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잠시 주춤하지만, 올해 더위는 폭염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혹독했다. 35도를 가볍게 넘은 수은주가 40도를 넘 볼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너무 더워서일까, 난데없이 오래된 목소리 하나가 망각의 늪을 뚫고 쑥 올라왔다. '아이이이스께끼이'. 미로 시작해서 라와 솔을 넘나들며 꺾어지는 여섯 박자의 멜로디, 50년도 더 됐는데 어쩌면 이리도 생생할까?
나는 60년대 후반에 충주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름은 더웠다. 기온이야 지금보다 좀 낮았지만,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귀한 시절이었으니 여름을 견디기엔 그때도 어려웠다. 기껏해야 부채와 냉수 목욕 정도로 그 찜통 같은 더위를 견뎌냈다. 그런데 더위에 헉헉대다가 순간 귀가 쫑긋해지는 달콤하고 시원한 소리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아이스께끼’다. 아이스께끼 장수가 멀리서 시원하게 뽑아 올리는 소리만으로도 순간 더위가 싹 가시고 입에 단침이 고이는 마법이 일어났다.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긴장감과 몰입감이 높아졌다. 어디쯤 왔는지, 사려면 언제 방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지를 시시각각 계산하면서 온몸의 감각을 아이스께끼 소리에 집중했다. 물론 마음대로 사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아버지가 마음을 내어 형제 수 대로 사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대부분은 다가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침을 꼴깍꼴깍 삼키다가 멀어지는 소리를 따라가며 오래오래 아쉬워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추억 속의 아이스께끼는 동그란 나무젓가락에 핫 바처럼 동그랗게 얼음을 얼려 만들었다. 색깔은 연한 붉은색이거나 노란색이었고 얕은 단맛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카린에 식용색소를 적당히 넣은 불량식품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얼음이라는 거다. 숨이 헉헉 닿은 무더위에 입에 닿는 얼음의 감촉만으로도 이미 감동이었다. 거기에 달착지근한 맛이라니,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요걸 먹는 데는 약간의 요령이 필요했다. 최대한 오랫동안 천국을 맛보기 위해서는 살금살금 핥아먹어야 한다. 두 가지만 조심하면 된다. 국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녹는 속도에 맞추어 위, 아래를 번갈아 핥을 것, 마지막에는 와르르 얼음이 부서져서 땅에 떨어질 수 있으니 적당한 때를 노려 통째로 입에 넣을 것. 친구들이 모여있을 때는 또 다른 요령이 필요하다. 한 입만 먹자는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나눠 먹기는 해야 하는데, 이때 절대로 깨물지 말라는 규칙을 공지해야 한다. 여러 입에 들락날락하다 보면 우적 깨무는 입도 가끔 나오는 법이니 말이다.
아이스께끼는 먹고 싶고, 돈은 없는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고 아예 아이스께끼 장사로 나서기도 했다. 제과점에 가방을 맡기면 나무로 만든 통과 아이스께끼를 준단다. 적게는 스무 개, 많으면 50개까지 떼어서 팔다가 본전만 채우고 나머지는 혼자 다 먹는다고 했다. 소문이 퍼지면서 아이스께끼 장사에 나서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었고 칠판 한 귀퉁이에는 '풋과일을 먹지 말자'와 함께 '아이스께끼 장사를 하지 말자'라는 팝업창이 생기기도 했다. 용기가 없던 나는 그 말에 따랐지만 한번 해 볼 걸 그랬다는 후회가 아직도 남아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아이스께끼 업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처음 생긴 변화는 '캰디'였다. 납작한 아이스바가 등장한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값은 5원, 2원짜리 아이스께끼에 비해 훨씬 비쌌고 그만큼 맛도 고급스러워졌다. 이걸 처음 맛본 게 초등학교 3학년 때, 합창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청주에 와서였다. 우유 맛이 나는 고급스러운 '캰디'맛에 5원이라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얼마 후,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브라보콘이 등장한 것이다. 달달하고 기름지고 게다가 부드러운 촉감이라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천국의 맛이었다. 그러나 50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에 그야말로 1년에 한두 번 맛볼 뿐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빙수, 에이드, 스무디 등등 맛있는 여름 음료들이 넘쳐난다. 그래도 불량식품 아이스께끼가 그립다. 달달구리한 맛도 맛이려니와 ‘아이이스께끼’하고 외치는 청아한 목소리를 한 번 더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