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한 칸 더
오래된 TV 앞, 소파 스프링이 여전히 작은 신음을 낸다.
달라진 건 가구가 아니라 리모컨을 쥔 사람이다.
예전엔 아버지의 손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내 손끝에서 시작된다.
같은 장면을 다시 봐도, 나는 이제 다르게 듣는 사람이다.
나는 느린 사람이다.
하지만 못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나에게 맞는 리듬과 방법을 배웠을 뿐.
음소거 - 남의 채널을 잠시 낮추고,
입력전환 - 내 화면으로 돌아오고,
볼륨+1 - 오늘 한 칸만 키운다.
그 단순한 버튼들이 내 평범함을 지켜줬다.
재생은 화질이 아니라 순서에서 시작한다.
식탁 위엔 반짝이는 반지 하나와 글쓰기 창이 놓여 있다.
어제까지 "언젠가"라 적던 칸에 오늘은 발행을 눌렀다.
아마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속도 대신 순서. 한 칸씩이면 결국 닿는다.”
그때도 장치는 같을 것이다.
TV, 리모컨, 그리고 내 삶에 맞게 번역된 대사 한 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내 리모컨을 잠깐 빌려가도 좋다.
지금 10분, 첫 문장 1줄, 내일의 첫 줄 1줄.
완벽은 몇 사람의 몫일지 몰라도,
시도는 우리 모두의 몫이니까.
화면 오른쪽 위에, 작은 아이콘이 반짝인다.
전원 버튼 위에 엄지손가락을 올려놓고,
오늘의 자막을 단다.
"오늘은 여기까지."
불이 꺼지고, 방은 조용해진다.
남은 건 습관처럼 따라오는 다음 한 줄.
"내일 한 칸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