이다. 

‘근데, 우리 집을 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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