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 번씩, 나는 때밀이로 변신한다. (세신사니 목욕보조사니 하는 말들도 있지만 때밀이라는 말이 느낌이 딱 오니 나는 그냥 이 단어를 쓰겠다.) 내가 때밀이가 된지는 겨우 반년이 조금 넘었고 고객도 장인어른 한 명뿐이니 아직 햇병아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슬슬 요령도 붙고 재미도 느끼는 걸 보면 완전 초보는 면한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스스로 터득한 때밀이의 요령과 재미, 거기에 요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때밀이의 모든 것'을 공개해볼까 한다.
내 유일한 고객인 장인어른을 모시고 목욕탕은 찾는 시간은 보통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 1-2시쯤, 이 시간이 제일 한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간에 동네 목욕탕은 손님이 거의 없어서 큰 목욕탕을 독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두세 명의 손님들이 뒤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가끔 있을 정도다. 한가한 시간에 목욕탕에 도착해서 맨 먼저 할 일은 옷을 벗는 일이다. 이때는 때밀이가 할 일이 별로 없다.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다가 혹시라도 도울 일이 있으면 과하지 않게 슬쩍 도와드린다. 탈의가 끝나면 욕탕 안으로 고객을 모시고 입장하는데 아주 자연스럽게, 돕는 듯 마는 듯 따라붙는 센스가 필요하다. 자칫 과잉 행동은 고객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다. 입장 후에는 먼저 샤워꼭지 앞에서 비누로 온 몸을 씻겨드리고 탕 안으로 모신다. 여기서부터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우선 물은 온도가 제법 낮아야 한다. 고객님이 뜨거운 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미리 손을 넣어 만져보고 뜨겁다 싶으면 찬물을 틀어서 매지근할 정도로 온도를 낮춘다. 혹시 이미 와 있는 손님이 있으면 양해를 구하는데 아흔다섯이라는 장인어른의 연세를 넌지시 흘리고 부탁을 하면 절대로 거절하는 경우가 없다.
탕에 들어가는 과정도 고객 맞춤형으로 매뉴얼을 만들었다. 먼저 난간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후에 몸을 돌려 다리를 하나씩 탕 안으로 넣고 나서 조심스럽게 탕 안으로 모시는 방법이다. 보통 젊은이처럼 두발로 서서 난간을 넘어 들어가다가 자칫 낙상이라도 하면 대형사고이니 나름 고심해서 개발한 과정이다. 이때 때밀이는 한 손으로 고객님의 등과 어깨를 확실히 받쳐서 다리가 난간을 넘어갈 수 있도록 몸을 지탱하는데, 위치와 자세를 잘 잡아야한다. 두 팔로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고객 가까이에 위치하고 발은 어깨넓이로 단단하게, 무릎은 약간 굽혀서 혹시라도 올 수 있는 급격한 중력 변화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객님이 편안히 자리를 잡으면 이제부터 한동안 할 일은 없다. 얼른 내 몫의 샤워를 하고 옆에 조용히 앉는다. 따뜻한 물에 안긴 고객님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어허, 하는 짧지만 여운이 있는 소리를 내는 것은 대단히 만족하신다는 표현이다.
이 순간이 대화를 시작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다. 나는 물의 온도가 적당한가, 오늘 기분은 어떠신가 정도의 가벼운 질문만 드리면 된다. 나머지는 순전히 고객님의 기분에 따라서 대화가 흘러가는데 요즘 건강상태나 일상사에 관한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장인어른의 과거사가 주를 이룬다. 어떤 날은 젊은 시절의 외롭고 힘들었던 투병기가, 어떤 날은 극적인 결혼 이야기가, 또 어떤 날은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시절들이 흘러나온다. 느릿느릿, 쉬엄쉬엄 과거를 풀어놓는 장인어른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힘이 넘친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쇠잔한 95세가 아니라 스무 살, 혹은 마흔 살의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는 뜻이리라. 나는 열심히 듣고 호응하고 가끔은 짧은 질문으로 대화의 품격을 유지한다. 이야기가 수십 년 세월을 넘나 들다 보니 중간중간 인터벌이 제법 길 수도 있지만 절대로 지루한 표정을 짓거나 다른 질문을 해대도 안된다. 끈기 있게 조용히 기다리면 다시 계속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학력으로 시작해서 사무관으로 정년퇴직하기 까지의 어려움, 혹은 무용담부터 때로는 후회되는 일들을 풀어놓기도 하시고 평소에 말하지 않던 가족사를 슬쩍 내놓기도 하신다. 이렇게 목욕탕 토크를 통해서라도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중이시구나, 나는 지금 그 정리의 순간에 유일한 참관인으로 임명받았구나, 참으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대화가 끝나면 본업인 때밀이 역할을 할 차례다. 들어갈 때와 반대의 순서로 난간을 넘어 나와서 때밀이용 침대로 안전하게 모신 후에 온 몸을 구석구석 부드럽고도 시원하게 때를 밀어드린다. 고객님의 근육이 많이 빠진 상태이니 너무 강하지 않게, 뼈가 나온 부분은 살짝살짝 힘을 빼면서 부드럽고도 리드미컬한 손놀림이 필요하다. 등을 밀기 위해서는 왼손으로 상반신을 안고 옆으로 반쯤 세워서 등 뒤로 깊숙이 손을 넣어야 한다. 순서를 정해서 빠진 부분이 없도록 하고 특히 발바닥과 발가락 사이사이는 마사지를 겸해서 꼼꼼하게 밀어드린다. 이때쯤이면 '어어 시원하다'라는 감탄사와 함께 '이제 그만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그만하라'는 말은 '미안하다, 고맙다, 계속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때밀이를 하고부터 뜻밖에 후한 대가를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내는 내가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하지 말라고 손사래를 친다. 때 미느라 힘들었으니 그만 쉬란다. 장모님은 침실을 내주면서 얼른 한잠 자고 가란다. 멀리 사는 처형들도 단톡방에서 내 노고를 치하하느라 입이 닳는다. 사위 중에 최고라는 둥, 나도 나중에 때 밀어주는 사위를 볼 거라는 둥 온갖 칭찬과 덕담을 늘어놓는다. 겨우 때밀이 몇 번에 이런 칭찬과 덕담을 듣다니, 한편으로는 좋으면서 한편으로는 찜찜하다. 마치 천 원짜리 팔고 만원을 받는 느낌이랄까. 사실 나는 장인어른의 등을 밀면서 혼자만의 효도체험을 하는 중이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일 학년인 열일곱 살 때 일찍 돌아가셨다. 그러다 보니 늙은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릴 기회가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가끔은 그게 너무 아쉽고 서운하던 차였다. 이제라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장인어른의 등을 밀어드릴 수 있으니 어쩌면 대가를 받을 게 아니라 체험비를 내야 할 형편이다. 여기에 칭찬이 찜찜한 진짜배기 이유가 또 있다. 이미 나는 때밀이 값을 아주 후하게, 선불로 받았다는 점이다. 30년 전, 아내는 중풍에 걸린 나의 엄마를 9년 가까이 모시면서 식사수발에 대화 상대에 용변까지 받아냈다. 그러니 굳이 값으로 치자면 나는 백만 원을 선불로 받고 30년이 지난 후에 겨우 천 원짜리 한 장으로 때우는 중이라는 계산이다. 장사치고는 호되게 남는 장사다 싶어 흐뭇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양심은 있는 법, 이 자리를 빌려 한마디는 해야 할까 보다.
"처형, 때밀이 요금 미리 받았어요. 그것도 아주 후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