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속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대하여
〈신의주의 책방 – 5장〉
한국에 돌아온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해외에서의 상처와 혼란이
내 안에 어떤 문을 하나 열어놓은 것 같았다.
예전에는 상상만 하던 ‘재밌는 스무 대살의 나’로
처음 살아본 느낌이었다.
병원에 다시 들어가자
동기들도 많아지고
친해지는 사람도 생기고
매일매일 재미있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그리워하던 일상과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내 자리를 다시 찾은 것 같았다.
오랜만의 3교대는
피곤해도 희한하게 보람 있었다.
대학병원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은
예전처럼 나를 지치게만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다”라는 감각이
은근히 마음을 뜨겁게 했다.
그때만큼은 간호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었다.
겉으로는 매일 웃고 떠들었지만
내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과 빈틈이
조용히 생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더 깊이 마음을 열었다가
또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감정,
어디까지가 진짜 내 모습인지
헷갈리는 기분,
잠깐 행복해지는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스며드는 외로움.
즐거움과 불안이
얇은 막 하나 사이에 있는 것처럼
붙어 있었다.
〈신의주의 책방 – 6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끝났다
그 친구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웃으면서 말했다.
“한국 가면, 우리 이제 다시 보지 말자.”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말은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웃을 때마다,
그 문장이 농담처럼 반복됐다.
나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가볍게 툭툭 치이는 것 같은 상처를 받았다.
가벼운 말인데
가볍지 않았다.
귀국을 앞둔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피곤한 마음으로
지친 표정으로
그냥 이렇게 말했다.
“그래, 그러자.”
그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싸움도 없었고, 눈물도 없었다.
그저 대화가 끊겼고,
그게 끝이었다.
가만히 곱씹으면
참 이상한 끝이다.
이별을 선언한 것도 아니고,
마음을 털어놓은 것도 아니고,
화해를 시도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러자”라는 한마디가
우리를 끝내버렸다.
아무도 나를 붙잡지 않았고
아무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말 한 줄로 관계가 사라지는 경험을
스무 대살에 처음 해본 셈이다.
〈신의주의 책방 – 7장〉
나는 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고3 이후로 나는
한 문장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펼치는 일은 늘 미뤄졌고,
머리는 늘 피곤했고,
읽기 시작해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았다.
그저 공부를 떠난 채로 스무 대를 지나온,
그런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육아맘으로 살아간 지 1년쯤 되었을 때,
문득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SNS는 부질없는 광고와 감정 과잉의 글들뿐이고,
나의 하루는 내 것이 아닌 듯 흘러갔다.
그래서 조용히 탈퇴했다.
그 선택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SNS를 떠난 빈자리에
책이 들어왔다.
가볍게 읽어볼까 하고 집어 든 종이가
내 마음 어딘가를 다시 여는 느낌이었다.
그때부터 매일 독서를 시작했고,
진심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작년 12월, 어떤 모임에서
“육퇴 하고 뭐 하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
나는 그냥 웃기만 했고,
굳이 책 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오빠가
“얘 요즘 책 많이 읽어” 하고 대신 말해줬다.
그 순간이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그때 나는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 지
몇 달 되었던 시기였다.
육아에 지쳐 누워 있을 힘밖에 남지 않았던 시절,
나는 어떤 책을 읽었는지
도서 목록을 제대로 적지 못했다.
그저, 읽고 또 읽었다.
비록 꾸준하진 않지만
지난달부터 도서 목록을 조금씩 적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내 시간을
조금 더 오래 남겨두고 싶어서.
〈신의주의 책방 – 8장〉
내가 책과 밀당하게 된 사연
책과 다시 가까워진 시기,
그 여정에 거의 첫 번째로 떠오르는 책은
자청의 **〈역행자〉**였다.
육아로 지치고 정신이 흐릿하던 어느 날,
첫째가 유모차에서 깊이 잠든 틈을 타 카페에 앉아 책을 펼쳤다.
그런데 몇 장 읽자마자 숨이 가빠질 정도로 마음이 들썩였고,
눈에 쌍불이 켜진 채로 책을 훅 빨려들 듯 읽어 내려갔다.
거의 제자리에서 완독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부터였다.
“나도 바뀌고 싶다.”
“나도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나도 돈을 벌어보고 싶다.”
그런 생각들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 나를 유독 좋아해 주던 선배가
“언젠가 너 포텐 터져서 뭔가 크게 이룰 거야”
라고 말해주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 말을 별 감정 없이 들었던 것 같지만
〈역행자〉를 읽던 그날,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그 시작이 오늘일지도 몰라.”
최근에는 처음으로 혼자 공연을 보러 갔다.
고3 때 듣고 또 들었던 ‘허각’의 이름을
라이브 무대에서 직접 듣게 된 건 인생 첫 경험이었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목소리 하나로
사람들을 압도하는 장면을 보는데
짜릿함과 동시에 이상한 감정이 올라왔다.
잘하는 걸 하나 갖고 있다는 건
그걸로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너무 멋지고 부러운 일이었다.
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뭘 잘하지?”
“나는 무엇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평생 배우고 공부하며 버텨야만 하나?”
“나도 잘하는 한 가지로 살아갈 순 없을까?”
그날 이후,
내 안에서 아주 조용하지만 확실한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책과의 밀당도, 나를 다시 세상에 꺼내보려는 욕구도
그날부터 다시 깨어난 것 같았다.
〈신의주의 책방 – 9장〉
잘 읽지도 못한 책들이 방 한구석에 쌓였던 시절
〈역행자〉가 나를 흔든 뒤
나는 그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자청의 추천 도서를 포함해 백오십만 원어치,
서른 권이 넘는 책을 한꺼번에 사들였다.
돈, 뇌과학, 인간 본성, 행동경제학…
그 당시의 나는 “이제 공부해서 성공해야지”라는 열망으로
정말 숨도 안 쉬고 주문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자
나의 관심사는 빠르게 다른 곳으로 흩어졌다.
그때 그 열정은 마치
잠깐 불이 붙었다가 사라지는 불꽃같았다.
게다가 추천 도서들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전문 용어가 많고,
개념도 복잡하고,
육아로 지친 머리로 이해하기엔
자꾸 부담스러웠다.
어느 날 보니
그 책들이 방 한구석에서
자꾸만 눈에 밟혔다.
무겁고 크고, 청소할 때마다 걸리적거리고
나는 미니멀리스트라
“안 읽히는 책”이 집 안에 있는 게
마음에 계속 걸렸다.
결국 거의 무료 나눔 하다시피
책장을 비웠다.
읽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책들이지만
그때는 시원하기도 하고
아무렇지 않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를 알기 전에
“성공하려면 뭘 읽어야 하는지”를 먼저 찾던 사람이었다.
그 책들을 버린 일은
지금의 나에게
어쩌면 가장 솔직한 출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