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의 친절에 대하여

새벽시

by 봉킹

괜스레 넉살 좋은 웃음으로 말을 넘기고 싶은 순간이 있다.
멀리 떠나는 버스 안, 출발부터 씨름하던 병뚜껑이 아직 열리지 않은 걸 본 것 같다.
괜히 이상하게 보일까 봐 말을 걸지 못한 채,
눈치만 본다.

두 번째 휴게소를 지날 때에도
그는 몇 번이나 뚜껑을 열어보지만 여전히 돌아가지 않는다.
신경이 쓰인다.
어쩌면 오지랖,
혹은 과잉 친절로 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어느새 일어나 있다.


“혹시... 열어드릴까요?”

손에 힘을 주어 돌려보지만
뚜껑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얼굴이 붉어진다.
힘 때문인지, 자신감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모르겠다.


다행히 셔츠자락의 힘을 빌려
‘툭’ 하고 열린다.

위풍당당하던 말투는 버스 뒤로 흘러가고,
내 자리로는 붉은 얼굴의 사내 하나가 걸어오고 있다.


삶에는 하지 말았어야 할 순간들이 있다.
대부분은 그 선택이 만든 파도가
그때보다 오래 우리 곁에 남기 때문이다.

잘못된 선택이라기보다
그저 순서가 어긋난 순간들.


봄날의 꿀벌을 생각한다.
양봉업자가 벌통을 옮겨 다니며 꿀을 모으는 동안,
집을 짓는 벌은 부지런하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문턱에서 그 자리에 남은 벌들은
언제부턴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된다.


오랜 세월 꽃을 키우던 사람이
잠시 여행을 떠나며 창문을 조금 열어둔 채 집을 비웠다.
하필 그 시기에 한파가 닥쳐
꽃은 얼어 죽었다.

어찌하겠는가.


그 순간의 선택도 결국 그 사람의 것이었으니.
오늘 밤은 그 사람의 텅 빈 화분이
내 마음속에서도 소리 내어 운다.

모든 것이 맞아야 피는 것이 꽃이라면,
잘못된 때에 봉오리를 터뜨린 꽃은
얼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계절은 보내야겠다.
다음 계절엔 새 꽃이 피리라,
머리로는 알지만—

지는 낙엽에도 괜스레 쓸쓸해지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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