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

by 그냥이 아닌

누군가의 글을 읽었다. 우리는 슬픈 일은 오래 기억하지만 기쁜 일은 생각보다 쉽게 잊어버리니, 슬픈 일 사이의 기쁜 일들을 깃발처럼 표시하여, 마음이 힘들때 그 깃발 쳐진 자리들만 되짚어 보라고 하였다. 희안하게도 사소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 생길때에는 순간에 심취하여서 인지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다. 그러고는 잊게 된다. 다시 언젠가 되새겨질 때까지 말이다. 그런 순간들을 기록한 모음집을 언젠가 무심히 스크롤을 내려 읽으면 마냥 기분이 좋아질 것만 같다. 이러한 계기로 사소하지만 마음이 충만해지는 순간들을 따로 기록해 왔다. 그 중에 몇가지를 공유해 보고자 한다.


우연히 듣게 된 노래 가상에 '세탁소 아저씨'가 있었다. 이제껏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세탁소 아저씨 중에 한 분이 생각났다. 그리고 내게 특별했던 그 하루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나는 오랜 취업준비생 생활 중이었고, 그 날은 큰 회사의 면접날이었다. 그 전날부터 잠을 못잤지만 너무 간절했기에 화장을 공들여 하고 입으로는 면접예상 문제의 모범답안을 계속 내뱉었다. 면접용 올림 머리는 혼자 할 수 없을 것 같아 동네 미용실에 갔었다. 동네 미용실이라 할머니 3분이 뽀글이 파마를 하러 와계신 상황이었다.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한 나는 조금 당황했으나, 할머니들께서 흔쾌히 순서를 양보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면접을 보러가냐는 미용사 분의 말에 그렇다고 하니 할머니들께서 '특별히 이쁘게 해줘야 겠다'라며 말씀들을 하셨고, 손주 손녀의 취업 얘기 등등 많은 얘기를 뒤에서 해주시고, 미용사 분께서는 인상이 좋으니 무조건 될거라며 힘을 내주셨다. 전문가의 올림 머리 결과물에 감탄하고 그 응원들에 마음이 충만해진 체로 미용실을 나섰다. 그뒤로는 단정한 인상이 단연 중요하기에 입고갈 면접복장을 다리미질 하러 동네 세탁소에 갔다. 세탁소 아저씨는 나의 면접용 올림머리를 보시더니 오늘 면접을 보러 가냐며 특별히 다리미질을 잘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꼭 면접을 잘 보라며 응원해 주셨다.



가족들과 친구들은 당연히 날 응원해주었지만 그 영역 밖의 사람들에게서 받는 응원은 뭐랄까 더 와닿았다. 전기장판이 막 달구어질 때 같은 따뜻함이었다. 굉장히 떨렸지만 그 응원들에 면접장에 가는 지하철에서 내내 이유모를 웃음이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추억들을 되새기는 지금은 마치 오래된 겨울코트주머니에서 돈을 되찾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이렇게 깃발이 꽂힌 날들의 기록들을 모두가 괜히 얄궂은 것만 같았던 날들에 다시 꺼내 읽어볼 생각이다. 그때의 온기를 그대로 되짚으며 사소하지만 분명한 따뜻함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