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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Jan 11. 2023

어느 셀프 와사비 테러리스트의 우울

혀가 시린 이야기

잊을 만하면 뉴스에 '일본에 여행 간 한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초밥집에서 와사비 테러를...'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 혐한인지, 장난인지 모를 일본 식당의 한국인 대상 '와사비 테러'는 그만큼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며칠 전에도 이런 기사를 봤는데, 내가 한국에서 그 일을 당하고야 말았다. 피해자는 나고, 가해자는... 나였다.



나는 눈이 많이 안 좋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꼼꼼히 살피고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멍청하게 따로 덜어져 있는 와사비를 듬뿍 떠서 입안에 털어 넣지는 않는다. 하지만 음식에 들어가 있는 와사비 덩어리와 같은 함정은 거의 구별해내지 못한다. 일본식 덮밥, 대표적으로 연어덮밥과 같은 음식에는 와사비가 이미 밥 위에 올라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발견 즉시 조심스럽게 해체 작업을 통해 셀프 와사비 테러를 방지하는 편이다.


그러나 며칠 전 자행된 테러는 방지할 수 없었다. 왜일까? 메뉴가 차돌박이덮밥이었기 때문이다. 음식의 국적이 중요해지지 않은 이 시대에, 차돌박이덮밥에 와사비가 듬뿍 올라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밥을 중간까지는 맛있게 먹었는데, 와사비를 한입 가득 먹고 나서부터는 기억이 없다. 와사비를 5g 이상 한 번에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위해 설명하자면, 와사비를 과량 복용할 시에 불가항력에 의해 기침이 나온다. 식도와 위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지만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미 들어간 뒤라 진화는 불가능하다.


이게 다 시각장애 때문이다. 나는 아주 안 보이지는 않지만 음식에 올라간, 또는 음식에 숨겨진 재료들에게까지 시선을 줄 시각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다. 제발 와사비와 같은 자극적인 재료가 올라간 음식을 만드는 음식점들은 서빙할 때 "안에 와사비가 들어가 있으니 기호껏 덜어 드시기 바랍니다. ^(오)^" 이라든지 따로 와사비를 넣을 수 있게 덜어서 줬으면 좋겠다. 물론 이 음식점이 잘못한 것은 아니다. 몇 달 전에도 카이센동(회 등의 해산물을 얹어 나오는 일본식 덮밥)을 먹다가 같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의 탓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탓이라고 전적으로 치부하기에는 장애인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내 자존감이 깎이기 때문에 뭐라도 탓을 하고 싶다.


선량한 식당 주인들의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이게 다 와사비의 탓이다. 맵게 태어난 죄, 은닉이 가능할 만큼 냄새와 색깔이 강하지 않은 죄, 한국에 상륙한 죄... 그렇다. 테러의 원인은 폭탄인 것이다. 또한 폭탄을 누구나 다룰 수 있도록 한 사회도 문제다. 부디 나와 같은 셀프 와사비 테러리스트가 발생하지 않도록 폭탄(와사비)를 사용하는 식당 사장님들은 음식 나올 때 '폭탄재중'이라든지 '와사비 매립 가능성 있음'과 같은 안내를 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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