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작업실의 온기

by 봉킹

사실 나는 그리 수려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깊은 철학을 담고 있는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며, 그것을 글로 붙잡아보려 노력하는 사람에 가깝다.
‘열정’이라는 주제로 나의 경험을 꺼내려 하니, 부끄러움이 몽글몽글 비눗방울처럼 피어난다. 그럼에도 진솔하고 힘 있는 글을 써보려 한다.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다. 1학년 말쯤, 건축공학과와 건축학과를 나누는 중요한 평가로 여겨지던 설계 과제였다. 주제는 기숙사방 하나의 설계. 단순해 보이지만, 동시에 꽤 심오한 요구였다.
나는 목재를 주 마감재로 삼고, ㄱ자 형태로 외부공간을 품은 기숙사를 설계했다. 창문은 수직 루버로 덮였고, 화장실에는 욕조가 있었다. 제출 방식은 모형이었고, 나는 도면의 선 하나까지 수정하며 내 생각과 가장 가까운 형태를 만들어내려 애썼다.


옆자리 친구는 침대와 책장이 합쳐진 가구를 만들고 있었다. 다섯 날을 꼬박 그 가구 하나에 쏟고도 완성하지 못한 채였다. 그 무렵 나는 욕조의 물표현제를 굳히며 마감을 앞두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 친구에게 “그 가구 내가 만들어줄게. 너는 건물 마감을 해.”라고 말했다. 새벽부터 해 뜰 무렵까지 작업했고, 결국 그 가구는 실제로 움직이며 변형되는 형태로 완성됐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생각을 형태로 옮긴다는 일’에 대한 열정과, 건축이라는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강한 열망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이후 약 열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것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네 식구를 위한 오각형 집,
전통주를 중심으로 한 복합문화공간,
경사진 램프를 가진 미술관,
로드킬당한 동물을 위한 화장터.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땅’과 ‘사회문제’로부터 출발했다는 것이다. 학교 프로젝트는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공모전에 낸 작품들은 번번이 서류에서 탈락했다.


특히 ‘로드킬당한 동물을 위한 화장터’는 내게 여러모로 남은 프로젝트다.
처음에는 지역의 돌담을 주제로 삼으려 했으나, 지도를 들여다볼수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 지역은 두 개의 도심이 산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동물들은 이동 중 도로를 건너다 금속 상자 같은 자동차에 부딪혀 죽어갔다. 친구를, 먹이를, 삶을 향해 나아가던 길 위에서 말이다.


그들의 사체는 대부분 폐기물로 처리된다. 담당자들이 느낄 충격은 또 얼마나 클까.
같은 생명임에도 인간의 체계 안에서만 죽음을 허락받는 이 풍경을 보며, 나는 인간이 이 땅의 지배종으로서, 그리고 침입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요즘 장례식장에서는 ‘발인 → 화장 → 추모공원’으로 이어지는 절차가 익숙하다. 화장은 매장보다 빠르고 효율적이며, 비교적 격식을 갖춘 방법이다.


나는 이 시설이 동물들에게 ‘버섯’과 같은 존재가 되길 바랐다. 버섯은 죽은 생명을 분해해 새로운 생명을 키운다. 그래서 내 화장터는 산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도로에 가까운 초원에 자리한다. 따뜻한 흙, 바람이 드는 처마 아래에서 생명들이 한줌의 재로 돌아가고, 그 재와 열이 다시 식물과 버섯을 키워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순환의 건축이다.


결국 형태는 단순했다. 동물병원과 사무공간이 결합된 하나의 매스, 그리고 높은 굴뚝과 넓은 처마를 가진 화장 시설.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담긴 생각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이렇게 글을 써보니, 나는 ‘열정적으로 살자’는 구호보다 ‘매 순간 내 생각을 가지자’는 태도가 더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아직은 고민하는 과정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그 고민의 흔적이 곧 나의 건축이자 글이 되리라 믿는다.

거창한 부탁은 아니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단 5분이라도 — 오늘의 나, 당신의 꿈과 상상에 대해 한 번 생각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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