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싫어서 써내려가는 글

by 봉킹

나는 우주의 입자로 구성된 하나의 물체, 혹은 동산(動産)이다.
자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담론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그 자아라는 것이 어떤 입자들로, 어떤 원리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탐구는 아직 진행 중이다. 어쩌면 그 탐구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잃지 않게 만드는 동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질의 근원을 향한 탐구를 넘어, 자아를 개선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서 ‘종교’라는 체계가 입자들의 집합체—곧 인간—에게 형성되어 오랜 시간을 지나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왕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아의 개선과 수행을 강조하는 종교다. 이 종교는 ‘보리수’라는 나무를 상징적 대상으로 삼고, ‘윤회의 수레바퀴’를 그 관념의 표상으로 삼는다. 바퀴, 혹은 배의 조향부처럼 그려진 이 상징은 ‘끝없이 반복되는 순환’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윤회란 무엇일까? 나는 편협한 시선으로 이렇게 답해보려 한다.
‘자아’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그 자아의 소멸—죽음 혹은 끝—이후에도 무엇인가가 남는다는 이야기다. 자아는 깨달음이나 업보의 소멸을 이루지 못하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또 다른 물질들의 집합체로 재구성되어 다시 태어난다.


이것을 ‘자아의 고통’으로 인식하고, 그 고통의 반복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수행과 탐구, 그리고 깨달음이 강조된다. 사실 이 설명에서 ‘탄생’이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좁은 식견으로는 그것을 대체할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겠다.


우리는 우주의 입자들이 잠시 모여 하나의 집합체가 된 존재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뭐가 그리 중요한가. 어차피 태양보다 짧은 시간을 살다 흩어질 입자들 아닌가.
그래도 써보자. 남겨보자. 흔적을 남기자. 입자들을 흩뿌리듯 단어를 남기자.
사랑하자. 나아가자. 그리고 이 잠시 모여 있는 우리의 집합체를, 잠시라도 아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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