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흔들리면서 자란다 (1편-1)

두 돌 아기를 키우며 다시 배우는 마음의 일기

by 신의주

〈신의주의 책방 – 1장〉

나에게 안전한 집이란

나에게 안전한 집이란,
20대에 꿈꾸던 화려한 미래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세상의 모든 길을 내 발로 걸어보고,
내 눈으로 보고 경험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체력도, 그 욕망도 자연스레 사라져 버렸다.

30대가 된 나는,
어떤 40대를 맞이할지, 어떤 50대가 찾아올지
문득문득 궁금해진다.
또 한편으로는, 소중한 아이들을 위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한다는 걱정도 요즘 따라 자주 든다.

29개월 된 첫째와 하루 종일 함께 지내고,
둘째를 품고 있는 지금,
이 집은 지겨우면서도 편안한 곳이다.
안전하고, 따뜻하고, 반복되는 집안일이 지루한 동시에
묘하게 안정감을 준다.
참 모순적이지만, 써놓고 보니 오히려 흐뭇해진다.

특히 이렇게 첫째가 자고 있는 저녁이면,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해서
잠깐은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에게 안전한 집이란 바로 이런 곳이다.
지겹고 따뜻하고, 반복되지만 소중한,
우리의 작은 집.

“이 집이 편안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더 이상 예전의 관계들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여러 사람과 얽히고 맺히고,
또 잃어버리기도 했다.
그 사람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아릿하지만,
지금의 평온한 집 안에서는 조용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신의주의 책방 – 2장〉

잃어버린 친구들

마음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지만,
막상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 있게 지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 있다.
그 시작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 한쪽이 살짝 시린다.

초등학생 때, 바로 옆 동에 살던 친한 친구가 이사를 갔던 날이 생생하다.
이사 며칠 전, 엄마가 아파트 앞 바위에서 우리 둘 사진을 찍어줬다.
그 작은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떠오르면
말로 하기 어려운 상실감이 조용히 밀려온다.

그 후 1~2년 뒤에는 아래층에 살던 또 다른 친한 친구가 이사를 갔다.
겨우 한 명 마음 열고 학교에서 하루 종일 수다 떨고 지냈는데,
그 친구마저 떠나버렸다.
어린 나는 그때마다
“내가 겨우 마음 준 사람은 왜 다 떠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혼자 삼켜야 했다.

<신의주의 책방 – 3장〉

내 마음이 향한 곳은 왜 늘 ‘아픈 사람들’이었을까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그런 내가, 어떻게 국제봉사에 관심을 갖고
난민과 기아, 부모 없는 아이들까지
세상의 가장 아픈 곳을 향하게 되었을까.

대학생 때 나는 거의 4년 가까이
왕복 두 시간 넘는 육아원 봉사를 다녔다.
처음 들었을 때는 믿기지 않았다.
세상에…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라니.
그 사실이 너무 마음 아파서
내 시간이든 정신이든, 무엇이든 나누고 싶었다.
그 뜨거운 열정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혹시 오해할까 싶어 덧붙이지만
내가 간호학과에 간 이유가 이런 마음 때문은 아니다.
나는 간호사를 직업으로 삼고 싶어서 간 것이 아니었다.
고3 때 서울대 진학이 어렵겠다는 말을 듣고
공부를 거의 놓아버린,
전 과목 2~3등급에 수리영역 만점 받던 애가
그냥 점수에 맞춰 들어간 곳이었을 뿐이다.
솔직히 수능 당일 아침까지도
“내가 간호사가 된다고?”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내 마음은 늘 ‘아픈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그게 내 기질인지, 나만의 방식인지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신의주의 책방 – 4장〉

선의로 시작했지만, 나를 흔들어버린 일

20대 중반의 나는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그 순수한 마음 하나로 해외봉사를 떠났다.
어릴 때부터 약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던 내가
세상의 가장 아픈 곳을 직접 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맡게 된 역할은
내 성향과 너무 달랐다.
간호 업무도, 예방 교육도
나와 맞지 않았고
내가 이해하기엔 벅찬 개념이 많았다.
가르치고 설득하는 일에 흥미가 없던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 일을 잘하지 못했다.
그 부분은 지금 돌이켜봐도 변명할 수 없다.

그 대신 내 관심은
아이들의 ‘하루’에 더 가 있었다.
하교하는 아이들의 뒤를 따라
험한 길을 넘고, 먼 마을까지 걸어가며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키우던 젊은 여성들을 찾아가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들었던 순간들이
그곳에서의 내 마음을 가장 뜨겁게 만든 장면이었다.
나는 현장가였다.
교육가도,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닌.

그러다 한 가지 큰 프로젝트에 휘말렸다.
좋은 일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단체로부터 받은 예산을
현장에 전달해 어떤 시설을 개선하려던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속았고
약속된 물건은 도착하지 않았다.
낯선 나라에서, 보호받지 못한 외국인 신분으로
나는 소송까지 가는 상황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때의 무력감과 배신감,
그리고 ‘내가 왜 이런 일에 휘말린 걸까’ 하는 자책.
그 모든 감정은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봉사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그 경험은 내 열정을 꺾어놓은 사건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좋은 마음’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세상의 복잡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사건은 나를 더 조용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지금의 내가
“안전한 삶”을 그토록 갈망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